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매김

by 오음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은 글쓰기란 뜻을 펴지 못한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하였다.


유례없이 혼란한 시국을 통과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개인적 번뇌로 일상의 글쓰기를 이어가는 일 삼 어렵게 꼈다. 후련히 해소되지 않은 마음들은 뜻을 펼 곳을 찾아 헤매고, 돌아오는 헛헛함도 고스란히 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잊고 지낸 안부들이 쌓고, 간의 물음표에 마땅한 온점이 찍히지 못 서로가 서로에게 생략되고 마는 서름한 관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침묵이 불편해 침묵을 깨 보지만 결국에는 침묵을 부르고 마는 사이 있기 마련이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증식하던 습성 같은 게 어느새 를 잡았지 더 이상 그런 사이에 곁을 내줄 만큼의 여유를 품지 못 스스로가 가끔 낯설도 하다.


피상적인 것들을 나누며 어렴풋이 알게 되는 본질을 외면하기에는 가려졌던 담 생각보 높고 견고했음을 깨단하기도 다. 허물 수 있을 정도의 열정과 온기가 사라진 관계에서 우리가 취합할 수 있는 순간 어쩌면 함께 마신 커피 잔을 나란히 반납는 퇴식구에서 유일한지도 모른다. 머금은 말을 단정히 삼키고, 머물던 자리를 자취 없이 정돈한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한동안 나라 곳곳을 뒤덮고 개개인의 삶에는 쉼표가 허용되지 않 오갈 데 없는 마음을 기처럼 삼고 뱉었다.

생계를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눈앞에 안친 일들을 헤쳐가며 그밖에 내가 즐거울 일들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순간을 늘려가는 것만큼 나를 살리는 일이 더 있을까.

절망과 불안이 고스란히 통과한 자리의 침묵을 걷어내고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들이 새로이 모여 더욱 단단해지기를 희망한다.




일터에서 아이들의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하루의 작은 동력이 된 요즘, 그 덕분로 아이 못지않게 나도 위안받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이들이 오래 고민하여 가까스로 마친 글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글도 모두가 제각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살아가며 뜻을 펼치지 못하는 순간이 또 느닷없이 오더라도, 그럴 때마다 기꺼이 쓰는 나와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내일의 조각들부터 푼푼히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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