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 자격이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4개월의 집필 기간. 투고를 하며 무너지던 한 달. 재 투고. 출간 계약. 모든 일이 6개월 만에 일어났다. 2020년 1월. 드디어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 출간 계약을 했다. 첫 번째 투고에 실패한 후, 다시 출간 기획서를 다듬어 재 투고를 하기까지. '포기할까', '그만할까', '이 정도면 충분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너무 반복해서인지 생각보다 담담했다. SNS를 통해 출간 계약 사실을 알리고 축하를 받으면서 그제야 '이야,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차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전 세계를 뒤흔드는 역병이 찾아올 거라는 걸. 그 때문에 나의 출간 일정이 한없이 미뤄질 거라는 걸. 계약할 때 우리가 계획했던 출간 일정은 5월. (실제로는 10월에 출간이 됐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표님께서 하신 한 마디. "작가님이 같이 마케팅을 해주셔야 해요." 이 말 때문에 나는 손 놓고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글 쓰는 사람. 이미 8년 차 블로거였기에 블로그를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블로그를 '작고 소중한 나의 일기장'으로만 사용해 왔다는 것. 브랜딩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었기에, 모든 것이 소소했다. (이웃 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 한 번 배우러 가보자.' 블로그를 좀 더 (브랜딩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운영하는지 일단 배워보기로 했다. 그런데 참 모순적 이게도, 블로그 강의를 검색하면서도 나는 어떤 강의가 제일 덜 상업적으로 보이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뭐, 내가 그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고르고 골라 사전 질문지를 적는 날 거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곧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서 블로그를 통해 책을 더 잘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우선하는 상업적인 블로그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으음. 이게 무슨 말인가. 블로그 마케팅 강의를 신청하면서, 게다가 자기 책을 홍보하고 싶다고 하면서.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쓰기는 싫다니. 내가 쓰면서도 이게 무슨 말이냐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도 솔직한 내 심정이었으니까. 이제 내가 할 것은 내가 선택한 블로그 강의의 선생님이 이 말을 이해하고 실현시켜 줄 능력자이기를 바라는 것뿐.
블로그 강의를 들으러 갔던 날. 나는 그 수업을 선택한 나를 칭찬할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이런 건 불가능해요."라는 말 대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쏘냐 님, 쏘냐 님은 글을 잘 쓰시니까 그렇게 계속 쓰시면 돼요. 다만, 검색이 될 수 있는 키워드를 조금만 신경 써주세요. 쓰고 있는 글에 키워드 몇 개만 넣어주는 방식으로. 그러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요." 그래. 그건 내용이 아닌 스킬의 차이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하되, 그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키워드를 활용할 것.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지금까지처럼 글을 계속 쓰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날부터 블로그는 나의 일터가 되었다. 매일 한두 시간씩 꼭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이야기를 썼다. 매주 월요일에는 책 쓰기 스토리를 연재했고, 목요일에는 당시에 막 시작했던 기부 프로젝트 '러브체인' 이야기를 연재했다. 화, 수, 금에는 내 일상을 담았다. 대부분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육아 일상이었다. 그리고 이 글들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첫 번째 변화는, 공감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기다려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들의 응원은 이후 내가 다른 활동들을 이어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든든한 응원들 덕분에 나는 작은 시작들을 계속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변화는, 어느 날 보니 소소하지만 '브랜딩이 잘 된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SNS도 무언가를 마케팅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써가며 적극적으로 키워본 적이 없다. (기웃기웃 열심히 알아보면서도 이상하게도 실행은 되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이 있다면 꾸준히 적는 것뿐이었다. 내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그냥 뭔가를 해야겠다 싶을 때마다 쓰고 또 썼다. 바쁘고 지칠 때면, 쓰는 일을 잠시 쉴 때도 있었지만, 뭔가 다시 시작해야지 싶으면 제일 먼저 시작하는 건 늘 SNS를 찾아 다시 쓰는 일이었다. 여전히 SNS 활동 연차에 비하면 이웃수나 팔로워가 매우 소소한 수준인데,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쏘냐 님은 이미 브랜딩이 됐잖아요." 처음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에이, 무슨. 저처럼 브랜딩과 거리가 먼 SNS를 운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냥 나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브랜딩이라면, 그저 그러고 싶은 나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거라면, 그게 브랜딩이지 싶기도 하다.
