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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y 27. 2022

글쓰기가 업이 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실험 중

회사를 그만뒀다. 희망차게 시작했던 일. 함께 창업을 했다 해야 할지. 취업을 했다고 해야 할지. 설명하기도 애매했던, 친구가 하는 창업에의 동참. 창업 멤버로 처음부터 세세하게 함께 의논하며 시작한 회사였다. 8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을 때,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우리 같이 해보자." 친구가 말했을 때 오래 망설이지 않고 "그래."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쉬이 대답해줄지 몰랐다고 놀란 것은 오히려 제안을 했던 친구 쪽이었다. 왜 그렇게 빠르게 대답할 수 있었는지를 더듬어 보면, 역시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취미로 하는 일상적인 글쓰기를 지나 팔기도 해야 하는 '쓰는 사람'이 된 것은 내 책을 쓰면서부터였다. 일단 출판사에게 내 원고를 팔아야 했고, 그다음에는 독자들에게 완성된 책을 팔아야 했다. 책을 팔아 큰 수익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책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이었다.


그 당시 내 닉네임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쏘냐라는 닉네임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이름이다. 러시아 교환학생 시절, 이름에 의미를 두기보다 내 본질에 의미를 두겠다 결심하면서 내게 붙여줬던 가장 흔한 러시안 네임. 그러니 온라인 상에서 계속 사용하기에도 아무 의미 없는 이름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나를 '쏘냐'라고 부르기로 했던 그때의 마음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기에 쉽게 다른 이름을 들일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보통 책을 내는 사람들은 '작가'라고 자신을 칭하더라고. 그러니 '쏘냐' 뒤에 '정소령 작가'라고 붙이면 되지 않겠냐고. 오. 그거 괜찮다. '정소령'이야말로 가장 고유한 나를 칭하니까. 그 뒤에 따라붙은 '작가'라는 말은 책 마케팅에 필요한 단어라 생각해 함께 쓰기로 했다.


작가.... 사실 책이 나오고 마케팅하는 잠시 그렇게 불리면 끝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엄마로 돌아오면 그만. 그래서 붙일 수 있었던 타이틀이었다. 그런데 2년이 넘도록 나는 똑같이 불리며 온/오프라인 세계를 살고 있다.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단지 책을 한 권 내놓고 '작가'라 불리기엔 부끄러웠다. 그런 생각이 확고해지던 날 내 닉네임에서 '작가'라는 말을 지워냈다. 작가를 내 아이덴티티 중 하나라고는 할 수 있지만, 내 대표 아이덴티티라고 하기엔 애매한 게 확실했다. 그리고 나를 '쓰는 사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쓰는 사람으로 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렬해졌다. 그래서 계속 썼다. 블로그에도 쓰고, 브런치에도 썼다.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로 돕는 일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새로운 키워드가 떠올랐다. 수. 익. 화. 계속해서 하고 싶다면, 결국은 수익화도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가 아닌 '나의 글'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즈음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창업에 함께해 줄 것을 제안한 것은. 친구가 보여준 비전들 중에 '매거진 창간'이 있었다. 나는 쓰는 사람. 내 글을 팔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매거진에 글을 쓰는 것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전략부터 운영까지 많은 일을 해야 할 터. 하지만 이 역시 흥미로웠다. 마케팅 전략을 하던 과거의 나를 소환해내는 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나는 그만 회사에서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들은 단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오늘의 글에서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아, 오해를 막기 위해 한가지만 얘기해두자면 친구와의 문제도 회사의 문제도 아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크게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는 건 쉽지 않았다. 그만두어야 할 많은 이유들만큼이나 계속해야 할 이유도 많았으니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끝'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역시 나는 '쓰는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에디터로 하나의 잡지를 창간하고 1,2호를 펴내면서 많은 걸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퀀텀점프의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글을 기획하고 준비했으며, 다른 장르의 글을 쓰기도 했다. 처음이라서 어려웠던 만큼 끝낸 후에 남은 것도 많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쓰는 일에 저력을 가진 사람이다. 꽤나 매력적이었던 일을 그만두고 나오면서도 이런 희망을 가졌다. '이번 기회가 쓰는 일을 위한 유일한 기회는 아닐 거야. 이걸 놓는다고 해도, 나는 무엇이든 쓸 수 있고 언제든 쓸 수 있어.'


혹자는 이걸 자신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될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냐고? 조급함을 내려놨기 때문에,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20년쯤 노력하면 내 나이 60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겠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켰는데, 20년은 비교도 할 수 없이 긴 시간. 적어도 지금 나는 기본 바탕쯤은 갖추었다고. 그러니 지금부터 착실히 쌓는다면 뭐든 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글쓰기가 업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 답을 얻진 못했다. 창업과 창간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스스로 답안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전혀 얻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모르던 글 쓰는 업의 세계를 좀 더 알게 됐으니 답을 얻고 싶을 때 쓸 만한 힌트들도 늘어난 셈이다. 어쩌면 나는 그 답을 애써서 찾지는 않기로 스스로 결정한 건지도 모르겠다. 애쓸수록 조급해지니까.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시간을 견디는데 가장 큰 적은 조급함이다. 그저 그 시간을 지나다 보면 어느 날 그 답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꼭 얻으려는 목표 같은 것이 없어야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 목표가 나타날수록 조급해지는 사람. 그래서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 목표 대신 지금 할 일을 채워 넣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에게 20년의 시간을 주고 나니 글 쓰는 일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작가의 업' 카테고리도 늘어났다. 배울 시간이 충분하다면 '에이, 내가 어떻게...'라고 생각했던 소설 쓰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 제대로 된 인터뷰 시리즈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더 부푼 가슴으로 상상해본다. 내 나이 60 쯤엔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사진출처: Photo by Eduardo Casajús Gorostiag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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