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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Oct 30. 2022

첫 번째 투고에 실패하다

그리고.. 재 투고에 성공하다

계획한 4개월이 지났다. 100장의 원고가 담긴 한글파일과 출간 기획서가 준비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나하나 투고 메일을 발송했다. 그러고 나서는 사이트로 투고를 받는 출판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포맷을 채우고 파일을 첨부하여 등록을 눌렀다. 드디어 4개월 작업의 결과가 내 손을 떠났다.

     

하나씩 답변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받았던 메일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잘 받았으니 검토하고 회신을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로 대형 출판사들이었다. 2,3주까지도 걸릴 수 있고 진행하지 않기로 하는 경우에는 회신하지 않으니 양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도착하기 시작한 두 번째 그룹의 답장에는 출판사와 나의 원고가 결이 맞지 않아 출간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출판사의 특성까지 고려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가장 늦게 도착하기 시작한 세 번째 그룹의 메일은 거절 의사를 밝혔다. 신중히 검토해보았으나 해당 출판사에서는 출간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전 세 개의 그룹에는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메일이 한 통 왔다.

     

책 쓰기 학원에 적을 두고 있다 보니 출간 계약 소식이 수시로 들려왔다. 투고를 한 날 책 쓰기 선생님도 원고가 좋으니 곧 연락이 올 거라면서 내일은 쉬는 날이지만 출간 계약 소식은 상관없으니 바로 연락을 달라는 말도 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곧 좋은 소식이 날아들거라 기대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고, 2주가 지나자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주째부터는 기대가 남은 건지 남지 않은 건지 헷갈리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4주째가 되자 ‘끝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날아든 메일이었다.

     

“보내주신 원고 잘 봤습니다.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들어가 본 메일함에 전날 늦은 시간 도착한 메일이었다. 한 달은 마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의심부터 생겼다. ‘혹시 자비 출간을 하자는 얘기일까?’ ‘그래. 출간 계약을 하자는 연락일 리가 없어.’ 혼자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올라간 기대치를 내리려고 노력하며 적당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9시가 조금 넘어 건 전화에 호쾌한 대표님의 목소리가 응답했다. 원고를 잘 읽어 봤고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다. 그런데 덧붙인 한마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요즘 출판시장이 어려워요. 좋은 책이라도 잘 안 팔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 책도 잘 안 팔릴 수 있어요. 너무 기대하지 말고 만들어봅시다.” 판매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출간해보자는 말은 출판사 입장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 그저 감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 달 사이 쪼그라든 마음은 그 말을 그저 감사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기획 출간을 목표로 한 것은 확신이 필요해서였다. 물론 출간에 내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이 세상에 나와 소비자에게 닿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확신. 어떤 출판사가 내 원고를 선택한다면 그 부분에서는 믿고 가도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반응은 애매했다. 좋은 원고지만 안 팔릴 수도 있는 책. 그렇다면 굳이 책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치는 있지만 책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팔리지는 않을 원고라면 책이 아닌 방식으로 소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굳이 소중한 나무를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출판사 대표님께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 해놓고 며칠째 답을 하지 못했다. ‘출간 제안을 받았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있냐’는 목소리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매일 싸웠다.

     

투고가 12월 초였고 그 연락을 받은 게 12월 말. 마침 송년회가 있어 나간 자리에서 누군가가 투고 결과를 물었다. 내가 책 출간을 목표로 도전했음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고민도 나눴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그 원고가 별로일 리 없어요. 투고를 다시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 생각해보지 못한 조언. 재 투고라. 지금 써놓은 원고를 수정할 자신은 없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갈아 넣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출간 기획서. 지난 한 달. 계속 신경이 쓰였었다. 원고에 넣은 열정을 출간 기획서에는 쏟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출간 기획서가 원고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투고 후에야 깊이 다가왔다. 

    

그날 집에 와서 출간 기획서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포맷 안에 내용을 충실히 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출간 기획서를 남편에게 보여주는 일. 가까운 사람이라서 오히려 더 민망해 보여주지 못했던 파일을 열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보고서 쓰기에 능숙한 남편은 보자마자 문제점을 짚어 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요 포인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 주요 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고 글자 크기도 키웠다. 필요한 곳에 소제목을 추가했고, 불필요한 것은 삭제했다. 남편의 수정이 끝난 후 다시 내가 붙들고 앉았다. 그곳에 나의 SNS 주소와 활용 계획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미 원고 작성까지 끝낸 이 책을 위해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SNS 활동을 통해 잘 알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4일 아침 9시경. 나는 두 번째 투고를 위해 메일함을 열었다. 이번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추가로 출간 제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원고는 굳이 책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출간 제안이 들어온다면 나 역시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테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간을 결정할 수 있을 테지.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핸드폰 액정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보내주신 투고메일 잘 봤습니다. 제가 지금 원고를 읽고 있는데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고 싶습니다.” 출간 의사를 밝힌 대표님은 이 출판사가 나와 내 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이 책을 꼭 만들어서 엄마들이 읽도록 해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내가 책을 쓰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이 원고가 세상에 나와 엄마들에게 널리 읽힐 가치가 있다는 말. 일단은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며칠 후 나는 출간 계약을 맺었다. 책 쓰기 도전의 종지부.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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