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이안은 서울 인사동의 이북 만두집에서 저녁을 하자고 했다. 꽤 오래된 노포이긴 한데, 정작 이북이 고향인 사람, 특히 황해도 출신이나 그 후손들의 평에 따르면 이북 만두와는 조금 다른 맛이라고 한다. 아무리 같은 재료와 요리법이라고 해도 오래전 추억으로 남아있는 맛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인데, 아무래도 재료조차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이북만두는 서울 만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갈 수는 없지만 아마 지금 황해도에 가더라도 어린 시절 해주 출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만두 맛을 볼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문화도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새로운 시간과 환경에 맞지 않는 문화는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종로를 따라 오다보니까 우미관 터라고 하는 표지석이 있던데, 여기 인사동의 낙원상가에는 우리 학교 다닐 때 허리우드 극장이 있었지?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꽤 유명했던 곳인데 표지석도 없네.. 일단 사라진 것을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한 잔 하지.." 소주가 땡긴 탓인지 이안의 핑계가 가관이다.
우미관(優美館)은 1910년 경성 종로 관철동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었다.
"그래, 그런데 이 집 만두가 황해도 식이라고?"
데이비드는 평양냉면 집에서 필립에게 들었던 해주 냉면을 떠올렸다. 그때 해주가 황해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황해도 사람들 역시 먹거리에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 이곳에서 반백 년이면 서울 만두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 우리 세대만 해도 황해도에 가본 사람이 없을 것이니, 검증도 안되고... 서울 만두가 모자라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새로운 문화가 된 것이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요새는 누구나 자기가 원조라고 하긴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원조라고 할 수 없고, 그것이 또 최초였다고 하더라도 기원이라고 하는 것도 좀 맞지 않고 말이지."
필립의 말에 이안은 다소 생뚱맞은 수준의 이야기로 대응을 하는데, 발터 벤야민은 '기원(Ursprung)'을 단순히 어떤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잔여물' 또는 '흐름',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의미를 부여받을 때 발생하는 '사태'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소주 한 잔에 벌써 취한 건가? 갑자기 헷갈리는 말을 하고 그래. 뭔 소리냐 그게?"
"그냥 생각을 한 번 해보면 될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기원_起源이라고 쉽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어느 날 떡하고 시작된 과거의 어떤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재구성되고 포착되는 대상이라는 것이지. 다시 말해서 현재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과정을 기원이라고 본다는 말씀이다."
"뭐 아직도 좀 헷갈리기는 하는데, 쉽게 이야기히면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든 모이고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길도 생기고 새로운 어떤 것도 만들어지고 하는 것이란 말이구만. 그냥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뭘 그렇게 꼬아서 이야기한다니.. 뭐가 되었든 그렇다 치고, 밥 들 먹지..
셋은 어제저녁 목포를 떠나기 전 어느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전복소고기낙지탕탕이라고 하는 긴 이름을 가진 요리를 먹었다. 육회위에 샨낙지가 얹혀있는데, 소고기의 붉은색과 낙지의 흰색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만두전골은 시각적 강렬함이 조금 모자라지만 맛은 훌륭하다.
소주를 각자 1/3 병 정도 마셨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때의 느낌은 머리에서 알코올의 침입을 인식하는 정도인 때문인지 정신이 오히려 맑다.
"어제 데이비드가 기차 안에서 일본은 왜 자기들이 저지른 잔악한 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좀 생각해 봤는데 말이지... 우선 일본이 무슨 짓을 했는지 확인을 좀 해봤거든. 물론 한국인들에게 한 짓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이 중국의 난징을 점령한 첫 달 동안 무려 2만 건의 강간 사건이 발생했고 난징 대학살 때의 잔혹함은 사진으로 보기도 어렵더라고. 필리핀과 미국의 전쟁포로들이 바마와 태국 간의 철도를 건설하면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했던 것은 고사하고 일본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호주 군인들보다 포로로 투옥되어 사망한 호주인이 더 많다는 사실만 봐도 전쟁의 결과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범죄 행위일 뿐이더란 말이야."
