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2모작

by 박재승

문득 차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노래 한 구절이 마음을 툭 건드렸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 다시 다가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남겨 두겠소….” 젊은 인디밴드의 사랑 노래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가사가, 지금 우리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렸던 뜨거운 시절.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며 인정받고, 집안의 가장으로서도 가장 빛나던 시절. 그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덧 ‘퇴직’이라는 인생의 가을 앞에, 볼품없어져 버린듯한 모습으로 움츠려 있는 지금의 5060 세대의 모습이 겹쳐졌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제 일자리에서 밀려나 잔뜩 어깨가 처져 있는 내 또래 수많은 남자들의 모습이 스쳐 갔다.

그러자 가슴에서 갑자기 뭔가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과연 우리에게 남은 게 볼품없을까? 열정을 바쳐 일하며 쌓았던 수많은 경험과 전문지식들이 이제 다 쓸모가 없어진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5060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들이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30년 이상 쌓아 온 현장의 경험은 결코 볼품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치열했던 삶의 경험이 다시 세상을 열어 가고, 이들이 다시 도전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침체된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면 온몸과 온 마음으로 터득한 경험은, 분명 어설픈 재능을 앞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또다시 다가올 누군가를 위해서 남겨 두겠소….” 그렇다. 다가올 인생 2막이라는 새로운 문 앞에서, 나 자신을 볼품없다 여기지 말자.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 지식, 연륜의 가치가 결코 용도 폐기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자.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그 역량을 썩히지 말고 새롭게 도전함으로써 남은 30년, 40년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은퇴 설계라는 단어를 지우고 50대에 새로운 스펙을 만들고 새로운 인생 이모작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신중년의 모습이다.

은퇴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etire’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반환점에서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우는(re-tire) 것, 즉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인생 후반에 스퍼트를 내기 위해 타이어를 바꿔 끼우는 것이다. 어제의 삶과는 다른 삶, 본래의 나를 찾는 새로운 인생의 여행길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을까? 땀 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듯 현재의 인생을 잠시 되돌아보고 나의 현명한 미래 설계를 그려 봐야 하지 않을까. 이전이면 50~60대는 손자 손녀를 돌보고, 양로원에서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이제는 지하철 경로석 주변에서조차도 감히 엄두도 못 내는 ‘나이 좀 든 청년’의 소리를 듣는 100세 시대가 되었다. 결국 70~80세까지 자기 수입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젊어서부터 도전적인 삶을 살고 갈구해야 지속적인 생산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가처럼 주체적으로 살아야 멋진 시니어의 삶, 노년의 화려한 인생을 살 수가 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삶의 우회로를 달려 나갈 수 있는 도전이 새로운 인생 2막을 만든다. 그 용기가, 또 한 번 더 뜨거운 여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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