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부제목을 쓰려고 날짜를 계산하다가 흠칫 놀랐다. 이럴 수가. 그게 3년 전이라니.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인 것 같은데 어느새 3년이다.
3년 전 3월.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첫째에 비해서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둘째인지라 어린이집 입소 전 후 삶의 차이가 극명했다. 갑자기 왕창 생긴 시간. 시간이 생기면 같이 일해보자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났던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업맘이 된 지 6년. 상실감을 딛고 다시 일어나 소중히 꾸린 나의 세계. 세 남자와 함께하는 행복한 전업맘의 삶을 깨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는 내 시간까지 생겼다. 머물고 싶은 마음에는 이유가 충분했다.
사실 그 마음이 괴로웠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내 일을 하고 싶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굳이 사양하는 그 마음이. '너 너무 게을러진 거 아냐?' 누군가가 비난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또 인정해야 했다. 6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내 일에서 너무 많이 멀어져 왔다고.
그때 귀인을 만났다. 이런 마음을 말하는 내게 그분이 주었던 답은 이랬다. "그 일이 정말 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고 싶었을 거야. 그냥 그 일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거예요.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움직이게 될 거예요. 쏘냐 님은 언제라도 꼭 무언가를 할 사람 같거든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야. 그저 이 일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닐 뿐이야. 그래.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 즐기는 것. 아이들과의 시간에 맘껏 반응하고 함께 뒹굴고, 아이들이 기관에 간 동안은 나만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맘껏 누리자. 돌아보면 그랬다. 꽤나 바쁜 회사생활은 육아와 함께 끝이 났고, 쉴 틈 없이 이어진 두 아이 육아는 한 번도 나를 쉬게 두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내일은 또 어떤 날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역시 예상대로였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오래 즐길 수 없었다. 봄학기가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려 할 무렵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글쓰기라면 즐겁게 할 자신이 있었다. 힘들 때 생각나는 것도, 즐거울 때 생각나는 것도 글쓰기였으니까. 블로그를 통해 계속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책 쓰기'라니. 이건 또 다른 장르가 아닌가.
당시에 읽던 책에서 '평범한 엄마가 쓴 책'이라는 문구를 본 것이 시작이었다. '평범한 엄마'라는 카테고리라면 정말 딱 맞게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문구를 쓴 분은 '평범한 엄마'가 아니었지만, 어찌 보면 그녀가 나와 똑같은 카테고리라고 믿었던 게 다행히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내가 겁도 없이 책을 쓰겠다 마음먹었으니까.) 이야. 평범한 엄마가 쓴 책이 이렇게 나와있네. 그렇다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글 쓰는 건 자신 있으니까. (당시엔 이런 근자감이 있었다. 그래. 잘 몰라서, 몰. 라. 서. 그랬다.)
혹자는 내가 큰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한다. 책이란 걸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 등록했던 책 쓰기 학원의 선생님도 늘 그렇게 이야기했다. 책은 나의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이 책이 다음 일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책 쓰기를 선택한 건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계속 엄마로 살기 위함이었다. 엄마의 삶이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으니까.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엄마로서의 역할 말고, 그저 '나'라는 한 사람이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는 것. 간단히 말하면 인정욕이었다. 나의 쓸모를 세상에 한 번쯤 더 남겨놓고 싶은 욕심.
엄마로 계속 살고 싶지만 '나의 쓸모'를 세상에 남겨놓고 싶어. 그런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책 쓰기라 생각했다. 첫째, 책은 글로 이루어진다. 글쓰기의 집합체.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글 쓰는 나'를 누군가는 인정해주지 않을까? 둘째,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면 '엄마'로서의 '나의 쓸모' 역시 책 전체를 통해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책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독립적인 것. 하나의 책을 쓰겠다 마음먹었고 하나의 책을 만들고 나면 나는 또다시 지금과 똑같이 엄마로 돌아오면 되는 거 아닐까?
이뿐만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꽤 괜찮은 작업이었다. 그 해에 첫째는 7살이었다. 그러니까 딱 반년 후 초등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유치원에 다니니까, 아침 두 아이 등원시키고 첫째가 하원하는 2시까지는 내 시간. 초등학교를 가면 12시면 아이가 돌아온다는데 아직 7살에 이런 생각을 하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은 단기간에 책을 쓰게 하는 좋은 데드라인이 되어주기까지 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딱 4개월. '가을학기가 끝나기 전에 책 쓰기를 완료하고 12월에는 투고를 한다.' 그때 내가 잡은 목표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딱 지켰다.
글을 쓰는 동안 포기한 것은 내 개인 시간뿐. 아이들이 없는 동안만 딱 쓰는 거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뭐, 집이 좀 더 지저분해졌고 반찬이 부실해졌을 뿐. 그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차이라 치자.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깨끗한 집도, 알찬 반찬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은 걸로.)
모든 것이 지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그저 엄마로 살기 위해 시작했던 책 쓰기가 나를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혼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썼던 책인데, 그 경력 덕분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내일은 어떤 날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덧. 사실 저의 책 쓰기 이야기는 여러 번 글로 썼던 소재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쓴 건 '쓰기'와 관련된 저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저의 책 쓰기 이유를 돌아볼 때마다 자꾸 새로운 이유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기도 해요. 아마 전에 쓴 글들과는 뉘앙스가 조금 다를 거예요. 제 시야가 그만큼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생각합니다. 이럴 때마다 느껴요. 지금 나의 마음이 흘러간다는 걸 깨닫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고요. 내 마음이니까 그대로일 거라 믿는 것도 참 어리석구나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