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평범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지금도 자주 생각한다.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그건 첫 책을 세상에 내놓고부터였다. 그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평범함에 대해 생각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채로 살아가는 날들이 당연했다. 그러다가 첫 책을 출간하던 즈음, 내 책을 팔기 위해 나를 마케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니, 나의 평범함이 너무 극명하게 보였다.
첫 책이 출간되고 나면... 베스트셀러 딱지를 붙이고 나면... 그때는 내가 좀 덜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봐 왔으니까.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을 한 권 펴낸 사람이 너무 대단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내가 해내고 보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이의 책 한 권은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니, 나의 책 한 권은 하찮아 보였다. '그저 열심히 썼을 뿐이야. 투고를 했고, 운이 좋게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뿐이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베스트셀러 딱지를 붙일 수 있었지만, 그게 내 책이 좋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출간과 동시에 내 이름 뒤에 붙은 작가라는 칭호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나 같은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두 번째가 되면 그때는 좀 더 당당할 수 있을까?
첫 책이 세상에 나온 지 2년이 조금 지났다. 나는 그사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했고, 마케터가 되기도 했고, 매거진을 창간해 에디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두 번째 책 출간 작업도 진행 중이다. 과거의 나는 이런 사람을 대단하다고 여겼던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오늘 아침, 세수를 하다가 문득 왜 나는 도저히 평범함의 프레임 밖으로 나갈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평범함의 기준선은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세상의 다른 이들은 모두 대단해 보이고, 나는 평범해 보였던 거다. 책을 한 권도 내지 않았을 땐 책 한 권을 낸 사람이 대단해 보였고, 한 권을 내고 나니 두 권 이상을 낸 사람이 대단해 보였는데, 내가 두 번째 출간을 앞두니 두 권을 낸 사람은 다시 평범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내 머릿속에서는 말이다. 이러니 나는 평범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종종,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비슷하게 평범하거나 비슷하게 비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모두가 다를 뿐. 거기에 우열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보면 꺼내다 쓸 비범함이 필요해진다. 평범함만 가지고는 타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하고 애정을 가지고 유지하던 글쓰기 프로젝트를 그만둘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단지 책 한 권을 출간했다고 글쓰기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건 가당치 않아. 글쓰기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대신 내가 더 많이 쓰자. 더 많이 쓰고 나면 좀 더 당당히 글쓰기 코치가 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그런 생각 때문에 서둘러 두 번째 책을 쓰게 됐는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나에게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내가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다른 이의 글쓰기를 도울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무언가를 하나씩 이룰 때마다, 더 뛰어난 사람을 바라보면, 계속해서 나는 덜 이룬 사람이 되고 만다. "아니에요. 저 그냥 책 한 권 출간했을 뿐인데요." 할 때 내 가치를 인정해준 건 나보다는 상대방이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혹여라도 내가 자아도취에 빠질까 봐 그 말을 깊이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전히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되뇌면서.
그런데 오늘 생각한다. 가끔은 어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만큼 이뤄 낸 나에게도 같은 시선을 보내 보자고. 가져야 할 건 겸손한 마음이지, 나를 칭찬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매번 더 나아져야 한다고 다그치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테니 좋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나가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와 새로운 것을 해봐야지 마음먹었다면, 마음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꺼내서 흘려보낼 비범함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어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시도할 수 있는 반쪽짜리 영역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필요한 건 나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아니라 겸손하되 인정하는 태도다. 남을 보듯이 나에게도 똑같이 찬사를 보내줄 수 있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