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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점성술가 비벡이...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사무실에 나타났다. 실제로는 산지브가 불러서 온 것인데, 그의 얼굴 생김새는 마치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와 매우 비슷하다.


그는 산지브의 집안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점성술가로, 손금을 보는 법을 탄생시킨 인도 사람들 답게 그들의 생활에는 점성술이 깊이 스며들어 있어 대개 집안마다 이런 점성술가 한 명 정도는 알고 지낸다. 한국 본사의 출장자와 일정이 정해지자 산지브가 점성술가를 만나보자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다 생각할 수 있어서 말을 해야 할지 결정이 어려웠는데..."


"말을 하려고 온 것 아니에요? 그냥 편히 말해봐요. 무슨 일인지.."


"사실 우리 집안의 일을 봐주는 아주 유능한 점성술가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과 한 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점성술가요? 왜?"


"지금 우리 회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렵잖아요. 델리 경찰청 프로젝트가 이대로 멈춰서 있으면 다른 사업으로 연결도 어렵고, 무엇보다 실적이 문제가 될 테니 본사에서 성급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이 점성술가의 말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쩝.. ㅎㅎ"




비벡은 사무실에서 나의 방 위치와 직원들의 좌석 배치와 방위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인도도 풍수를 보는 줄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래전 이집트의 메할라라는 곳에 폴리에스테르 직물 생산 공장을 세울 때도 공장 설계 당시부터 이집트인들이 방위를 따졌었다. 창문을 어느 쪽으로 내야 한다는 등... 풍수설은 아무래도 전 인류의 공통 자산인가 싶다.


"사무실의 위치와 특히 법인장의 방 위치에는 문제가 없고 이 정도면 무난합니다..."

비백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설명을 했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믿지는 않지만 그저 괜찮다니 마음이 놓인다.


방위를 검토한 후, 그는 내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고, 회계 담당 직원인 소한이 짜이와 스낵을 내왔다. 인도 회사에서는 대개 여직원들이 차 심부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비서를 두지 않았었다.


비벡은 가방에서 HP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어 부팅을 하면서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태어난 장소도 알려달라고 한다.


"내 생년월일과 생시는 무엇에 쓰려고요?"


"당신의 미래를 좀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죠. 산지브가 말하지 않던가요?"


산지브의 입장에서는 나의 거취가 회사의 미래와 함께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구나 당시의 답답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xxxx년, x월, y일. 태어난 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식으로는 자시라고 해서 새벽 12시부터 1시 정도인 것으로 압니다. 도움이 되겠어요?"


우리나라의 역술가들은 이와 같은 출생 데이터를 글로 풀던데, 인도의 비벡은 상당한 IT 기술을 사용한다. 그가 어느 프로그램에 나의 생일과 생시, 그리고 한국의 특정 지명을 입력해 넣자 내가 태어나던 순간의 고향 마을에 떠있던 별자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호오 ~ 그거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군요 ㅎㅎ"


그 별자리 통계가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인도가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오래전부터 개발해서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원래 미국에서는 인도가 핵 개발을 할 것 같아 성능이 아주 좋은 슈퍼컴퓨터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인도 정부는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 여겨 자체 개발을 했다. 핵 개발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도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라는 것이 중요했다. 농업은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기후 예측은 농업 생산성과 농산물에 대한 선물거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확한 기상 예보가 중요하다.


사실 지금의 인도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슈퍼 컴퓨터의 성능에 대해 들은 바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매일의 기상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단, 그토록 정확한 예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등 농산물 거래의 큰 손들이 그런 정보에 기반해서 농산물에 대한 대규모 선물거래 등을 할 경우 인도 농업에 큰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툭하면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이나 달과 화성 탐사선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비벡은 나의 별자리를 읽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방해물들이 있어서 어려운 상태이긴 한데, 몇 년 후에는 큰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그저 큰돈이 아니라 엄청난 재력가가 될 거예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애매한데, 갑자기 몇 년 후에 거부가 된다는 말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쁜 것은 아니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산지브는 신이 났다. 평소에는 그렇게 진중하고 신중한 사람이 이런 말에 그리 들뜨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했는데, 그는 진짜로 신이 난 듯 보였고 비벡의 말을 100% 신뢰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회사의 회계 처리를 하는 회계법인의 샤르마 사장 역시 한결같이 비벡이 예언한 일은 다 실제로 일어났다며 그가 굉장한 역술가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한 몇 년이 앞으로도 수 십 년이 더 필요한 것일까? 그때쯤이면 다리에 힘도 없어 방구석에 누워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비벡의 예언 이후로 나는 인도가 아닌 한국에서 인간적으로 또 재정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들에 직면해야 했고, 그로 인한 결과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을 보면 아마 그의 예언은 인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인도 친구들이 늘 인도로 귀화하라며 꼬실 때 귀화를 결정했다면 지금 쯤 거부가 되어 있을까? 어쩌면 지금 쯤 한국이나 유럽, 미국의 비자를 받을 수 있네 없네 하며 난리를 치고 있을 것 같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변화무쌍하여 예측할 수 없는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오늘은 당장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를 해야 할까? 다만 어려운 일, 예를 들어 두 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에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오늘 좋은 말을 들었으니, 다음에는 나디_Nadi를 한 번 보도록 하죠."


나디


산지브는 이제 나디를 보자고 하는데, 나디_Nadi란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신비한 물건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야자수 잎에는 전 세계 사람들 각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적혀있다. 그 문자의 해석은 일부의 특수한 사람들만 가능하다는데, 그것을 보는 일은 꽤 번잡해서 나에 대해 적힌 잎사귀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한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직접 그곳에 방문해야 한다. 남부 인도 쪽이다. 영국이 인도에서 떠날 때 이 나디를 많이 훔쳐가서 대영박물관에도 있다고 하던데... 인도에는 정말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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