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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Jul 26. 2022

복구하시겠습니까

내 머릿속의 지우개

  

  하루에도 메모장 앱을 수없이 켠다. 집을 나서다가, 운전을 하다가, 음식을 하다가도 불현듯 쓰고 싶은 말이 별안간 머릿속에 캡처된다. 순간 스미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되는대로 성급히 저장 버튼을 누른다.

  그래서 내 메모장은 단어의 형태 혹은 급한 대로 어순을 무시한 짧은 문장 같은 날 것 수준의 메모 투성이다. 마치 정렬이 불가한 우리 집 거실 풍경처럼.


 운 좋게도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즉시 이어 쓰기 시작해 끝내 마침표를 찍는 완결형 메모도 간혹 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여전히 처음의 상태에서 멈춰 있다.

  시일 내에 뭐라도 시도하면 그나마 낫다. 불운하게도 한참이 지난 후에 발견된 짧은 메모들은 도통 첫 마음이 뭐였는지 그런 게 애초에 있기는 했는지 싶을 만큼 생경하기만 하다.


 진작에 내 것이기를 포기한 글감에게 그냥 자리만 내어주고 있던 꼴이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왼쪽 하단의 휴지통을 꾸욱 눌렀다. 붙잡고 있어 봤자 돌아올 리 없다는 건 이미 경험치로 안다. 그때 마침 안도의 메시지가 떴다.


삭제해도 pc 웹의 휴지통으로 이동되어 확인 및 복구가 가능합니다.


  쿨한 척했지만 내심 다행이었다. 질척거리지 않고,남은 미련을 합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니 은근히 기쁘기까지 했다.

  

  '변심한 누군가의 마음도 얼마간은 복구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간 나를 통과한 무수한 감정이 문득 스쳤다. 분명 살면서 과연 꺼내어볼까, 꺼내어본들 기억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들이었다. 모양과 그릇이 변했고, 그사이 시들해졌다고 여기는 게 어쩐지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머무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기억을 지웠지만, 잊었다고 생각한 삶의 파편들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삭제해도 삭제되지 않는 말들에 대해 생각한다. 오해였다고 다시 휴지통 뚜껑을 가차 없이 열어젖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끄집어내 본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더듬더듬 맞춘다. 빠진 조각들이 있어 완벽히 맞추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마음을 툭 내려놓았다. 모든 건 오해였을 뿐이다. 완전히 비우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남김없이 지우려면, 비울 각오쯤은 해야 한다. 완전히 비우지 못할 거라면, 지우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복구'라는 항해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친 경험이 유의미해지는 순간이 살면서 다시 올 것이다. 어떤 수치심은 종종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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