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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Jul 22. 2022

사물이 보는 나의 하루

거실 벽시계의 관점에서

  

 날이 밝았다. 아이의 등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방 안이 제법 부산하다. 그녀의 하루는 어김없이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시작된다. 오늘은 더 마음이 분주한지 평소보다 부쩍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방 안 허공을 맴돌다 후드득 내려앉는다. 아이가 늦잠을 자기도 했거니와 오전에 주방 싱크대 리폼 건으로 설치기사가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힘찬 구호에 어느새 둘째도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빼꼼 거실로 나온다. 아이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 간단히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잡해 보인다. 거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과 책들, 비우지 못한 음식물쓰레기, 수북이 쌓여있는 빨랫감 같은 게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첫째는 평소대로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고, 서둘러 둘째의 등원 준비를 마친 그녀는 아이와 문을 나섰다가 내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철컥-하는 현관문 해제음과 함께 돌아왔다.

아이들과 남편이 집을 비운 평일 오전 이 공간에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적막함과 고요함이 드리워진다. 가족의 그림자로만 존재할 것 같던 그녀의 형체가 슬그머니 보이기 시작한다. 현관 앞 거울에 비친 행색이 꽤나 처량하다. 애써 시선을 거두고 주방으로 향한다. 이 순간만큼은 온전한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기분인지 느릿느릿한 모양새로 서서히 커피를 내린다. 이내 퍼진 원두향은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

 순간의 정적도 잠시, 낯선 설치기사의 방문으로 그녀의 발걸음이 다시 바빠진다. 집에 외부인이 오는 일이 더러 있지만, 오늘처럼 민낯의 집이 공개될 때면 처음 겪는 일처럼 머쓱해진다.


 전업주부로 지낸 지는 올해로 3년 차다. 둘째 출산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고, 6년 만에 다시 하는 육아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육아가 그녀 일상 전반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묵직한 기분에 수시로 사로잡힌 듯 보였고, 그러한 기분과 하나 되어버린 몸도 자주 방전되었다.

 그나마 코로나가 어느정도 잦아들며 둘째의 등원이 순조로워지자 표정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따금 '나 갑자기 이렇게 편해져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규제에서 해방될 때 불현듯 사로잡히는 무력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그녀를 관통한 게 아니었을까.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아쉽게도 그녀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하지만 외출을 마치고 현관문을 유유히 젖히고 들어오는 걸음의 보폭이나 집에 도착 후 먼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통해 어렴풋이 바깥에서의 감정 상태나 기분을 가늠할 수 있다.

 평소와 같은 보폭의 걸음도 유난히 경쾌해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외출의 기억을 한 걸음씩 무겁게 내딛으며 떨치듯 보일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최대한 내 몸 초침의 일정한 움직임조차 방해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 나는 이곳 벽에 걸린 채로 그녀에게 일정한 시간을 부여하며 일상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서적인 안온함을 선사하고 싶다. 그래서  몸의 전원을 잠시 꺼둘  있다면, 그렇게 보존된 시간을 기꺼이 그녀만의 시간을 갖는 일에 보태고 싶다. 나는 오늘도 소리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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