세 번째 변화는, 내가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 몇 가지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세 번째 변화를 말하고 싶다. 처음 책 쓰기 스토리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 나는 내가 내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책 쓰기를 결심하고 써 내려간 시간 속에 스토리는 충분하니까. 그저 그걸 적어내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써 내려가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그렇게나 자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특히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쓴 글은, 무려 네 편으로 확장되었다. 그저 한 편이면 족하리라 생각했던 글이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단지 한 두 가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수많은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에 도달했고, 그랬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쓰게 되었다는 걸. 그 글을 쓰면서 마음속에 숨어있던 이유들을 하나하나 꺼내 낼 수 있었다. 나를 더 이해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왜 책을 썼냐고 물을 때 명쾌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 깨달아 갈 때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쓰는 일이 이렇게 좋은데, 다른 이들도 이걸 할 수 있도록 도우면 어떨까?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내 이런 생각이 몰려왔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세상에는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꾹 눌러 담고 있다 보면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훌륭한 작가들 말고,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글쓰기 프로젝트가 더 와닿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글 쓰는 일을 언제나 좋아했었지만, 책 쓰기를 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것들이 꽤 있었다. 사람들에게 쉽게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지만 잊고 있는 이런 팁들을 알려주고 함께 쓰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도 변화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런 팁들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내가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글쓰기의 힘. 나는 나를 쉽게 믿는 편이 아니다. 쉽게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내가 글쓰기 프로젝트 리더가 될 자격이 있을까 물었을 때도 그렇다고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글쓰기의 힘은 믿을 수가 있다. 그러니 시도해보자. 결심했다.
결심이 선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기획서를 쓰는 일이다. 마침 그때 읽었던 '무기가 되는 스토리'라는 책이 인상적이었기에 책 속에 나오는 프로세스를 템플릿으로 만들어 두었었다.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 프로젝트의 내용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플랫폼의 리더에게 그걸 보냈다. 이걸 바탕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리드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글쓰기 프로젝트 "나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기분 좋은 글쓰기 여행"을 줄여 "나찾기"
이를 통해 많은 스토리들을 만났다. 내가 선생님의 자격은 없어도 리더로서의 자격은 있다고 조금은 인정해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스토리들을 글로 끌어내면서 '이 이야기들이 그저 묻혀만 있었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내 옆의 평범한 듯싶었던 사람들이 꺼내놓는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매번 겸손해졌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저 무심히 보인다고 해서 그 안에 빛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고민하고 고민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걸 시작하는 게 가치를 더하는 일이 맞을까?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에 당당할 수 있는가? 묻고 또 묻는다. 매번 자신이 없지만, 결국은 시작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이번에도 진행하길 잘했어.'라는 소감으로 끝을 맺는다.
가장 최근에 창고 살롱에서 진행한 '나를 위한 글쓰기' 소모임을 끝낸 후, 선물을 하나 받았다. 직접 구운 구움 과자들과 함께 도착한 메모에는, 이 글쓰기 모임이 어떤 상담이나 약보다 좋은 치료제였다고 적혀있었다. 사실 내가 한 것은 많지 않다.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게 내가 하는 전부인데 할 때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분, 자신의 길을 찾았다는 분, 누군가와 화해를 했다는 분, 그저 날아갈 것들을 붙잡을 수 있게 되어 좋다는 분 등이 내가 더 감사한 감사인사를 남겨주신다.
'다음에 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다음이 되면 고민하다 결국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번 나의 쓸모를 발견할 수 있는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사진 출처: Photo by Jess Baile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