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열망으로 가득 차서
'책을 써야지' 마음먹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와 동시에 두려웠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책이라니. 글 쓰는 걸 즐기는 것과 책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일 아닌가. 어릴 적 꿈꿨던 아나운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선망하지만 잡을 수 없는 것. ‘그래.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는 없지. 어떤 꿈이든 다 꿀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걸 다 이룰 수는 없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 운명이었던 걸까? 마침 그때 읽고 있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도전하지 않아서이다.” 무엇보다 평안해서 만족스러운 날들이었다. 욕심이 만들어내는 풍랑에 다시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책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그 마음을 무너뜨리는 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도전’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시행착오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패라 할 수 있을까? 문득 소름이 끼쳤다. 몇 년간 나는 도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도전하지 않아서 실패도 없었던 삶이라면, 그것이 실패 없는 삶이라고 해도 가치 있다 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20대의 나로 돌아갔다. 도전에 가치를 두던 그때의 나로.
‘실패해도 괜찮아. 그건 도전의 증거야.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나는 자랑스러울 거야. 성공을 자신해서가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기 때문에 도전한 내가.’ 실패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물론 나는 무턱대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쓸데없이 많은 것을 따지다 보니 시작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 나를 설득했다. 가진 자원이 많을 때는 더 많이 따져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가진 자원이 없다. 그저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글쓰기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 그 두 가지 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만은 해야 했다.
혹여라도 내가 지금 하는 도전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움직이는 영역이 지극히 좁은 나에게 영향을 받는 건 내 가족들 뿐이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없는 도전 앞에서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계획을 해보았다. 7살, 3살인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10시부터 2시 반까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밤 10시부터 두 시간가량도 쓸 수 있을 테지. 그 시간만 온전히 활용한다면 가족들이 느끼는 변화 없이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문제는 아이들의 방학이었다. 그 마음을 먹었던 게 8월.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4개월 안에 작업을 완료해야 차질이 없다. 그해 겨울방학을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 해 봄에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이 예정되어 있어서였다. 선배 엄마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엄마가 가장 바쁜 시기라고. ‘12월 안에 투고까지 끝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음은 섰는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내가 책 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냥 글을 쭉 쓰면 되는 건가? 쓴 글을 가지고 출판사는 어떻게 만나지? 지금 생각하면 검색만 상세히 해봐도 알 수 있을 정보들인데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세상과 멀어져 있었다. 책 쓰기 학원 광고를 보고 가봐야겠다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었다. 그 광고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책 쓰기의 전 과정을 하루 만에 알려주겠다고. 과정만 알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주말 오후,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그날의 특강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알찼다. 전체 과정을 알고 나니 혼자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4개월 안에 가능할 것인가가 의문이었다. 혼자서 쓸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였다. 4개월 안에 끝내지 못한다면 결국 이 도전은 끝맺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처음 책 쓰기 학원 수강료를 보고서는 ‘미치지 않고서야 이 돈을 내고 등록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돈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외벌이에 아들 둘을 키우는 내 기준에 그 돈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그간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비싼 돈 들여가며 배운들 뭐에 쓰겠냐며 포기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한 번쯤은 돈을 들여서라도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건 하고 싶은 마음이 극에 달해 살짝은 미쳤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생각한다.
최근에 누군가가 물었다.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많은 책 쓰기 학원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고, 수강료가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몰랐다. 제대로 된 책 쓰기 학원도 있지만, 사기꾼 같은 책 쓰기 강사도 많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책을 쓰고 싶은 내 앞에 나타난 책 쓰기 학원이 딱 하나였고, 좀 더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열망에 차 있었다. 그런 내가 만난 곳이 제대로 된 학원이었다는 사실에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무모했는지 모른다. 몰라서 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딛지 못했을 발걸음이다. 그전까지는 예측할 수 있는 안전한 길만 선택했던 내가 그날 무모한 선택을 했음에 감사한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