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밀 Jul 22. 2022

엄마의 해방 클럽

뒷이야기 상상하여 쓰기

  

 <엄마가 필요해> , <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의 저자 은수 작가님이 이달 초 개설한 글쓰기 모임에서 열 명의 엄마 예비작가들과 쓰기 미션을 시작한 지 3주 차에 접어든다.

  일주에  , 줌으로 만나 한주  읽고 필사하며 쓰는 일들을 자연스레 공유하고 있다. 덕분에 수시로 글감이 떠올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어느정도 붙잡을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글쓰기 근육을 키워주는 모임'이라는 타이틀이 부합하겠다. 날마다 글에 할애하는 시간을 일정하게 기록하는 습관을 익히고 있다.


  2회 차에는 이경희 작가의 '현이의 연극' 중 한 구절을 읽고, 이어지는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쓰는 미션이 있었다. 연극에서 주연도, 조연도 아닌 뒷배경으로 존재하는 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담백하게 녹여내고자 했다.

  아직 원작의 결말은 읽지 않았다. 뒷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아직 내가 가정한 결말로 둔 채로 있다. 예측해버린 세계에 불과해도 놓아주기 아쉬워 며칠 더 곱씹고 반추해본다. 더 이상 본문을 수정하지 않는 날이 오면, 현이의 무대 진짜 뒷이야기를 기대하며 홀연히 도서관으로 향 것이다.




<현이의 연극> 본문 중에.


두 시까지 오라는 현이의 말대로 부랴부랴 시민회관으로 갔다. 예술제에서 연극에 출연하기로 되었기 때문이다. 현이가 출연하는 연극 <숲 속의 대장간>은 제2부의 첫 순서에 있었다.

풀잎 역을 하게 되었다는 현이가, 그동안 매일 학교에서 늦게 오고 휴일에도 학교에 나가 연습을 하곤 할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공연하는 날이 되니까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현이 혼자의 발표회나 되는 것처럼 흥분되어 2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무척 초조했다. 나는 현이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분장을 해야 하니까 일찍 가야 해요”하며 부산을 떨던 현이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르면서 혹 무대 위에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 더욱 흥분해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제2부가 시작되는 종이 울리고 이어 불이 꺼졌다. 막이 오르자 캄캄한 무대가 나타났다. 무대 중간을 비추고 있는 조명 속에 선녀가 서 있었다. 얼마 전에 현이가 모자 달린 푸른색의 옷을 가지고 와서 “선녀 옷은 참 예쁜데, 참새 옷도 예쁘고…” 하며 자기 옷이 덜 예쁜 것에 대해 서운한 빛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한 선녀인 것 같았다.

얼마 후 선녀는 없어지고 밝아진 무대 한가운데에 대장간이 생겼고 그 뒤는 숲이 울창하였다. 나는 현이가 언제 나올 것인가 열심히 지켜봤다. 숲 속에서 참새와 까치 떼가 대장간 앞마당에 날아와서 놀고 춤추고 하는 장면이 나왔지만 풀잎 역을 맡은 현이는 그때까지도 눈에 띄질 않았다. 나는 무대를 계속 지켜보며 현이의 모습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부터 대장간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숲 속에서 합창 단원 모양의 대열을 짓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에 눈이 갔다. 나는 그것이 풀잎들인 것을 알아냈다.

‘현이가 바로 저기, 저 많은 풀잎 중의 하나로 끼여 앉아 있는 거구나!’


(이어서 뒷이야기 상상하여 쓰기)


  그제서야 풀잎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분장의 얼굴이었기에 풀잎 무리 속에서 현이를 찾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쪼그려 앉은 풀잎들을 찬찬히 살피며 짙은 분장 너머 맑은 얼굴들을 가상해보았다.


  왼쪽부터 시작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일곱 번째 아이를 발견한 순간, 반가움에 덜컥 목이 메었다. 동시에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 깊은 구석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곱 번째 풀잎 현이는 소리 없이 제 역할에 골몰해 있었다.


  현이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한 번은 지역 아동미술대전에 출품한 현이의 작품이 덜컥 은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수상하는 친구들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o월 o일에 꼭 와주세요.”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수상 발표를 앞둔, 며칠 전 저녁 식사 중에 현이가  “엄마, 나 이번 그림 상 받으면 사람들 앞에서 트로피 번쩍 들고 수상 소감도 꼭 말할 거야!” 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큰 눈을 반짝거렸던 일이 스쳤다.


  트로피를 자랑할 생각에 부푼 그날 현이의 모습이, 이곳 일곱 번째 풀잎 현이에게로 서서히 이동해 슬며시 포개졌다. 현이를 포함한 7명의 풀잎들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그 자체로 숲의 형상을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어떠한 대사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지만, 선녀가 무대에서 유유히 사라질 때나 참새 떼가 유유히 날아갈 때 풀잎들에게서 바람의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떤 대사보다도 생동감 있는 몸짓이었다.

  아쉽게도 풀잎들이 관객의 주목을 받는 순간은 대략 서너 지점 정도로 단출했다. 하지만 배역에 맞게 힘을 빼고 역할을 묵묵히 소화해내는 현이와 6명의 풀잎 친구들을 보며 ‘이토록 배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어느덧 연극의 2 막이 내렸다.  소명을 다한 무대  조명들이 하나둘 눈꺼풀을 내려 닫고, 이제 조명은 객석 쪽을 비추었다. 숨죽여 공연을 지켜보던 객석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로 남겨 있었다.

  그제야 문득, 관객들의 존재감을 느끼며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어딘지 모르게 먹먹한 미소를 머금은 것이 나와  닮은 관객  명이 눈에 들어왔다. 짐작에 불과할지라도 깊은 공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분은  번째 풀잎의 엄마일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어렴풋한 미소가 번졌다.




작가의 이전글 사물이 보는 나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