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뭘 하고 있어요?" 온라인에서는 꽤 오래 봤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뵙는 분. 쏘냐라고 소개하자 해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어요." 꼭 한번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말뿐 아니라 표정으로까지 반가움을 표현해주시니 얼마나 기쁘던지. 한참을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 물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느냐고. 요즘 참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하는 대답을 그날도 똑같이 했다. "저 아무것도 안 해요."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지금 뭘 안 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닐걸요. 다음에 할 걸 준비하는 기간이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나의 대답에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게 반응한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리 없다고. 그럴 때면 그저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이 날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다음에 할 걸 준비하고 있구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말. "저 그냥 천천히 글을 쓰려고요."
"내가 베케이도 사서 다 읽어보고 그랬는데, 쑥스러워서 내가 그거 사봤다는 얘기는 못했어요." 말과 딱 어울리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꺼내 주신 말.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더 감사한 한마디가 이어졌다. "그래요. 글 계속 써야지. 쏘냐 님 정말 글을 고급스럽게 잘 쓰잖아."
순간 멍해지는 느낌. '나, 정말로 글을 잘 쓰는 걸까?'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할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는 '글 쓰는 나'의 하찮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언제까지나 나도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글 쓰는 나'가 내 주요 자아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더해지던 날들에 훅 들어온 한 마디. 잘 쓴다는 말. '고급스럽다'라는 표현을 '그래도 조금 더 낫게 쓴다' 정도로는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그저 믿고 싶어졌다.
종종 생각한다. 글 쓰는 나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아서 '것 같다'라고 표현해본다.) 초등학교 때는 <안네의 일기> 속 안네처럼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매일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내려가던 기억이 있다.
글쓰기의 시작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처음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중학교 교내 백일장이 있던 날. 우정에 대한 시를 한 편 썼고 상을 받았다. 아침 조회 시간 전교생 앞에서 상장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 혹시 글을 잘 쓰는 걸까?' 운이 좋게도 주변에 시를 쓰는 분이 계셨고 그분께 시를 보여주자 몇 편을 더 써서 신춘문예에 보내보는 것도 좋겠다 말씀해주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시 몇 편을 더 써야겠다 마음먹었고, 그러는 사이 시 쓰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백 편을 다 쓰면 시집을 내주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내가 98번째 시를 쓰고 포기하는 바람에 지켜지지 못했다. 처음 썼던 '우정'에 대한 시는 언제나 '우정'에 목말랐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글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 내내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직은 순수했던 내가 학창 시절의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던 해, 더 이상은 그렇게 투명한 글을 쓸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때의 나는 다른 방식으로 시를 쓸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그만 쓰기로 했다.
하지만, 글쓰기 자체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고, 그 생각들을 모두 말로 풀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엔가 글을 써야 했다. 싸이월드에도 쓰고, 일기장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쓰고, 인스타그램에도 쓰고 (이미지 기반 SNS라지만 나는 긴 글을 적어 올리곤 한다)... 그러다가 책을 썼고, 잡지를 창간했다.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본다. 그때 왜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작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흔치 않게 서울말을 쓰는 아이였던 나는 자연스레 '내레이션'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저 서울말을 쓴다는 이유로 "아나운서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나운서'라는 업의 특성과 나의 성향을 비교해볼 생각도 없이 나는 '아나운서'를 꿈꾸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실제의 나보다 더 화려한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나운서'는 그런 꿈의 직업이었다. 결국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몇 번의 시험을 치르고 포기하기까지.
아나운서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시 붙잡았던 직업은 '마케터'였다. 사실 그 시작에 뚜렷한 목표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좋았다. 그다지 창의적이지도 화려하지 않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 같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하다 보면 마케팅과 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시 함께 '마케터'였던, 하지만 지금은 '기획자'인 친구와 창업을 했다. 첫 크라우드 펀딩을 마무리할 때쯤 친구가 물었다. "너는 근데 왜 계속 마케팅을 하고 싶어?" "글쎄,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경력은 그것뿐이니까." "나는 너에게는 글 쓰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아. 넌 글을 잘 써. 나는 니가 글을 잘 쓰고 좋아하는데 왜 굳이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사실 난 본 투 비 마케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 좋아했지만 늘 내 옷 같지가 않았어. 근데 글 쓰는 일은 정말 좋아. 글을 쓰면 막 신이 나. 정말 글만 써도 된다면 참 좋겠어."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글 쓰는 일' 앞에 섰다고 느껴지는 지금.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나, 혹시 글을 잘 쓰는 걸까?' 하는 기대에 기대어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봐도 괜찮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야.' 뻔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날도 와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