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밀 Jul 22. 2022

일상의 해방을 갈망할 때

새로 쓰는 관전 포인트, <나의 해방일지>

  

  장편소설의 긴 호흡이 내겐 어렵듯이 평소 16부작을 넘기는 드라마를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몇몇 작가의 작품은 일단 여러 생각 않고 발부터 들이고 본다. 이미 마음 깊이 담보된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시간은 내게 귀한 손님의 방문과도 같다. 소멸 직전의 지구력은 육아에 이롭게 쓰여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주로 이럴 때 발휘되고는 한다.


 위에 언급한 나의 귀한 작가목록 중 한 명이 박해영 작가다. 전작 ‘나의 아저씨’는 2018년 방영 후 줄곧 인생 드라마로 꼽는다. 삼형제의 짠내 나는 일상도 극 중 이선균과 아이유의 각기 다른 고독한 싸움도 매주 나를 tv 앞으로 끌어당기기 충분한 소재였다.


  최근 종방한 ‘나의 해방 일지’ 역시 스토리나 전개 면에서 ‘나의 아저씨’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이유의 독백을 이어받은 염미정의 대사들은 볼 때마다 혼자 곱씹기 아쉬울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것 같은 염미정의 말들을 주워 담느라 바빴다.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앞의 화면에 집중하면서도 어느새 카톡 창을 열어 친구와 염미정 어록을 조합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름 아닌 육아에 반드시 필요한 스킬인 것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끌어당긴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하이에나처럼 쏘아보던 구 씨의 거친 눈빛도, 산포에서 싱크대만 만들기에는 다소 잉여 느낌 충만한 그의 근육도 아니었다. 바로 산포 염제호 댁의 숨 막히는 가족 식사 장면이었다.


  염 씨 삼 남매의 어머니는 남편 일 뒷바라지와 농사일을 병행하며 다 큰 자식 셋의 끼니를 책임지는 혹독한 살림꾼이다. 오래 뜸 들여 지은 압력솥의 밥, 갓 따서 싱싱한 채소로 무친 나물 반찬, 깊은 손맛이 우러나는 찌개와 국을 한 소끔 끓여 매끼 정갈한 상차림을 제공한다.


  물론 아버지가 이 노고를 모를 리 없다. 아들 염창희가 무리한 대출을 끼고서라도 차를 사고 싶어 하는 간곡한 마음도, 서울까지 왕복 서너 시간을 하루 출퇴근에 소비하는 게 못마땅하지만 몇 푼이 아쉬워 버티고 견디는 자식들의 삶도 훤히 알고 있다. 모든 걸 알지만 확실한 대안이 없는 것도 알기에 그는 더 굳게 입을 다물뿐이다.


  분명, 한데 모여 함께하는 식사 자리인데 염제호 댁의 식사 시간은 어쩐지 빈 젓가락 소리만 요란했다. 누구도 선뜻 자신의 진짜 마음을 꺼내올리지 못한다. 적막한 공기 때문인지 보기 좋게 차려진 상 위의 음식들마저 생기를 잃은 것만 같다.

  다음 날의 식사 자리도 어김없이 비슷한 기류가 흐른다. 이 공기가 불편한 자들은 서둘러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소화시키기 바쁘게 자리를 뜬다.


jtbc,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이는 나의 시가 식사 풍경과 큰 무리 없이 포개진다. 시아버지는 유독 식사 자리에서 말씀이 없으신 편이다. 식탁에서는 으레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거나 어제 저녁의 국보다 간이 더 알맞다는 칭찬이 오가거나 혹은 주말의 일상을 공유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내게는 이 적막함을 견딜 힘이 부족했다.

  음식물이 행여 옆 사람에게 튀지 않을까 주의하고, 먹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방해되지 않게 최대한 나의 존재감 같은 것은 고이 접어두어야 할 것처럼 웃픈 엄숙함은 실로 문화 충격이었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몇 차례 화제를 끌어도 돌아오는 말은 재빠른 단답형뿐이다. 정적에서 열렬히 해방되고 싶던 나는 그럴 때마다 '아! 어서 자리를 뜨자’ 하고 마음먹었다. 유유히 설거지존에 입성하면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 안도의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기세였다.




  누구나 어색한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다 큰 성인이 부모님과 한 집에 살 때 점차 부모 세대와 공유 가능한 접점은 줄어들고 이미 고유의 자아가 굳어진 삼 남매가 한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그에 감응하여 공감을 주고받는 것은,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살기로 한 이상, 최소의 소통은 필요하다. 애써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이 바로 식사 시간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갓 끓여 따끈한 국물과 더불어 서로에게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의 식사 시간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생기 있고 온전한 대화가 자연스레 물꼬를 틀 것이다.


  극 중 다양한 화제성 요소에 주목할 수 있던 추앙받아 마땅한 작품이었지만, 주목받지 않은 몇몇 장면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에 대해 한 번쯤 거리낌 없이 써 내려가고 싶었다. 등장인물 누구 하나 평면적으로 그려내는 법 없는 박해영 작가의 범관대한 시선이야말로 열렬히 추앙하는 마음을 담아.


  종방한 염제호 댁의 식사 시간도, 더불어 나의 시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저녁 식탁에도 하루를 마감하기에 적당한 활기와 치유가 깃들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해방 클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