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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Oct 01. 2024

네가 있어야 할 곳


 집에 머무는 시간에 비례하여 집안 살림살이의 쓸모를 살뜰히 살핀다. 한때 간절했지만 이제는 덤덤해진 물건에 애써 눈을 맞추어 본다. 필요에 의해 구매했으나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있고 톡톡히 제 몫의 구실을 해내는 것도 있다.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틈틈이 메운다.


 아이들과 함께 밖을 나가는 일이 잦다 보니 지체 없이 집을 나서는 게 나날이 큰 관건이다. 급히 나가야 할 때 옷장 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진 선택지를 두고 한 벌을 고르느라 애먼 시간을 잡아먹고는 한다.

애들을 챙기며 나까지 챙기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데 더러 날 챙기지 않은 날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기분으로 하루를 난다. 시간에 쫓겨 대충 시작되는 하루는 여지없이 우당탕탕을 자아내고는 한다.


일상의 크고 작은 외출에 그때마다 의미를 부여하기는 벅차지만, 급하다고 아무거나 집어 든 채 삶을 무마하고 싶지는 않다. 대단한 옷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는 지켜내고 싶다.

허투루 보내는 날이 부지기수일지라도 최소 집을 나설 때의 마음이 허투루 인 것은 어쩐지 김이 샌다. 내향인의 외출에는 텐션을 북돋울 매개가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즐겨 찾는 것을 안팎으로 취할 때의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필요했다 틈새 행거 너란 존재가.


 효과는 확실했다. 잦거나 고정적인 외출에 대비해 즉각 집을 나설 수 있는 옷가지 몇 개를 걸어두었을 뿐인데 고민은 줄고 시간이 남았다. 일정에 쫓겨 부랴부랴 나가는 횟수도 그만큼 줄었다. 하루의 시작이 여유로우니 일상의 여백이 절로 따른다.


세상사 자주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오늘도 묵묵히 수행하기 위해, 즐거운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수북한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우리의 동선은 효율적이되 능동적이어야 하므로.


 오늘도 애써 도움닫기의 힘을 빌려 틈새 일상이 '기꺼이'에 닿도록 하루를 맞는다.


쓰고보니 #틈새행거 후기 같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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