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퇴적(堆積)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청계천을 걷다 보면 이곳이 흐르는 물만의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물은 흘러가지만, 그 옆에 쌓인 것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돌 틈에 낀 흙처럼, 다리 아래 남은 그늘처럼, 이곳에는 늘 시간이 겹쳐 있다. 어떤 기억은 말로 남았고, 어떤 기억은 이름을 잃은 채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렇게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계속 쌓여 만들어낸 풍경을 따라 사람들이 걷는다. 그리고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배경이 되어 또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청계천의 로망스는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퇴적의 감각이다. 한 번의 사건이나 한 시기의 기억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일상과 선택, 걷고 먹고 지나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현재이고, 또 앞으로도 시간이 쌓여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내는 길이다. 과거는 끝나지 않고, 다만 층을 이루어 오늘의 바닥이 된다.


청계천은 그 사실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것이 먼저가 아니라, 오래된 것이 끝내 남는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새로 닦인 길이 아니라, 수많은 기억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이 글들은 그 위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층과 층 사이에 남은 시간을 더듬는 기록이자 또 하나의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청계천 로망스 1부에서는 다양한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이제 2부에서는 시간이 쌓여 퇴적된 기억이 만들어 낸 바닥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에 대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 대회를 통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또 어떤 퇴적된 과거를 마주하게 될 지 궁금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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