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출간하고 거의 2년이 지났다. 두 번째 책은 쓰지 않을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솔직히 첫 책을 쓸 때는 출간만 하면 바로 이어 두 번째 책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첫 책 출간과 홍보 과정에서 깨닫게 된 어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굽이굽이 펴보자면 한없이 복잡한 이야기다.
처음 책을 써야지 마음먹을 때 내가 생각한 장르는 에세이였다. 그런데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육아서를 쓰게 됐다. 물론 육아서를 쓰겠다는 결정도 내가 내렸고 결의 또한 대단했다. 최선을 다해 썼고 마음을 다해 홍보하고 싶었다. 엄마로 보낸 시간을 경력화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책이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실현하기에 가장 좋은 장르였다. 육아서라는 장르는. 쓰는 과정에, 그리고 결과물에, 모든 것을 갈아 넣었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실제 출간을 겪으면서 너무 잘 알게 됐다. 내 글을 평가받기 전에 나의 영향력을 먼저 평가받아야 하는 곳이 출판 시장이었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나 같은 신인 작가의 책을 기쁘게 출간해 준 출판사를 만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무명의 작가들이 출간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문제는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럴 가능성이 큰)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첫 책을 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건 그래서였다. 나 같은 신인 작가의 투고 원고를 좋게 봐주고 출간 계약까지 해 준 출판사에 고마워서. 출판사가 할 수 있는 마케팅 활동을 모두 적극적으로 해주는 출판사가 고마워서. 나 역시 애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적어도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는 작가가 되지는 말자. 이 책이 적어도 마이너스는 되지 않게 하자. 못해도 본전은 되는 책이 되어야지.
내 자랑이 제일 어려운 사람. 나의 창작물인 내 책이 좋다고 말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외쳐댄 건 그 마음 때문이었다. 에세이가 아닌 육아서라면 세상의 선택을 받기가 조금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에세이보다 나았지만, 그건 그저 에세이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마케팅 과정에서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출판시장에서 인기 있는 소재가 아니라는 것. 내가 가진 아이덴티티 중 가장 분명한 게 '엄마'인데, 출판시장에서 인기 없는 카테고리 중 하나가 바로 '엄마'였다. 수요는 없지만 공급은 넘쳐나는 분야. 어떤 브랜딩 전문가는 나에게 육아서를 출간하는 대신 마케터의 경력을 살려 마케팅 책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때는 한창 출간이 미뤄지고 있던 때였는데 지금이라도 출간을 취소하는 건 어떠냐고. 마케터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나의 위치가 육아서로 인해 흔들릴까 걱정해서 해준 마음 담긴 조언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은 육아서는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이상을 말할 수 없는 나는 위축되기도 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엄마로만 살더라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결과 나온 결과물이 육아서여서 북토크마다 육아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혹자는 책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의 80%만 담아야 한다고도 했는데, 그 이유를 북토크 준비 때마다 알 것 같았다. 책에 200%를 담고 보니 북토크 때마다 곤궁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200%를 담은 책을 출간하고도 몇 날 며칠을 떠들 수 있을만한 소재가 아니라면 책으로 쓰지는 말아야겠다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사그라든 적이 없다. 그런데 책이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 내가 책을 쓰는 게 정말로 필요한 일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두 번째 책을 쓸 수 없다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 두 번째 책은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한 권이면 족하다 싶었다. 또 다른 책에 대한 마음은 버리고 지나왔다.
그저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쓰는 일을 찾아다녔다. 블로그에 쓰고 브런치에 썼다. 시작했던 다른 일들은 내려놓더라도 글쓰기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갔다.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면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고민은 했지만 결국은 시작하고 말았다. 나에게 구원이 되었던 글쓰기. 그것만은 함께 하고 싶었다. 누군가 나로 인해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았다. 사실 그런 인도주의적인 마음이 전부는 아니다. 나를 위해서였다. 내가 글쓰기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그러던 중 친구가 제안을 했다. 창업을 하는데 함께 해달라고. 고민 없이 합류하기로 한 건 그 역시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거진 창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끝내 우리는 창간을 했고, 나는 전체 기획에 참여했고 호당 4분의 1 가량의 기사를 썼다. 내 글이 제품이 되어 시장에 깔렸다. 내 책 출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인세와 월급은 형식부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2호까지 만들고 퇴사를 결심한 것도 그 확신 덕분이었다. 다른 건 잃어도 괜찮지만 글 쓰는 나를 잃을 수는 없다고. 그때 생각했다. 퇴사는 했지만 글 쓰는 일은 계속해야 했다. 퇴사하자마자 시작한 건 블로그에 매일 서평을 남기는 일이었다.
시간 여유가 생겨서인지 그간 사람들이 나에게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때 알았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쌓아온 시간이 꽤 다채롭고 흥미롭다는 걸. 수많은 시작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이야기를 한다면, 한번 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버려둔다고 버려질 것이 아니라는 걸. 시장에서 외면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쓰게 될 거라는 걸. 내 글이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면 나는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어차피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 마음먹었다면, 실패하더라도 시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두 번째 책의 기획을. 책을 쓰기 위해서 살아온 것처럼. 꽉 채운 2년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오전이 지나기 전에 36개의 목차가 완성됐다. 다음날은 분량을 채울 수 있을지 검증하며 주요 내용을 모두 써보았는데 이 역시 술술 써졌다. 이 정도면 해봐도 되겠다. 의심은 두고 일단 쓰기로 했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출간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그저 써야 하는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썼다. 미친 듯이 썼다. 하루 두 꼭지, 세 꼭지씩.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았다. 3주 만에 초고가 완성됐다. 이틀쯤 쉬고 퇴고를 시작했다. 퇴고를 마치고 출간 기획서를 썼다. 바로 출판사 조사를 시작했고, 투고도 했다.
언제나처럼 초고 쓰기는 힘들었지만, 끝내고 보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퇴고를 하면서는 자신이 없어졌다. 과연 이 글을 내놓아도 될까? 그렇지만 내 마음에 드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걸 알기에 마무리했다. 투고하고 출판사의 피드백을 받아봐야 원고의 향방을 정할 수 있겠다 싶어 결정한 투고였다. 그랬는데도 투고 메일을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너무 날것을 원고를 내보낸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묵혀볼 걸. 그럴 걸. 하지만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무작정 했던 이 투고에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종종 진심이 담긴 답변이 왔던 것이다. 어떻게 보완하면 더 좋을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결국은 해피엔딩. 어딘가 애매한 해피엔딩. 출간 제안을 받았다. 투고한 덕분에 받은 출간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건 내가 보낸 원고에 대한 출간 제안이 아니다. 그 원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100장의 한글 파일일 뿐.
제안은 출간 기획서에 써둔 브런치 글을 읽어보았다는 말로 시작됐다. 브런치에 담긴 엄마의 날들에 대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이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자고. 두근거렸다. 어쩌면 처음 마음먹었던 에세이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에세이 따위 어떤 출판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아 욕심내지 않았던 그런 책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바로 답장을 썼다. 보낸 원고보다 더 나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러 가는 길.
또다시 흥행에 자신 없는 책을 쓴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가서 닿으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상 출간되고 나면 출판사에게 손해를 끼치는 책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스트레스받을 걸 알면서. 그때가 되면 판매도 중요하다고 나를 다그칠 걸 알면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글 쓰는 나로 살기 위한 과정이라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