데이비드는 필립의 이야기들 듣더니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들먹였다. 그에 의하면 전쟁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이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은 결코 적이 될 수 없고 오직 국가들만이 서로 적이 될 수 있으며, 전쟁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목적은 개인 학살이 아니라, 적국의 헌정·정치 질서를 해체하는 것이므로 일본이 한 행위는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무기의 사용 배제를 포함한 전쟁 수행 방식과 전시의 인도적 규범을 규정한 헤이그 협정에 반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결국 전쟁의 목적은 한 마디로 상대국의 헌법을 바꾸는 것일 뿐인데, 일본은 그 일을 하기 위해 국제법에서 정한 선을 한 참 넘은 것이구만.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지. 그렇다면 최소한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는 차치하고라도 인간적으로는 확실한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 그렇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데이비드와 같은 미국인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미국인이라... "
이안은 우리가 알기는 하지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 배우거나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이안은 근본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이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흔히 도쿄 전범재판이라고 알려져 있는 극동국제군사재판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미국에 의해 무조건 항복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재판에 참여한 11개국 재판관의 구성, 당시 중국의 정치상황, 그리고 일본의 침략 대상이 된 나라들의 상황이 모두 일본으로 하여금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믿음을 줄 뿐이라고 한다.
"우선 미국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이유가 있을 거야. 전쟁에서 확실히 승기를 잡았으면 무조건 항복이라는 조건을 내걸 이유가 있을까?"
"그렇네. 어차피 이긴 전쟁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하지만, 일본이 만약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필립은 전쟁이 끝난 것도 모르고 수십 년 동안 필리핀의 밀림에서 혼자만의 전투를 벌이며 생존해 온 일본인이 생각났다. 일본인의 특성상 아마 죽어도 항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미국의 무조건 항복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조건 항복 조건에 답을 한 것이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었지? 그게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히로히토가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 선언을 했다고 하지만, 실상 그 항복 방송문에는 항복이라는 말도 없지. 그저 일본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이룩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세계의 대세와 일본의 현실을 생각하여 비상조치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국의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보했으니 뜻을 따르라고 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아직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의 전쟁터에 4백만 명의 일본군이 있었단 말이야."
"미국은 천황의 명령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전투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구만."
"그것도 그렇지만, 결국 항복을 명한 자가 천황이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폭격을 명한 것도 천황이니 A급 전범인데, 라디오에서 항복 방송 한 번으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정치적 타협일 뿐이야. 연합군이 나치와 히틀러를 끝까지 끝내 버린 것과 확실히 비교가 되는 것 같지 않아?"
이안은 결국 전쟁의 최고 책임자인 히로히토 천황이 처음부터 전범 재판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다. 필립은 관련해서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던 A급 전범들이 몇 년 후에 사면되고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기시 노부스케_岸 信介가 얼마 전 암살된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라는 것은 알지? 생각해 보니 그가 A급 전범이었는데, 재판에서 증거 불충분이라는 명분으로 감옥에서 나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두 번이나 했지. 사실 도쿄 전범 재판에서 이런 일이 많았고, 사형에 처해진 사람들은 A급이 아닌 그 수하들이 더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야. 최종 책임자가 벌을 받지 않았고 A급 전범들도 다시 일본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면 사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거나 조선인들을 때리고 멸시하며 부려 먹던 정도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은 전혀 없다고 믿게 될 수밖에..."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 재판 자체가 승자의 재판이기 때문에 불공정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 게다가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민간인 수십만 명을 죽인 어쩌면 일본이 한 짓보다 더 심한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 또한 헤이그 협약을 어긴 것인데 재판을 받기는커녕 살인자가 스스로 재판관이 된 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자기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지만, 필립과 이안이 그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던 데이비드는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재판의 배경은 알겠는데, 사실 11개국의 재판관이 참여했다며? 어느 나라 사람들이야?"
호주, 캐나다, 중화민국, 프랑스, 인도,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영국, 미국, 소련의 11개국의 대법원장이나 대법원 판사, 법학자들로 구성되었다는 필립의 설명에 데이비드는 그 나라들이 모두 일본과 적대 관계를 가지고 전쟁을 치렀거나, 일본이 침략한 국가, 그리고 인도와 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국가들인데 어째서 한국이 빠진 것인지 궁금했다.
"한국은?"
"그게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봐. 일본 천황은 항복을 하면서도 동아시아의 안정이라는 것과 세계의 대세라는 말을 했다는 점은 우리가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일단 이 대목에서 한잔 들 들이키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볼까?"
손에 든 소주잔이 어쩐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