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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Aug 19. 2022

취미로 가사를 적는 일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들> 그 후


 노래를 듣다 보면 종종 궁금해진다. 노랫말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얼핏 시 같기도, 산문을 압축해 놓은 것 같기도 한 아름다운 노랫말일수록 마음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되뇌고, 그러다 소리 내어 불러보며 공허함을 증폭시키거나 소멸해버리기도 한다.


"노래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무엇이든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 나만의 노래로 만들어 볼까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솔깃한 문구의 포스터를 만났다. '좋아서하는밴드'의 싱어송라이터 안복진 님이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6주 간의 작사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귀가 후 간곡한 마음을 담아 수강신청서를 작성했고, 며칠 후 도착한 합격 문자와 함께 그렇게 송라이팅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수업이 있는 목요일 저녁이면 꼭 비가 왔다. 장마철이기도 했으니 처음 한두 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총 6회의 수업 동안, 하루도 비를 피해 간 날이 없었다. 관성처럼 빗길을 오가며 강렬하고 벅찼던 과거의 순간들이 덩달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래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불러본 경험은 있었다. 지인의 결혼식에서 부른 두 번의 축가. 물론 지금 떠올리면 이불킥의 순간이다. 웨딩홀 단상을 무대로, 하객을 관객으로 느끼는 자기 최면도 축가의 도입부를 열자마자 허무하게 분열했던 기억.

특히 듀엣으로 아이유의 <잔소리>를 부른 날은, 특유의 대화체 가사 때문인지 어설픈 뮤지컬이라도 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노래 도중에 임슬옹 역의 상대 축가남과 눈을 맞추는 씬(?)이 있었는데 이 어색한 눈짓과 손짓은 예비 신랑, 신부의 다정함과는 극명한 대비를 절로 자아내니 이 구역 코노 스타의 처절한 무대(?) 체험은 그 길로 자취를 감췄다는 후문.


 송라이팅 수업의 꽃은 5주 차, 직접 자신이 쓴 가사의 곡을 불러보는 시간이다. 녹음실에서 가수와 음악 관계자분들을 마주한 채 내가 쓴 노래를 불렀다. 작사곡의 제목은 <산보>로 정했다. 익숙한 멜로디에 나의 경험치를 담은 가사를 입혀보고 곡의 느낌을 살려 최대한 담담하게 불렀지만 원곡자를 마주한 채 불러보는 이 시간은 어쩐지 나만 아는 흑역사 축가의 연장선 같기도 했다.

 수업 마지막 날은 음감회가 진행됐다. 진짜 무대에 서서 녹음한 노래를 사람들과 같이 듣고, 가사를 쓰게 된 동기나 소회를 밝혔다. 그 시간이 마치 서로의 등불이 되어 무대와 객석을 번갈아 비추는 것처럼 환하고 든든했다. 긴장은 했지만 진심을 담아 부른 노래, 원곡자에게 당장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음색이라는 말을 들으니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음감회 오프닝 무대


 빈 공연장을 가득 메운 나의 노래를 객석에 앉아 듣던 그날의 감흥과 떨림, 1열에서 넋을 잃고 관람한 뮤지션의 즉석 무대공연, 그리고 지난 6주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한 줌의 경험을 끌어안는다. 노래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보고 싶다.



<산보>


뒤엉켜버린 머릿속 가뿐히 덜어줄 스니커즈

세상의 무게 모두 내가 안은 듯

발맞춰 걷고 싶은 걸, 풀어진 신발 끈 고쳐 매고

한 걸음을 또 괜찮아 걸어볼까


옅은 풍경 너머 가려진 짙은 나의 표정 궁금해

가던 길을 멈춰 문득 떠올려봐 지나간 시절이야


그때 난 무얼 그렸을까 내 눈앞에만 보였던 것들

되돌아가기엔 너무나 멀리 돌아온 걸 알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여전히 반짝여 꿈을 꾸네

끝난 게 아니야 이제 다시 시작인 거야

하루하루 다가갈 거야


뒤엉켜버린 머릿속 가뿐히 덜어줄 스니커즈

세상의 무게 모두 내가 안은 듯

여전히 간직해온 꿈 꺼내어보고픈 오늘, 지금

나의 시간은 아껴온 선물이야


*좋아서하는밴드의 <자랑>이란 곡에 새로 쓴 저의 가사를 입혀 녹음해본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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