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춤춘다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by 전이슬

나는 춤을 못 춘다. 춤을 영 못 추니 몸을 움직이거나 그와 비슷한 일이 있으면 애써 피한다. 이런 내가 갑자기 춤을 추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밤 수십 명이 모인 송년모임이 있었다. 떠들썩한 곳이라 가기 전부터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꼭 참석해야만 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앞에 앉아 열심히 박수를 치다 사회자와 눈이 마주쳐 갑자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앞에 서는 일도 불편한데 아니나 다를까 음악이 나오고 사회자가 같이 선 몇 사람에게 춤을 추라는 것이었다. 박수치고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만있는 것도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결국 막춤을 추었다.


다음 날 아침 쪼그리고 앉아 생밤을 까는데 자꾸 춤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을 지우는 마법의 지우개라도 있다면 쓱쓱 지워버리고 싶었다. “작가님 춤추는 거 잘 봤어요.” 혹시 지난 밤 나를 기억해 누가 이렇게 놀리지나 않을까. 너무 창피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올라왔다. 한번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점점 더 얼굴이 달아오르고 급기야 이 나이 되도록 악기 하나, 춤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뭐했나 하는 자책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손에 쥔 밤을 놓쳐 손을 쓱 베고 말았다. 검지 끝에서 피가 스며났다. ‘이 놈의 정신머리! 밤을 까면서 밤 생각은 않고 오직 춤 생각만 하고 앉아 있었구나.’ 서둘러 서랍을 뒤져 밴드를 찾아 붙이는데 순식간에 멈칫했다.


‘피가 난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구나. 죽었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내가 살아 있으니 싫어하는 춤도 출 수 있었구나.’ 불현듯 죽비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깨어났다.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 경험하고 있구나 싶어 춤을 춘 기억은 순식간에 감사함이 되었다. 그렇다면 삶의 잔가지들이 주는 아픔도, 불편하고 힘든 사람의 관계도 전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지난밤을 생각하면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실은 다 안다. 거기 있던 누구도 잠깐 동안 막춤 추던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리란 것을. 오직 나 혼자 집착에 매여 그 시간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 정도면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세상에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뭔들 어떠랴. 이렇게 나무토막 같은 나도 여전히 나인 것을, 평생 춤바람 날 일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서 나는 쪼그리고 앉아 다시 밤을 깠다.


AI 생성이미지(Google Gemini)



※ 이 글은 불교신문(2019.03.06)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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