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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26. 2023

일출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날 아침 일출을 바라보며..

그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외투를 챙겨 입고 테라스로 나갔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굳이 돈을 더 주더라도 이 호텔에 묵고 싶었던 이유. 테라스에서 볼 수 있는 일출.


내 예상대로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치고 보는 일출은 아름다웠다. 정확히 정면에서 뜨는 해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는 붉은 태양, 파스텔톤 하늘. 시작의 설렘을 느끼게 하는 순간.


이상한 일이다. 해는 사실 온종일 하늘 위에 있다. 어느 하루도 해 없이 보낸 적이 없다. 그런데 한낮의 해에게 감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한낮의 해가 왠지 측은해졌다. 마치 숨차게 일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사를 보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다고 주목받던 어린아이의 시절을 지나 청년의 시기를 맞으면서 우리는 주목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가열차게 달리게 된다. 그래야 할 시기라는 이유로 수많은 노력들이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보니 천하의 태양도 마찬가지구나.


한낮의 태양에게도 종종 감사인사를 건네야지, 지금 애쓰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도 돌아봐 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눈앞의 붉은 태양에게 시선을 던진다. 동그란 태양이 손톱 같은 모양으로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멀겋던 하늘에 붉은빛이 퍼져나가는 풍경은, 언제나 시선을 붙잡는다. 왜일까? 또 한 번 고민해 본다. 아마 그건 딱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가 아닐까. 태양은 언제나 있지만 일출은 한순간. 딱 그 시간에 태양의 방향을 보아야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빛. 매일 뜨는 태양이지만 하루의 일부만을 물들이는 컬러이기에, 그 시간에 열광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일출은 더 특별해진다. 여행이라는 비일상에 또 하나의 비일상이 더해지는 일이니까.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중 1/48 뿐이니까.


일출 시간의 일출명소에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해가 지평선 위로 (때로는 산 위로, 때로는 건물 위로) 딱 떠오르면,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야, 해 뜬다." 하는 웅성거림이 퍼져나간다. 누군가는 조그맣게 올라온 태양이 동그랗게 온몸을 드러내고 나면 "이제 다 떴네. 가자." 하며 자리를 뜨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예뻐지는 시간은 태양이 지평선으로부터 10분 이상은 더 떠오른 후다. 실험용 램프의 불이 연상되는, 빨강과 주황이 적당히 섞인 채로 빛나는 둥근 형상. 태양은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고 바로 상앗빛 옷으로 갈아입지 않는다. 30분가량은 붉은 채로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오른다.


해가 떴다며 일어서는 사람들을 보내고 나는 한참을 더 태양을 바라본다. 언제나 조금씩은 다른 하늘빛. 언제나 조금씩은 다른 구름길. 그 위로 태양이 더 높이 오를수록 하늘은 더 붉어지고 바다 위로 비치는 물그림자는 길어진다. 이렇게 붉어지던 하늘은 태양이 어느 지점을 지나는 순간 일상의 빛으로 바뀌고 만다. 그러니까 막 떠올라서 다시 일상의 빛을 찾기까지, 그 시간의 중간쯤에 태양도, 하늘빛도, 물 위의 빛그림자도 가장 예쁜 시간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바로 그 시간이다.


해운대 한가운데, 호텔 테라스에 서서 일출을 기다린 그날은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슬금슬금 붉은빛이 퍼지는 하늘을 둘러보며 태양이 어디에서 준비하고 있는지 가늠해 본다. '바로 저기군.' 살짝 물들어가는 옅은 주황빛의 시작점을 찾았다. '으음.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볼 수 없겠네.' 아직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평선 위를 구름이 감싼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림짐작해 보건대, 저 구름이 끝나는 지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점보다 아래에 있다. 오늘은 지평선 위로 얼굴을 드러내는 태양 대신 구름 위로 떠오르는 붉은 손톱을 보게 되겠지만, 이내 둥근 존재감을 드러내며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일 게다. 느긋하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하늘에 붉은빛이 퍼져나갈수록 지평선 위 구름도 빛을 발했고, 레이스 뒤 전등빛처럼 구름 뒤의 태양은 보였다 숨었다 했다. 구름과 태양이 만들어낸 스트라이프라니. 역시 구름 없는 하늘보다는 구름무늬를 더한 하늘이 더 사랑스럽다. 마침내 구름을 완전히 벗어난 태양을 보면서 생각한다. '역시, 딱 지금 하늘이 (태양이, 그리고 바다가) 좋아.'



기다림. 어쩌면 일출감상이란 기다림의 미학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 삶의 기다림들이 떠올랐다. 반짝 막 떠오르는 순간보다 조금 더 기다려 더 넓은 공간을 물들일 수 있는 순간이 아름다운 태양처럼, 우리도 기다려야만 하는 이 순간을 지나면 더 의미 있는 반짝임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조금 더 기다려 구름 위의 태양을 보는 날도 있는 게 보통의 인생 아닐까.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고 빛을 잃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넓게 더 멀리 물들이는 그런 태양을 만나는 때가 있는 날들.


나에게 바다는, 태양은, 그 둘이 모두 존재하는 일출은 그런 의미다. 일상에서 지나쳤던 생각들을 꺼낼 수 있는 시간. 가만히 태양이 떠오르는 걸 기다리는 동안, 바쁜 마음으로 놓쳤던 것들이 다가온다. 굳이 주제를 정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를 성찰해 보자 마음먹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여유 있게 일출을 기다릴 준비만 하면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빛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내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잠시 머무는 비일상의 하늘은 나에게 비일상의 사고를 허락한다. 왜인지도 모르게 웅장해지는 가슴으로, 나는 자꾸 더 예쁜 마음을 먹는다.


나에게 왜 일출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 될지 모르는 나의 생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시간이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무겁게 가라앉은 짐들이 가볍게 떠올라 흩어지는 느낌.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질문과 답이 나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당장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 또한 과정임을 깨닫게 하는 힘. 그게 바로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의 마법이다.


그날의 파라다이스는, 숙박비 1/3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남편이 그랬었다. 이번 우리 호텔 비용 1/3은 오션뷰, 1/3은 수영장, 1/3은 자는 값이라고..) 그러니,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



* 일출을 보겠다며 이 호텔을 선택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jsrsoda/132

* 다음 글은 나머지 1/3을 채우는 한겨울의 야외수영장 이야기로 채워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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