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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몬순이 시작되던 퇴근시간에...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산지브가 방으로 들어왔다. 보통 그가 퇴근을 할 때는 방 문 앞에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방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일 있어요?"


"특별한 일은 아니고, 델리 경찰청 프로젝트가 영 진행이 안되고 막혀있어서 하는 말인데, 본사에서는 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는지 이해가 안돼서 좀 설명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만.."




지난해에 마니야를 따라 자르칸 주의 전력청 장관을 만나 돌파구를 찾아보기도 했고, 섣달그믐에 무수리를 다녀오고 나서도 델리 경찰청 프로젝트는 정체 상태가 계속되었고 인도 정부 쪽으로부터는 아무런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하필이면 인도 정부 수립이래 어쩌면 가장 큰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져 인도의 유수 기업 총수를 비롯하여 정계의 고위층들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고 체포되거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 식민지였던 56개 국가들이 모여 4년마다 Commonwealth Game_영연방 게임"이라고 하는 올림픽 경기 같은 대회를 여는데, 2010년에는 인도의 델리에서 개최를 했다. 문제는 대회 준비를 둘러싸고 수많은 비리가 있었다는 것인데, 당시에 주 경기장인 델리의 네루 스타디움조차 대회 개최 날까지 공사를 하는 등 여러기지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인도 국민들의 불만도 쌓여갔다.


엉뚱하게도 델리 경찰청 프로젝트 주무 부처인 내무부의 장관이 대회가 개최될 당시의 재무 장관이었다는 사실이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미 주인도 한국 대사를 통해 독일 측의 방해가 터무니없음을 장관에게 이해시켰고 KKP에게 장관의 지시가 내려가 있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을 모색 중이었으나, 대회 관련 스캔들로 인하여 야당 측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와 집중포화를 당하게 된 내무부 장관은 거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그가 비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었고, 실제로 관련이 있다고 볼 근거도 없었지만 정치 상황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연히 내무부 및 델리 경찰청 내부의 모든 일들은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따른 파장은 인도 현지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본사에서는 대회 비리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인지 그런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도 법인이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든 해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서들로 이루어진 사업평가협의회를 거쳐야 하고, 델리 경찰청 사업 역시 여러 차례의 협의를 통해 사업 추진 결정이 내려졌으니 꽤 여러 사람들이 관여된 일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협의회에서 소위 위험요소라고 자신들이 언급했던 것들만 강조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지브에게 한국 본사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산지브지.. 지금 인도 정치 상황에 대해서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조만간 본사에서 출장자가 올 것 같으니 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산지브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아 늘 '산지브지_Sanjeevji'라고 불렀다. 이름에 ji를 붙이는 것은 Mr. 와 같은 개념이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친근한 표현으로 '형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본사 출장자가 오면 미즈라 씨를 한 번 더 만나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손 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본사의 이번 출장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거든."




얼마 전 '미즈라'라고 하는 이름의 인도 국회의원을 만났다. 인도에서는 국회의원을 MP, 즉 Member of Parliamentf라고 하는데, 그는 여당인 국민회의당_Congress Party 소속이다. 땅 덩이가 큰 인도의 국회의원들은 회기 중에 정부에서 제공한 델리의 고위 공무원 용 아파트를 아주 싼 임대료를 내고 관사로 사용한다. 처음 그를 만난 곳은 그의 관사에서였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그저 썰렁한 공간에 한 개 방에는 침대가 떨렁 놓여있다. 가구라고는 거의 없는 대리석 바닥의 거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아와 앉아있다. 다들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으나 국회의원을 도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보좌관과는 좀 달리 보였다. 무슨 일이던 시키면 다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다지 익숙한 분위기는 아니다.




미즈라에게 그간의 델리 경찰청 프로젝트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자, 국회의원은 더운지 땀을 닦으며 허름한 침대에 앉으라고 하더니 자신도 옆에 털썩 앉는다.


"레터를 하나 써오세요."


"레터라면, 누가 누구에게 전달할 레터를 말씀하시는지?"


"그런 정식 레터라기보다는 오늘 이야기 한 내용을 한 장 정도로 정리해서 가져오면 좋겠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일단 말씀해 보시죠."


"우선 당신의 회사는 적법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고 평가가 끝났다는 점. 그 후에 입찰에는 참여도 하지 않은 독일의 대사가 당신 회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내무부를 방문하여 근본 없는 이의를 제기했고, 내무부의 담당인 KKP의 손으로 모든 서류가 넘어간 이후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 현재까지의 상황이 부당함을 설명해야 합니다. 인도 정부가 국제입찰로 진행한 대규모 사업이 이런 식으로 처리된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넣어야 합니다 정부 사업이자 정부 기관이 평가를 마친 이후에 벌어진 지금과 같은 일들은 인도 정부의 국제적 공신력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내용을 야당에서 알게 되면 정치적인 공세를 받을 가능성도 있고.. "


"장관과는 이미 한 차례 이야기가 있었고, KKP는 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레터로 뭘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내가 만나려는 사람은 장관이나 그 고지식한 KKP나 차관인 RKS가 아닙니다. 라훌 간디를 만날 겁니다."




당시의 라훌 간디_Rahul Gandhi는 여당인 국민회의당_Congress Party 부총재로 인도 정계의 거물이다. 인도의 독립 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증손자이자 2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인디라 간디의 손자이며, 제6대 총리였던 라지브 간디의 장남이며 당시의 당 총재였던 소냐 간디_Sonia Ghandhi의 아들로 차기 인도 수상이 유력해 보였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결정을 하세요."


라훌 간디까지 만나야 한다면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테니 생각을 좀 해봐야 했다. 그마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이 없을 테니... 그리고 이제 본사 인력의 출장 일정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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