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데이비드는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한 서울 한 복판에 조금은 낡은 듯 익숙한 다동 골목이 풍기는 특별한 느낌이 좋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 속에 남은 식당이 이곳이었지 않나 싶다.
식당 문을 밀고 들어서니 저녁의 여름 습기와 함께 설렁한 실내 공기를 타고 묵직한 고기 향이 주는 행복한 느낌이 좋다.
"여기는 어복쟁반이 유명하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안이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른다.
"어복쟁반 하나랑 소주 세 병 주세요. 시원한 걸로 부탁합니다."
잠시 후, 고기와 야채가 둥그런 쟁반에 수북이 쌓인 어복쟁반이 식탁 위로 올라오고 육수가 부어지자 세 명 모두 빨리 육수가 끓기만 바라는데, 데이비드는 기다리지 못하고 얇게 썰린 양지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간다.
"이건 이미 익은 거니까 먹어도 되지?"
"마음대로 하시고. 소주도 한 잔 받으시고.."
"대작을 하지는 것이구만. 좋지. 첫 잔은 대작, 다음 잔부터는 자작하는 걸로.."
"이 동네가 아마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인 구보가 살던 동네였을 거야.
"학생 때 읽은 기억은 나는데, 좀 이상한 소설이었던 것 같아. 하루 종일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학교 동창을 만나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거나 갑자기 전차에서 맞선을 보았던 여자를 만나고 찻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차를 얻어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가면서도 어머니한테 인사도 안 하고 아침에 나올 때도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뭐 그런 이야기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시대 배경을 모르면 뜬금없게 느껴지기 마련이긴 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도 며칠 동안 구보씨가 걸었던 그 거리를 다 다녔던 것 같구만."
데이비드는 구보씨라는 이름도 어색했지만, 그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친구들이 학생일 때 읽었다고 하니 꽤 오래전 소설인가 보다.
"그래서 그 소설 배경이 뭐길래 그래?"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학을 한 조선의 지식인의 무기력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인데, 구보라는 청년이 하루 동안 이곳 다동 집에서 나와 경성 시내를 다니면서 보고 느낀 생각들을 표현한 이야기야.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고고학이라는 것에 빗대어 고현학(考現學)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현대의 풍속과 세태를 보는 것이지. 당시에 영어로는 모데르놀로지라고 했던 것 같네.."
"Modern(현대)과 Archeology(고고학)의 두 단어를 조합한 말인 모양이군. 당시에 발음은 좀 이상하지만 Modernology를 말하는 것인가 보구만. 그런데, 그런 말들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네."
데이비드는 소설의 내용과 화려한 단어보다는 그런 소설이 쓰이고 읽힌 당시의 시대 환경이 더 궁금했다.
"그런 것 궁금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은데.. 소주 값은 충분한가?"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신 데이비드는 말이 길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저녁에 할 일도 없다,
"들어보고 괜찮으면 다른 좋은 안주도 많지. 우선 이안 이야기부터 들어볼까?"
"정한론(征韓論)이라고 들어봤나?"
"일본이 한반도를 정벌하자고 한 주장 아니었나? "
"그렇지, 그런데 누가 왜 그런 주장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 들어봤어?"
"글쎄, 딱히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일본 메이지 정부가 그런 것 아닐까?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제국주의 시대니까 뭐... 조선이 가깝기도 하고.."
"가깝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한데, 한반도의 위치라고 하면 일본인들의 생각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그렇다고 일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일단 그들이 왜 그런 이상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래서, 정한론을 누가 주장했다는 건가?"
"사이고 다카모리 (西郷隆盛),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이 세 사람은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지."
"후쿠자와 유키치라면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예전 만 엔 권의 모델 아니냐?"
"그래 바로 그 사람이지. 한국에서도 그 사람은 학자로 존경을 받기도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 그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시대 사람인가?"
"정한론과 같은 큰 상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데는 아무리 뛰어나도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지. 그래서 이 세 사람이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은 중요해 보이는 점이야."
"대략 언제쯤 사람들이야?"
“사이고다카모리(西郷隆盛) 1828년 1월 23일~1877년 9월 24일
야마가타아리토모(山縣有朋) 1838년 6월 14일~1922년 2월 1일
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 1835년 1월 10일~1901년 2월 3일”
"그럼 이 사람들이 20세에서 30세 정도로 혈기 왕성했던 시기라고 하면 대략 조선 철종 중 후반이니까 안동 김 씨의 세도 정치가 판치던 때구만." 필립의 계산이 빠르다.
