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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Sep 14. 2022

뜨거운 명절은 가고 남은 건

카놀라유와 한방샴푸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시대라 해도 일 년에 두 번, 때가 되면 올 것은 온다. 그럼에도 지난 3년간 경험한 명절은, 기혼 여성의 입장에서 코로나가 불러온 뜻밖의 수혜 구간으로 존재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차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거나 아예 지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모처럼 확보된 연휴의 개념으로 가족여행을 추진하기도 한다. 보수적 유교 문화를 중시하는 일부 기성세대에겐 아쉬운 행보일지라도, 급속한 사회 변화에 감염병 이슈가 맞물려 전보다 다양한 양상의 명절을 체감하게 되는 것 자체로 흥미로운 쟁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의 명절 루틴에 위와 같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음식의 가지 수가 현저히 줄었거나 양가를 찾아뵙는 일정이 축소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이러한 변화 태세에 그나마 동참했다고 느낀 부분은, 명절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영역대가 확실히 좁아졌다는 점이다.


 오다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보기 쉽지 않을 시가 쪽 까마득한 촌수의 누군가를 한 공간에서 급작스레 보게 되는 장면은, 비록 일 년에 한두 번에 불과한 이벤트성 일지라도 도통 적응할 성질의 것이 못되었다.

 안면도 안부도 궁금하지는 않은 누군가에게 순간의 정적을 모면하려 말문을 트는 것, 피로한 현대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겪고 있는 일이 아닌가. 


안물안궁의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지고, 작년에 했던 말들이 도돌이표처럼 또 한 번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할 즈음, 그 공기가 불편한 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타성에 젖어 어쩔 도리없이 한데 모여진 이러한 집합이 유지 존속되는 '명절 문화'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까.




 그간 이어져 온 명절 문화는 유독 무리짓기를 좋아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가부장제와 결합하여 산출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과거에는 음식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미덕을 높이 샀지만,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의 전환이 확산되는 현시점에서도 이는 과연 가치로운 문화로 작용할 수 있을까.


 변화의 국면을 맞은 시기의 '명절 문화' 중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각종 선물 거래가 여전히 성행하는 점이다. 우리 집 다용도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유통기한의 압박에도 거뜬없는 카놀라유와 스팸이 일 년 이상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웬만해선 재고를 쟁이지 않는 내게 그들은 잉여 부산물에나 다름없다.


 나눔의 풍습에 젖어 다 소비하지도 못할 식자재와 음식을 베풀고 장만하는 문화는 얼마쯤 더 지속되어야 위기의식이 고조될 수 있을까. 쓸모와 소용 이상의 수요를 살뜰히 헤아리지 못해 하릴없이 쌓여가는 선물세트 벽돌은 다음 명절까지 깨뜨려야 하는 테트리스가 아니다. 또한 미션에 실패한다 해도 카놀라유와 스팸 어택으로부터 당분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양이 2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선뜻 가늠하기도 어려운 이 부피는 자그마치 올림픽 수영장 8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지구를 위한 적정 소비의 실천을 더 이상은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다가 전체 음식쓰레기의 1/4은 먹기도 전에 버려지는 현실 앞에서 조상님을 위한 차례상만을 열외로 두는 일은 없는지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추석 날 아침,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머리를 감으려고 보니 욕실 한 편에 한방샴푸가 즐비하다. 작년 명절에 시어머니가 "집에 샴푸 없으면 이것 좀 가져가. 우린 아직 새것도 한참 더 남았어." 라며 권하시던 그 샴푸였다.

건조한 두피 개선과 탈모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내게는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제품은 아니다.


 한방 향 가득한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며 생각한다. 다음 명절에는 체면을 중시하여 빈손 대신 택한 일률적인 선물세트보다는, 소박하더라도 주고받는 이들의 마음이 좀 더 담뿍 담긴 것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시대에 맞게 조금씩 고쳐 쓰는 관행이라면 얼마간 우리에게 유용할테니 말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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