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될 수 있는 것들> 그 후
노래를 듣다 보면 종종 궁금해진다. 노랫말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얼핏 시 같기도, 산문을 압축해 놓은 것 같기도 한 아름다운 노랫말일수록 마음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되뇌고, 그러다 소리 내어 불러보며 공허함을 증폭시키거나 소멸해버리기도 한다.
"노래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무엇이든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 나만의 노래로 만들어 볼까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솔깃한 문구의 포스터를 만났다. '좋아서하는밴드'의 싱어송라이터 안복진 님이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6주 간의 작사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귀가 후 간곡한 마음을 담아 수강신청서를 작성했고, 며칠 후 도착한 합격 문자와 함께 그렇게 송라이팅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수업이 있는 목요일 저녁이면 꼭 비가 왔다. 장마철이기도 했으니 처음 한두 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총 6회의 수업 동안, 하루도 비를 피해 간 날이 없었다. 관성처럼 빗길을 오가며 강렬하고 벅찼던 과거의 순간들이 덩달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래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불러본 경험은 있었다. 지인의 결혼식에서 부른 두 번의 축가. 물론 지금 떠올리면 이불킥의 순간이다. 웨딩홀 단상을 무대로, 하객을 관객으로 느끼는 자기 최면도 축가의 도입부를 열자마자 허무하게 분열했던 기억.
특히 듀엣으로 아이유의 <잔소리>를 부른 날은, 특유의 대화체 가사 때문인지 어설픈 뮤지컬이라도 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노래 도중에 임슬옹 역의 상대 축가남과 눈을 맞추는 씬(?)이 있었는데 이 어색한 눈짓과 손짓은 예비 신랑, 신부의 다정함과는 극명한 대비를 절로 자아내니 이 구역 코노 스타의 처절한 무대(?) 체험은 그 길로 자취를 감췄다는 후문.
송라이팅 수업의 꽃은 5주 차, 직접 자신이 쓴 가사의 곡을 불러보는 시간이다. 녹음실에서 가수와 음악 관계자분들을 마주한 채 내가 쓴 노래를 불렀다. 작사곡의 제목은 <산보>로 정했다. 익숙한 멜로디에 나의 경험치를 담은 가사를 입혀보고 곡의 느낌을 살려 최대한 담담하게 불렀지만 원곡자를 마주한 채 불러보는 이 시간은 어쩐지 나만 아는 흑역사 축가의 연장선 같기도 했다.
수업 마지막 날은 음감회가 진행됐다. 진짜 무대에 서서 녹음한 노래를 사람들과 같이 듣고, 가사를 쓰게 된 동기나 소회를 밝혔다. 그 시간이 마치 서로의 등불이 되어 무대와 객석을 번갈아 비추는 것처럼 환하고 든든했다. 긴장은 했지만 진심을 담아 부른 노래, 원곡자에게 당장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음색이라는 말을 들으니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빈 공연장을 가득 메운 나의 노래를 객석에 앉아 듣던 그날의 감흥과 떨림, 1열에서 넋을 잃고 관람한 뮤지션의 즉석 무대공연, 그리고 지난 6주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한 줌의 경험을 끌어안는다. 노래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보고 싶다.
<산보>
뒤엉켜버린 머릿속 가뿐히 덜어줄 스니커즈
세상의 무게 모두 내가 안은 듯
발맞춰 걷고 싶은 걸, 풀어진 신발 끈 고쳐 매고
한 걸음을 또 괜찮아 걸어볼까
옅은 풍경 너머 가려진 짙은 나의 표정 궁금해
가던 길을 멈춰 문득 떠올려봐 지나간 시절이야
그때 난 무얼 그렸을까 내 눈앞에만 보였던 것들
되돌아가기엔 너무나 멀리 돌아온 걸 알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여전히 반짝여 꿈을 꾸네
끝난 게 아니야 이제 다시 시작인 거야
하루하루 다가갈 거야
뒤엉켜버린 머릿속 가뿐히 덜어줄 스니커즈
세상의 무게 모두 내가 안은 듯
여전히 간직해온 꿈 꺼내어보고픈 오늘, 지금
나의 시간은 아껴온 선물이야
*좋아서하는밴드의 <자랑>이란 곡에 새로 쓴 저의 가사를 입혀 녹음해본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