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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Oct 30. 2022

이곳이 저의 직장입니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책 쓰기 작업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자료 조사할 게 많았다. 계획한 대로 4개월 안에 모든 작업을 끝내려면 시간을 빈틈없이 사용해야 한다. 지금부터 4개월, 책 쓰기 회사에 취직했다 여기기로 했다. 먼저 남편에게 내 각오를 알렸다. “지금부터 책을 다 쓸 때까지 나는 출근했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켤 거야.” 아이들이 없는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청소하고 빨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집안일 타임을 아이들 하원 이후로 옮겼다.    

 

자주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에게는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와 다른 나를 설명하려면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등원 셔틀 태우고 재빠르게 집에 들어가고, 오전 브런치 약속이라도 잡을라치면 안 된다고 거절해야 할 텐데. 매번 다른 핑계를 대기가 힘들 것 같아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시작했다고 했다. 다행히 어떤 일인지 자세히 묻는 사람은 없었다. 대외적으로도 나는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부터 평일 오전 외출이 늘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많고 보고 싶은 전시도 넘쳐났다. 하지만 투고를 끝내기 전까지는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기로 했다. 정말 내가 취직을 한 거라면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고 약속을 잡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나는 지금 4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 거라고 다시 한번 되뇌었다. 매일 해야 할 분량만큼 잘 해내고 있는지 감시하거나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안 하면 큰일 나는 일도 아니지만, 꼭 해내기 위해서 상상 속의 직장을 집 안에 만들어냈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마음먹은 그날부터 매일매일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식탁에 앉았다. 지금은 나만의 책상을 마련했지만 그때는 내 작업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시절. 널찍한 식탁이 내 작업공간이었다. 한번 앉으면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건 점심시간. 

     

원래 나는 먹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다. 식사를 거르는 일도 부지기수. 나를 위해 식사를 차리느니 책을 몇 자 더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을 쓰는 4개월은 절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 아프면 안 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쓸 수 있는 컨디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현재 계획한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잠과 식사였다. 다만 매일 나를 위해 정성스레 요리할 여유는 없다. 영양성분을 따져 냉동 도시락을 잔뜩 주문했다.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 냉동실 문을 열고 도시락을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데워지는 동안 잠시 식탁에 앉아 작업을 하다가 다 데워진 도시락을 들고 다시 식탁에 앉는다. 입에는 음식을 넣고 눈과 손은 읽거나 썼다.

      

식사를 끝내면 싱크대에 올려놓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첫째 유치원 하원 셔틀 시간 십분 전이 되면 다시 벌떡 일어났다. 오늘 업무 끝. 5분 만에 나갈 준비를 하고 문밖으로 나섰다. 1분의 틈도 없이 그 시간을 알차게 써야만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깔끔하게 퇴근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 오늘 계획한 만큼을 모두 하지 못하면 오후 내내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 하원 후에는 엄마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었다. 그건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욕심이기도 했다. 그러니 매일 내가 정해놓은 분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완벽히 끝내야 했다.

      

하지만 계획은 언제나 지키기 어려운 법. 시작하고 보니 자료조사할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만큼 시간이 부족해졌다. 아이들이 부재하는 또 다른 시간. 밤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잠이 부족해졌다.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료와 노트북을 챙겨 들고 카페로 나갔다. 카페에서 집중이 더 잘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조용한 집을 선호하는 편. 집중이 필요할 때는 조용한 게 좋아 집중에 도와준다는 음악도 틀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나누어 배치했다. 집에서는 자료를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일, 카페에서는 자료를 파일에 정리하는 단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하고 움직였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셋만의 시간을 보냈다. 종종 집을 나에게 비워주고 셋이 신나는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시간계획이 더 어려워진 건 자료 정리가 끝나고 글쓰기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글쓰기에는 집중을 덜 해도 좋은 작업이 없다. 게다가 한 챕터를 끊김 없이 쭉 써내려 가야 맥락이 흔들리지 않도록 쓰기가 편하다. 문제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예를 들어, 오늘 낮시간 4시간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2시간에 한 챕터씩 쓰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아이들 하원 전에 깔끔히 끝난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심지어 나는 초보 작가인데. 어떤 날은 두 문단 딱 남았는데 아이가 하원 해 노트북을 접어야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밤에 다시 파일을 열어 이어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온 아이가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축복아, 엄마가 30분 정도만 더 쓰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 혼자서 책 읽고 있을 수 있을까?” “응. 괜찮아. 엄마.” 아이도 이만큼 자랐구나. 엄마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덕분에 다 쓸 수 있었다고. 나의 감사에 아이는 뿌듯해하며 더 써도 된다는 말을 건넸다.

      

겨우 4개월짜리 단기 직장. 끝은 있지만, 결과는 알 수 없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충만했다. 나의 성장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감사 역시 넘쳤다. 나의 수많은 시도는 이해해주는 좋은 가족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그렇다. 반박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를 이해해주고 도와줄 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움직여봤기 때문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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