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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12. 2022

방구석에 앉아 300명에게 닿는다니

십 년 전의 내가 계속 썼던 이유

인스타그램 12년 차, 블로그 10년 차. 작년이던가, 블로그 글쓰기 강의를 열면서 써본 나의 SNS 경력이다.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나의 SNS 역사. 하지만 그간 굳지 내놓지 않았던 건 그다지 내세울만한 활동이라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건 2011년,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된 사진 동호회 회원들과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인스타그램은 정말 이미지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DSLR을 들고나가 찍은 사진을 고르고 골라 한두 장씩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 딱 좋은 도구. 그 인스타그램이 이렇게 활발한 소통의 도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호회 활동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소홀히 하게 됐는데 어느 날 보니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조심스레 다시 앱을 다운로드하고 나의 Too Much Talker 성향을 십분 활용하기 시작했다. 딱히 의도는 없었다. 내 일상을 마구 공유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 대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을 뿐.


블로그의 첫 게시물은 2013년에 업로드되었다. 지금 들어가 살펴보니 신혼여행 사진을 올린 게 최초의 게시물이다. 그리고는 뜬금없는 육아 제품 후기가 이어진다. 당시에 나는 어느 온라인 쇼핑몰의 포인트를 얻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 후기 하나 당 1000포인트였던가. 소소한 포인트를 얻기 위한 소소한 후기들. 그런데 그렇게 후기를 남기는 제품들이 아이들 옷이거나 용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래 아이맘들을 만나게 됐다. 진짜로 대면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비대면 만남. 댓글을 통해서였다. 그런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내가 쓴 글에 한 명이라도 댓글을 달면 좋았다. 내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댓글이 달리면 더 좋았다. 뿌듯한 마음에 그다음 후기에는 더 정성을 들였다.


자연스럽게 후기 장르가 넓어져갔다.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라든지, 맘에 드는 식당, 카페 등의 후기를 공들여 썼다. 그때부터는 어디를 가든 사진 백장은 기본. 정성스럽게 사진을 고르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정리했다. 매일 한두 시간씩은 블로그에 무언가를 쓰는데 썼다. 이웃수가 많거나 방문자 수가 많았던 건 아니다. 이웃수나 방문자 수가 어마어마한 블로거는 그때도 많았을 텐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나는 그런 세계를 전혀 몰랐고, 그저 댓글을 달아주는 한 두 명에도 신이 났다. 일 방문자수를 확인해보면 평균 300~400명 정도였는데, 그게 너무 신기했다.


방구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쓸 뿐인데, 300명의 사람들이 와서 내가 쓴 글을 보다니. 누군가는 그저 창을 열었다가 금방 닫아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닿은 것 아닌가. 내가 쓴 글이 오늘도 300명에게. 얼굴도 모르고 의미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방구석의 내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중 몇 명에게는 이 글이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일 투닥이는 나의 키보드.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첫 번째 이유는 그저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아래 링크를 단 지난 글에 적었던 대로 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쳐서 나는 자꾸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SNS에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닿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서. 그냥 닿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인간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나에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 좋았다. 한 명이 더 보고, 또 한 명이 더 보고. 그 소소한 숫자에도 미소 지었던 건, 그저 세상과 닿는다는 느낌 자체가 좋아서였다. 엄마가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한 몸처럼 지내는 아이 말고는 '휴먼'과의 접촉이 차단된 느낌이었다. 세상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된 느낌. 그런데 블로그에 쓰는 글이 그런 내 마음을 채워주었던 것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글에서 무언가를 얻은 사람이 내 존재를 몰라도 괜찮았다. 그냥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쓸 수 있었다. 바쁠 땐 덮어두었다가도 다시 글쓰기 버튼을 열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위해서. 어떤 날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극과 극의 이유들을 왔다 갔다 한 덕분에 내 SNS 채널들은 전혀 전략적이지 않다. 10여 년의 경력이 딱히 내세울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건 그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장르와 상관없이 끄적인다. 어떤 날은 그냥 나를 위해서 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 없을 내 이야기들을. 당연히 알고리즘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네이버 인플루언서도 되지 못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정체 중이다.


그렇게 멋대로 써온 시간이 꽤 길었으니, 알고리즘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또 그렇지가 않다. 가끔은 알고리즘에게 선택받고 싶은 생각이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그 열망이 오래가지 못할 뿐. 그래서 오늘도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이 글은 그저 내 마음을 기록해두고 싶어 쓰는 글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쓴다는 내용의 글을, '딱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글'로 분류하여 쓰고 있는 아이러니라니. 그런데 이런 순간이 왠지 낯설지 않다. 글을 쓰는 나는 늘 (다양한 종류의) 회색지대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첫 번째 이야기는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끝맺으면서 쓴 회색지대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에 나옵니다. 조금 다른 영역의 회색 지대지만요.

https://brunch.co.kr/@jsrsoda/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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