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
나는 기억한다. 회사 점심시간이면 우리는 식사를 가벼이 해결하고 12시 즈음 일정하게 만나는 편이었다. 심신 단련이 목적이었던 만큼 가볍게 뛰거나 걷기 시작했다. 볕이 따가운 날은 미리 준비해둔 모자를 챙겨 나갔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걸으면 될 일이었다. 혹독한 날씨라도 우리의 걷기에 크게 방해되지는 않았다.
고정 멤버는 3명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두 명 다 미혼이었다.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급적 육아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거친 호흡을 뱉는 동안 생각과는 달리 양육자로서의 어려움을 자주 토로했던 날들이다. 육아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들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담백한 위로를 건넸다. 함께 수변을 걸으며 우리는 자주 웃고, 비워내는 연습을 했다.
소설가 하루키가 한 날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던 원동력은, 매일같이 가모 강변을 조깅하는 습관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삶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일단 집 밖으로 나서 무작정 걷는다.
신기하게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 무거운 안개가 걷히는 경험을 한다. 걷다 보면 뜻밖의 해결책들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온갖 고민들이 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심신안정이 덤으로 해소되는 이 정기적 걷기를 게을리할 이유는 달리 없다.
그리고 우연히 어제 오전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보고 오는 길에 이곳 수변길을 지나쳤다. 퇴사한 지 3년이 훌쩍 넘었기에 그간은 시간을 내어 이곳에 들를 일이 없었다.
잠깐 신호 대기를 하는 짧은 찰나에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차창 밖에 느껴지는 여름의 습한 공기는 아득했고 수변은 고요했지만, 내 마음만은 바삐 요동치고 있었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