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해방에 이르렀는가
어느덧 글쓰기 모임의 긴 여정이 끝나가고 있어. 매일 제자리걸음 하며 살던 일상에 '엄마의 해방클럽'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문득 세 달 전 다짐이 궁금해져 모임이 막 시작됐던 6월 초의 기록을 꺼내어 봤어. 그곳엔 비장하진 않아도 삶의 어떤 변화를 갈망했던 것만은 분명한 지난날의 내가 있더라.
전업맘일 때도 워킹맘일 때도 주무대만 다를 뿐 감정 노동은 늘 있기에 습관적으로 상쇄할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써왔어.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찾아 듣고 도서관에 드나들며 혼돈과 허기에서 얼마간 벗어나기를 반복했어. 그리고 읽다 보면 그 끝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언젠가는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다.'
쓰는 동안 줄곧 드는 생각이 있었다면, 지난 3개월은 알고는 있어도 애써 외면했던 나를 새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거야.
결의에 찼던 '3 해방 표어'로부터 얼마만큼 해방된 걸까. 주관적이고 다소 미흡한 잣대라 해도 그간 느낀 바를 적어보려고 해.
1. 쓰는 주저함에서 해방
매일은 아니지만 틈틈이 쓰는 습관이 전에 비해 잡힌 건 분명해. 예전에는 생각을 글로 적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고, 몇 줄 쓰는 것도 헤맸는데 그때에 비하면 궁핍한 분량의 굴레는 분명 면한 느낌이야.
그리고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3개월 단위로 나를 점검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생겨.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직관이 부족한 내게, 3개월은 꽤 적정 수준의 미래라고 보거든. 가까운 미래를 분기별로 갈음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차근차근 발디뎌 보고 싶어.
2. 타인이 먼저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방
이 말인즉슨,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다른 시각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잖아. 다짐할 때도 이행이 어려울 거라 예상했고, 돌이켜봐도 과연 내가 잘한 건지 판단이 어려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여러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너그러울(이라 쓰고, '내려놓을'이라 읽음) 수 있겠지만, 순간의 기분을 느끼고 곱씹을 시간은 대부분 확보하며 지내기에. 아마 평생 수행이 필요한 문제일 거야.
3. 지금 해야 할 일의 강박에서 해방
쌓여있는 to-do list를 외면하고 에라 모르겠다 열품타를 켤 때가 많았어. 허용 앱 설정도 안 한 상태라 일단 시작하면 속세에서 자동으로 멀어지게 되더라. 효과음 없는 21세기 엠씨스퀘어 느낌이랄까.
(열품타: 열정을 품은 타이머, 독서/공부 시간 측정에 요긴한 앱)
덕분에 책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어. 당장 발 벗고 나서 처리하지 않아도 삶은 생각보다 잘 돌아가더라. 괜히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눈 쓱감고 열품타를 켤 거야, 앞으로도 쭉.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심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그래서 어디로도 부칠 수 없는 찰나의 마음이 잠시 머물 수 있게 마음을 더해 준 동지들께 감사해. 또 진솔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작가님의 다정한 헤아림을 기억할 거야. 한 주에 하나씩 주어지는 과제가 재밌었거든. 강제성이 없는데도 매번 하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녔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해.
몇 해 전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듣다 먹먹했던 경험이 있어. "그저 그런 이야기에 대해 조금 다른 말을 해주는 게 삶"이라는 말. 배철수 님의 진중한 음성도 한몫했지만, 그저 그런 나의 이야기만 흘러도 조금 다른 말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지.
해방클럽은 3개월간 나의 '어딘가'가 돼어 줬어. 묵묵한 공감과 따뜻하게 오가던 말을 되도록 오래 머금고 싶어. 읽고 쓰는 동안 함께여서 감사했고, 서로를 잇는 글과 마음이 유효하다면 아쉬움과 작별을 고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며 자욱한 안개 투성이지만 일단 하루하루 걸어볼 거야.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그리고 끝나지 않을 모두의 삶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