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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완 Aug 30. 2019

'조국 폴리페서 '논란에 담긴 정치참여의 대한 불신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대한 논란 중, '폴리페서'의 대한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폴리페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과 정치 참여의 대한 왜곡된 시각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정치= 편향적 이라고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편향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편향성이 공존과 견제 과정을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타인을 설득해 나감으로서 자신의 생각의 대한 선택적 우위를 갖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기준의 편향이 아닌 추의 편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자신이 설정한 기준과 사회 공영의 기준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기준 설정 과정을 통해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느쪽에 자신의 추를 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기 대문에 추가 놓여지는 위치만을 본다면 편향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쪽의 추의 무게에 의해 균형을 잡게 되고 또한 이 과정에서 수정을 통해 추를 내려 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자신의 추를 어느 쪽에 놓았다 하여 그 사람이 편향적이다 내지 편향적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편향적이라기 보다 편향적인 의견 내지 사람들 간의 균형을 잡아가는 행위이고 이를 통해 합리적 분배가 이뤄지게 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러한 정치 과정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으로 보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다음으로 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요인 중 하나는 교수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학생들에게 주입이 되거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교육의 토론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라고 본다. 교수가 생각을 말하는 것과 이에 대한 동의와 반박 그리고 재반박으로 이뤄지는 토론 과정이 대학을 비롯한 초중고 기초 교육 과정에서도 부재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자 오해이다.


따라서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나이와 성별, 신체적, 경제적 차이 등등 여타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견주어 볼 수 있는 토론 교육 및 문화가 조성이 된다면 앞에서의 우려는 불식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담으로 하나를 덫붙이자면 사회인의 정치참여를 보는 시각의 조정과 함께 정치인의 사회인으로서 회귀가 가능해 지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제도와 시각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러한 제도와 시각의 마련 없이는 소위 직업 정치인의 출현 및 젊은 정치인의 발굴이 어려울 뿐 아니라 정치인이 하나의 성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을 하고 제도권 내 정치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성장 내지 사회로의 회귀가 가능해 져야만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논란과 같이 정치 참여의 대한 논란과 부정적 시각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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