"대략 그렇지. 이 세명의 문제아들의 활동 시기가 우연히 겹친 것인지 아니면 세 사람이 우연히 동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 복속이라는 문제가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이 활동할 당시의 일본 정세는 분명히 이 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거야."
"매이지 유신이 있을 때구만. 아마 우리가 로쿠메이칸 이야기할 때 했던 것 같은데... 미국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로 인해 개항을 하면서 제국주의 열강들과 강제 불평등 조약을 연속으로 체결하게 되면서 막부 정치가 무너져갔고 결국 메이지 유신의 길로 접어들던 그 당시 사람들이야. 그리고 이 사람들이 주장한 내용들이 어떤 식으로든 매이지 정부에서 실행이 되었고, 조선은 완벽히 이용을 당한 것이야."
"그럼 한 사람씩 이야기를 해 볼까? 우선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작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 주면 좋겠는데?"
"너희들도 어쩌면 잘 알 수 있는 사람이지.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라고 들어봤지?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의 모티브가 그 당시의 일본의 세이난 전쟁과 사이고 다카모리야."
"영화의 모티브가 될 정도면 일본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건데... 그것도 아직까지..."
"말 잘했다, '그것도 아직까지'... 사실 아직까지 이 정한론이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추앙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되는데, 그건 나중에 또 차차 이야기해 보자고. 여하 간에 사이고 다카모리는 특이한 인물이야. 일본에서는 근대 일본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위인으로 알려져 있고 헐리우두 영화 이외에도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일본의 대하드라마도 있더라고. 반면에 한국에서는 정한론(征韓論), 즉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
"나도 그가 정한론을 주장했다고 알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1979년 일본의 모리 도시히코라고 하는 역사가가 The Political Change of 1873이라는 책에서 사이고는 정한론에 반대를 했다 하여 아직까지 일본에서도 논란이 있다고 하더군."
"필립이 말도 맞아. 일본 내에서도 말이 많은 사람이니 꽤 특이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여하간, 사이고는 자기 스스로 조선에 전권대사로 파견이 되길 원했는데, 결국 파견이 되지는 못했지만 되었으면 뭐 뻔한 일을 했을 것 같아.”
“왜 파견이 번복이 된 것이야?”
“정치 세력 다툼에서 진 것이 그 이유야.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무라이 출신으로 막부 정치를 종식시키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 낸 주요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바로 일본은 이와쿠라 (Iwakura) 사절단이라는 것을 조직하여 영국과 유럽에 시찰을 보냈어. 대략 2년 정도 다닌 것 같아. 사이고는 일본에 남아있었고, 그 와중에 메이지 정부에서는 막부의 토지 기반 봉건 경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폐도령(廢刀令)을 내려 민간인들이 칼을 차고 다니지 못하게 했지. 결과적으로 소위 사족(士族)이라고 하는 무사 출신들은 큰 저항감을 가지게 되었지."
"아 ~~ 소공동에서 왔다리 갔다리, 그 이야기할 때의 일이구만."
"바로 그때지. 조선의 갑오개혁 당시에 단발령(斷髮令)으로 상투를 자르라는 것과 같은 일이 일본에서 벌어진 것인데, 그 사족 중 일부는 천황에 충성하여 개화와 근대화에 적극 참여를 한 반면, 사이고 다카모리와 같은 사람들은 정부의 요직을 때려치우고 낙향하여 나름대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해.”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모양이구만. 그래서 조선에 전권대사로 보내달라고 한 것이네. 경제적인 기반이 사라지니까 당시의 시류를 타고 조선에 가서 다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재기를 해 보려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데이비드는 일본이 전통적인 봉건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는 무력과 자본을 앞세운 미국등의 서양 열강에 대적하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빠르게 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막부 정치의 경제 기반인 봉건적 토지 제도가 붕괴되고 무사 출신들의 경제 상황은 <할복>이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나빠졌는데, 자존심인 칼까지 빼앗겼다면 사이고 다카모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하던 이야기가 또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이 재미있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얽히고설킨 일본과의 관계가 답답하기도 하네."
"내 말이 그 말인데, 지금도 임진전쟁 이후로 엮인 일들이 우리의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지만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와 사고 체계, 감정 구조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 볼까? 일단 한 잔씩들 자기 잔에 소주 채우고 건배 한 번 하고..."
이안은 다음으로 야마가타 아리토모에 대해 소개를 할 작정이다. 아무래도 후쿠자와 유키치는 마지막이 어울릴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