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하늘이 궁금해졌다.

걷기 운동 3일 차

by 쏘냐 정

띠리링. 새벽 6시, 알람이 울렸다. 오랜만이다. 새벽 기상을 해보겠다면서 6시 기상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몰아닥친 몸살과 장염 덕에 꺼두었던 알람을 어제 잠들기 전 다시 켰다. "나 내일부터는 새벽에 나가서 걸어보려고." 그녀의 호기로운 선언에 남편은 "추운데?"라고 반문했다.


그래. 그녀의 아킬레스건은 추위. 그녀의 남편이 처음 예비 장인장모님과 인사하던 날, 예비장모님은 말했었다. "우리 딸이 추위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타네." 왜 예비장모가 굳이 그런 얘기를 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나름 앞뒤 맥락이 이어지는 말이어서 그리 생뚱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비정상적일 만큼 추위를 많이 탄다는 걸 새삼 다시 인지했다. 이번에도 사실은 그랬다. 다들 경량 패딩 하나 달랑 입고 다니는 길에 하얗고 통통한 롱패딩을 입고 나서야만 견딜만한 나라서, 갑자기 다시 기온이 훅 떨어진 월요일과 화요일은 새벽 걷기를 포기했던 터다. 하루이틀이면 다시 따뜻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일기예보가 예상하는 기온은 일주일 내내 비슷했다. 추위를 방패 삼는다면 앞으로 일주일이 더 지나도 새벽에 나가보지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녀는 운동은 뭐든 좋아하지 않는다. 아, 요가와 걷기는 제외하고. 요가는 워낙 정적인지라 그녀의 카테고리 분류 상 운동이 아닌 명상 쪽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고, 속도 조절이 가능한 걷기는 산책이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새벽 걷기가 하고 싶었냐면, 거기에는 두 개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명확하고 합리적이다. 원래부터 약했던 몸이 언젠가부터 더더욱 약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 이대로라면 아파서 못해낸 일 리스트가 그녀의 방을 빼곡히 채워버릴 만큼 많아져버릴 것만 같았다. 필라테스를 등록해 봤지만 매번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다 보니 돈만 아까웠다. 재등록 문자를 받고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이걸 더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 마침 함께 걷는 프로젝트 공지를 발견한 것이다. 이건 운명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운동은 운동. 사실 걷기도 인정해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달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다. '걷기'가 '산책'이 아닌 '운동'이라니 한없이 무거워졌다. 3일이나 붙들고 고민하다가 결국 신청한 건,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나를 걷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도 자신은 없었다. '내가 언제 도망칠지 몰라.' 그런 마음으로,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면서 신청했다.


"일단 걷기부터 할게요. 언젠가는 뛰어보고도 싶어요." 소망과 실행은 별개의 것. 한 번도 실제 실행할 거라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이런 소망이 싹트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막상 신청서를 쓰다 보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온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OT와 단톡방의 커뮤니케이션을 거쳤을 뿐인데 슬금슬금 '새벽'이 마음에 들어왔다. 새벽러닝 인증 사진 속의 새벽하늘이 너무 예뻤다. 그 하늘을 마주하고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달리기에는 새벽이 가장 완벽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이 되면 너무 피곤하고, 낮에는 달리기가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일단 '언젠가 달리기 위해 지금은 걷는 시간'을 새벽으로 정했다.


그렇게 정한 지 3일 만에 진짜로 6시에 알람이 울린 수요일이 시작됐다. '아, 목이 아픈데. 새벽부터 찬 바람맞고 걸으면 목이 더 많이 붓는 거 아닐까? 그러다 열까지 나면 어쩌지? 오늘은 일어났으니 모닝페이지 쓰고 책 읽다가 아이들 등원준비할까?' 언젠가 레깅스에 다리까지 넣고서 빠르게 다시 빼버리고 책을 읽었던 그날처럼,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매우 신속하게 쑤욱 들어왔다. '지지 말자. 지지 말자. 잘 생각해. 너 지금 나가서 걷지 않으면 나중에 낮에 계속 후회될 걸.' 간신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고 문을 열었다.


검은 러닝화. 운동화를 좋아하는 남편이 할인한다며 주문해 준 새 러닝화가 신발장에 들어있는 덕에 장비를 구매하는 수고는 덜었다. 발을 넣자 쫀쫀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꽤 좋다. 아치 부분이 단단한 느낌은 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땅에 딛는 발을 더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그녀의 남편이 이 운동화를 그렇게 좋아하나 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아저씨와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침묵 속에 1층까지 내려와 기대하던 새벽 속으로 나갔다. 으응? 왜 안 춥지?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럼 새벽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푸근하다. 기모 트레이닝에 숏패딩까지 걸쳐 입은 모습이 민망할 지경. 그렇지만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면 다시 못 나갈 가능성 100%. 이대로 일단 걸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또다시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새벽에 나와 걷고 싶었던 이유는 새벽의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짙은 네이비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살짝 붉은 그라데이션을 남기는, 자줏빛 같기도 보랏빛 같기도 한 그 하늘을 보고 싶어서. 그런데 그 하늘은 어디로 간 겐가. 이미 밝아져 버린 하늘엔 어둠의 흔적도 없다.



결국 걷기 3일 차의 새벽 걷기는 반쪽의 성공으로 끝났다. 새벽에 나가 30분 걷기를 완성했으니 반쪽의 성공,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하늘을 보는 일은 실패했으니 반쪽의 실패.


어쩔 수 없이 새벽하늘 보기 숙제는 내일의 그녀에게 넘겨 본다. 내일의 그녀는 과연 30분 일찍 나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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