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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24. 2023

해운대 로망의 실현

로망으로 다가서는 두 번째 발걸음

"거기에서라면 일몰도 일출도 다 볼 수 있을 거야. 나 어릴 때 우울하면 해운대에 일출 보러 가고 그랬거든."


지난여름 부산에 갔을 때 해운대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 묵은 이야기를 브런치에 쓴 적이 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고 또다시 일주일 이상의 친정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정말 모든 일은 한 걸음부터. 일단 발을 떼고 나면 그다음 걸음도 걸을 수 있는 것. 멀쩡한 친정집을 두고 숙박비를 지불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딱한 번 저렴한 숙소를 찾아 해운대를 즐기고 보니 슬그머니 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처음 한 걸음보다 다음 한 걸음은 더 대담한 법. 지난번에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게 좋다며 해운대 백사장에서 거리를 두고 달맞이 고개 위까지 올라가 잡은 숙소에 백 퍼센트 만족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바닷가 가까이에서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금슬금 검색을 시작한다. 키워드는 해운대 숙소.


하핫. 그런데 웬걸. 알고리즘의 혜택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단 한번 검색으로 나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해운대 숙소 광고로 가득 찼다. 본디 검색에 약한 편. 세상에 이렇게 많은 호텔 프로모션이 있는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직접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각종 호텔 프로모션들이 인스타 피드에 저절로 떴다. "해운대 숙소, 지금까지 중 제일 저렴한 가격.", "쏘냐 님이 어제 검색했던 숙소의 가격이 더 저렴해졌어요." "85% 할인"같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운 광고 문구들이 나를 솔깃하게 했고, 매번 클릭해서 확인하는 사이 더 풍성한 광고들이 내 삶을 장악했다.


수많은 광고 속을 헤엄치며 고민하다가 일단 결제한 건 해운대 바다로부터 한 블록 뒤에 위치한 깔끔한 호텔이었다. 최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도 나왔던 곳. 4인 가족이 머물 커넥팅 룸이 1박 십만 원대에 가능하고, 신상 숙소라 가보진 않았지만 깨끗할 테니 이만한 데가 있을까 싶었다. 비록 해운대 비치 1열에 늘어선 호텔들 덕분에 오션뷰는 기대할 수 없고, 인피니티풀은 노키즈존이라 우리는 이용할 수 없지만, 바다까지 5분이면 닿을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지 뭐.' 하는 마음으로 무료취소가 가능하니 일단 예약부터 해두었다. "오늘까지만 이 가격"이라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건 안 비밀. 마케팅 수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홀랑 넘어가버렸다.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해 해운대 호텔 광고가 떴다는 것. 그리고 그중 파라다이스 호텔의 프로모션 광고가 있었다. 해운대 비치 한가운데, 노른자 위치에 떡하니 서있는 바로 그 호텔. '이야, 여기 위치 진짜 좋다.' 하면서도 '쳇, 그렇게 좋지도 않으면서 비싸기만 하지.' 하며 애써 외면했던 바로 그 호텔이다. 살금살금 클릭하고 확인한 가격은, 31만 원. 오션뷰, 온수풀 야외수영장, 야외 스파, 키즈빌리지 (BMW 드라이빙센터 등) 포함 패키지 가격이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보다는 많이 비싸지만 (거의 2배??) 여름의 파라다이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 해운대 1박을 계획하며 전혀 염두에 둔 적 없는 가격. 으음, 그렇다면 혹시 나의 어릴 적 로망 조선비치 호텔도 가능한 거 아닐까? 얼른 검색해 보았으나, 아니었다. 거긴 수영장도 없고 방도 더 작은데 더 비싸다.


'으음, 조선비치 가격을 확인하고 나니 파라다이스 호텔 가격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걸. 이것 봐, 여긴 수영장도 포함이잖아. 애들이 가을부터 내내 노래 부르던 바로 그 수영장. 야외긴 하지만 온수풀이래. 으음. 나는 추운걸 제일 싫어하지만 그런 나를 위한 야외 스파도 있어. 그러니 잠시 추위에서 수영하는 건 참을 수 있을 거야.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게다가 여긴 BMW 키즈 드라이빙 센터도 포함되어 있다고. 자동차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우리 애들에게 최고의 호텔인거지.'


내 손은 이미 '결제하기'를 누르는 중. 선결제 후통보. 남편에게는 이렇게 운을 뗐다. "오빠, 있잖아. 파라다이스 호텔 패키지가 떴는데 가격이 좋아서 일단 결제했어. 이거 무료 취소 돼. 그러니까 아니다 싶음 취소할 수도 있어." 그러고 나서는 나를 납득시켰던 위의 이유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마지막엔 또 한 번. "물론 취소는 가능해. 지난번 예약한 저렴한 숙소도 아직 예약 상태고. 고민해 보고 둘 중 하나를 취소하자."


그때 나는 정말 파라다이스를 취소할 생각이 있었을까? 흐음. 이미 경험한 건 아니지만 이미 들여다본 낙원인 걸. 이미 야외의 추위 따위 잊은 지 오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만이 낙원의 인상으로 각인되었을 뿐. 그때부터 내가 한 것은 취소가능 기한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일. 그리고 남편에게 이렇게 나의 기대감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딱 일어나서 밖에 나갈 필요도 없이 테라스에만 나가면 일출이 보일 거야. 해운대는 남쪽 방향이긴 하지만 그 긴 바다 어딘가에서는 해가 뜰 거거든. 그런데 파라다이스는 해운대 딱 중간이고, 테라스에 서면 어느 방향이든 볼 수 있을 테니 백 프로 일출이 보일 거라고. 너무 좋을 것 같아. 겨울이라 추우니까 더더욱 좋지 않겠어? 일출을 보러 밖으로 나가려면 너무 추울 거 아냐."


그렇게 부산출신 나의 어릴 적 로망은, 조금 다른 위치에서 이루어질 준비를 시작했다.


실제로 파라다이스 객실 테라스에서 바라본 일출. 더 많은 사진은 다음 포스팅에서.^^


* 일출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으려다가 사설이 길어졌어요. 그래서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다음글로 부산여행 이야기를 이어 볼게요. 일출을 좋아하는 이유부터, 추운 게 제일 싫은 사람의 야외 온수풀 경험기까지.

** 글 속에 언급된 로망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참조해 주세요.

https://brunch.co.kr/@jsrsoda/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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