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도쿄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1946~48)에 11개국 판사가 참여했지만,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는 데이비드에게 필립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이유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간단하지만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이런 문제는 뒤끝을 남기는 법이다.
"한 잔들 했으니 데이비드의 궁금증을 풀어보자고. 이 친구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는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연합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 판사가 재판에 참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먼저 맥아더 사령부가 설치한 도쿄재판소에 참전 연합국 11개국이 판사를 파견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필리핀.. 11개국이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모두 일본과 태평양 전쟁에서 교전 상태였던 국가들의 판사들이네."
"이안이가 말하는 나라들이 모두 일본과 전쟁을 한 나라들이라고? 당시의 인도와 필리핀은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 아니었나?"
"데이비드의 말이 맞긴 하는데, 식민지였지만 일본과 전쟁을 한 것은 사실이지.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도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에 끌려가서 전선에 투입되었잖아. 인도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250만 명 이상을 동원해서 버마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여러 전선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필립의 말은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의 판사들이 파견되었다는 것인데, 한국은 일본군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일본이 패전을 했기 때문에 판사를 파견할 수 없었다는 건가? 그런데 반대로 만약에 일본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했을 때 한국인, 그러니까 조선인 판사를 파견했을까? 베를린 올림픽에도 손기종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나갔는데..."
"영국도 사실 인도를 일본 못지않게 심하게 강점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마 전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하나의 외교전략이었지 않나 싶어. 어쩌면 인도를 영국의 세력권 내 대표국가로 내세우면서 이 재판이 서구 중심의 재판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하려 한 것 아닐까? 식민지의 민심도 좀 달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판사는 같은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전범들에게 더 심하게 그 죄를 묻지 않았을까?" 데이비드는 인도 판사의 판결이 무척 궁금해졌다. 제국주의 체제에서 당한 민족의 아픔을 이번 재판을 통해 풀어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안의 설명은 데이비드가 짐작했던 것과 전혀 맞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법으로만 판단을 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랐어. 이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불거졌던 이슈이기도 한데, 국제법에는 기존에 침략전쟁(Planning and Waging Aggressive War)을 명확히 범죄로 규정한 조항이 없었거든. 전쟁포로 학대나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는 헤이그 협약 등으로 이미 규정이 되어 있었지만, 국가 지도부가 전쟁 자체를 계획한 행위나 인도에 대한 죄(crimes againt humanity)는 전례가 없었어. 그러니까 법이 없었을 때 벌어진 일인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금에 와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들어 인도 판사는 일본 전범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그 판사 이름이 라다비노드 팔_Radavinod Pal인데 지금도 일본인들이 전범들을 기리면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야스쿠니신사의 아주 좋은 자리에 그의 신주가 들어앉아 있고, 일본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야."
"게다가 이런 판결의 예로 들면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을 해방시키고 동아시아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기도 해. 결국 일본인들은 태평양 전쟁을 제국주의대 제국주의 간의 전쟁으로 인식할 뿐이고, 자신들이 침략한 버마나 말레이이사, 필리핀, 만주와 같은 지역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강제 지배를 받는 곳이고 일본이 그 지역의 원주민들을 공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전쟁 범죄라는 것도 성립할 수 없고 오히려 원자폭탄에 의해 가장 큰 민간인의 피해를 입은 피해국가라고 여기는 것이야."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내로남불이네?"
"그렇지. 그런데 일본은 또 나름대로 면피를 할 조치들을 해 놓았었지.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서운 인간들이야. 연합국들이 한국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 신민'으로 편입시켰잖아. 창씨개명도 했고. 그러니까 외부에서 보기에 조선은 이미 일본 제국의 일부이지 독자적 판단과 법리적 주권의식을 가진 나라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한국인들은 패전국 국민 취급을 당했던 것이야. 그런 의미에서 동아일보의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종 선생의 메달 수여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없앤 일장기 말소 사건은 대단히 큰 의거였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일본이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이기도 하고.."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된 2명의 젊은이가 일본 나가사키 해군사령부의 함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두 젊은이의 표정에서는 슬품이 묻어난다.│광주시 제공 / 경향신문 2025.8.11
친구들의 이야기는 결국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이고 그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나 필리핀은 제국 내 자치영역으로 전쟁 수행의 주체적 역할이 인정되어 식민지였지만 참전국이었고, 한국은 일본의 점령지이긴 하지만 이미 일본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이 되어 연합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으니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머리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을 것이고 패전국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쿄전범재판의 결과는 이미 이야기했듯이 무조건 항복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히로히토 천황은 전쟁의 책임에서 처음부터 자유로워졌고 A급 전범들은 대부분 석방되어 일본의 총리도 역임하면서 군국주의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도대체 언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언제부터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데이비드가 또 이상한 것을 물어보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봐야 해서 조금 더 쉽지 않은데.... 이걸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그러니 일제강점기의 경성으로 돌아가 볼까?"
"뭔 소리냐? 경성은 또 무슨..."
"뭐 그때 그 시절에 조선 남자들이 하던 짓을 해 보자는 것이지. 냉면에 가리구이나 먹으면서 한잔 더 하지는 말이다."
"가리가 뭐여?" 데이비드는 가리구이라는 음식에 대해 들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1939년에 이 근처 낙원동에 있던 식당에서 냉면과 가리구이를 팔았었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저녁 늦은 시간에 요릿집이나 카페에서 한 잔 하고 나면 술 깨는 데 냉면이 좋다고 하여 사람들이 몰렸는데, 냉면 집에서는 냉면만 팔기보다는 갈비 한 두대 같이 팔면 좋겠다 생각한 모양이야. 가리구이는 갈비구이의 예전 말이고, 냉면집에 온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갈비 두 대를 같이 시켰다는 것이야. 그래서 아마 지금 냉면 집에서 고기도 같이 팔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 하여간, 가리구이 한 두대 뜯으러 가지."
"그러자고, 어차피 할 이야기도 좀 여기저기 뜯어야 할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