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물은 흘러 바다가 될까?

걷기 운동 4일 차

by 쏘냐 정

오늘도 6시의 알람이 울린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몸을 뒤척여 본다. '그래도 하루 만에 그만둘 수는 없지.' 게다가 어제는 그녀가 원했던 그 짙은 하늘을 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꼭 보겠다는 마음으로 새벽을 달리는 이들에게 시간도 물어둔 터였다. 어제보다 30분 당겨 6시에 나가기로 이미 계획해 두었다. 역시 일어나야겠다. 오늘도 새벽을 깨운 건 몸이 아니라 정신이다.


어제도 알람은 6시에 울렸지만 6시 반이 조금 넘어서야 나간 건, 걷기 전 모닝페이지부터 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모닝페이지 먼저, 그다음 나가서 걷기. 이 루틴이 훨씬 효율적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었다. 모닝페이지를 쓰다가 아이들이 일어나면 방해를 받지만, 나가서 걷는 중에 집에서 깬 아이들은 그녀를 방해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그녀의 아이들은 아빠만 있으면 엄마가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6시에 일단 나가서 걸어야겠다 마음먹은 건, 그만큼 새벽하늘이 보고 싶어서였다. 왜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녀도 아마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둠을 밝히고 떠오르는 태양을 사랑했다고 대답하겠지. 여행 때마다 일출을 찾는 그녀에게, 걸으며 만나는 일출은 그만큼 매력적이었을게다.


어제와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금 얇은 외투를 입었다. 어제보다 기온이 조금 낮은 듯 하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1분이라도 뛰어볼 마음을 먹었으니까. 어제 같은 외투를 입고서는 너무 더워 잠시도 뛰지 못할 게 분명하다. 새벽으로 향하는 길은 좀 더 적막해도 좋으련만, 오늘도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있다. 어색함에 목례도 생략하고 구석에 서있다가 1층에 내려섰다. 유리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드는 생각. '아, 춥다.' 바람이 차다. 날을 세운 바람은 아니지만 보드랍게 스치는 감촉에도 몸이 떨렸다. 걷다 보면 몸이 데워질 테고 추위가 더위로 바뀔 테지. 그때까지만 조금 참아보기로 했다.


어제보다 어두운 하늘과 살포시 오르는 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해는 강렬한 붉은빛보다는 실크 스카프같이 보드라운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원하는 만큼 어둡진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잠시 '내일은 더 일찍 나와볼까.' 생각했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6시 기상도 이미 무리, 며칠이면 병이 나 앓아누울지 모른다. 아마 매일매일 해는 더 길어질 테고, 6시에 나와 이 정도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마음을 먹어본다.


감사라, 그리고 보니 그 자리에 감사할 거리가 하나 더 있다. 귓가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아파트촌, 30층 아파트 한복판 17층에 살면서, 문을 나서면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변 산책길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린 날의 그녀가 상상하던 한강변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떤 물은 '졸졸졸' 하면서 흐르고, 어떤 물은 '쏴아 쏴아' 흐른다. 가끔은 '우르르 쾅쾅'이라는 소리가 더 어울리는 물소리도 있다. 그녀는 '졸졸졸' 가녀린 물소리를 제일 좋아하지만 그 평온함은 주변이 조용할 때만 느낄 수 있다. 주변 소음으로 시끄러운 때라면 소음과 싸워 충분히 이길만 한 '쏴아 쏴아' 소리가 더 좋다. 물소리가 모든 소음을 지워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주인공에서 배경 정도로는 전락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의 산책로에는 애매한 소음이 흘렀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경적소리. 이런 날은 '졸졸졸'도 '쏴아 쏴아'도 모두 조화롭게 편안하다.


물길의 넓이에 따라,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바닥의 고르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그 소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흐르고 있다는 것. 고여있는 물에는 없는 소리가 흐르는 물에는 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 빠르게 걷던 발을 잠시 멈추고 흐르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릴 적 그녀는 과학 교과서에서 물의 여행에 대해 배웠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내를 이루고, 흐르고 흘러 강이 되고, 다시 바다로 간다. 그렇게 물들은 모두 바다에서 만난다 했다. 그런데 이 아침, 고요함 속에서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 물들은 정말 바다로 갈까?' 우리가 초, 중, 고 수준으로 배운 물의 이동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정말 내 눈앞의 이 천이 바다가 될까? 정말 지금 이대로 바다까지 흘러가 그 모습 그대로 바다에 합류하는 물은 어느 정도나 될까?


그러기에 물은 지나치게 투명하지 않은가. 색만 투명한 게 아니다. 물의 투명성에는 수많은 것을 녹일 수 있음이 담겨있다. 그만큼 다른 성질을 가지기 쉬운 존재다. 실제로도 지금 이곳에서는 염분을 지니지 않은 물이 바다에 이르러서는 결국 염분을 가지게 될 것 아닌가. 그걸 같은 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은 뜨거운 태양의 힘에 증발할 테고, 어느 날은 구름이 무거워져 다시 비가 되어 내리겠지. 그때 그 비가 닿는 곳은 이곳이 아닐 테다. 이 대지 어디 위에 내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이 이쯤 이르니,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싶다. 그녀에게는 이런 순간이 낯설지 않다. 굳이 그렇게까지 이어가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잇고 또 잇는 순간, 그러다가 왜 이러고 있지 싶은 순간들 말이다. 딱히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시작했다면 생각을 끝까지 이어가보자 매번 마음먹는 것 역시 그녀의 성격이다.


그녀의 생각은 자연스레 다시 물의 여정으로 돌아간다. 무엇이든 흡수하는 물은 무엇이든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이 우리가 책에서 배운 그림대로 이대로 흘러 저 넓은 바다 꿈꾸는 세상(바다가 꼭 꿈꾸는 세상이란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가정해 보기로)에 닿는 걸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산에서, 내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무엇이든 배우고 적응하며 최선을 다했다 해도 언제 증발되어 또 어느 산 위로 뿌려질지 모를 일. 결국은 삶이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님을 깨닫는 게 더 먼저다. 삶의 핵심은 불확실성에 있으니 말이다.


문득 그 자리를 흐르는 물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일 어디에 도달해 있을지 모를 일이니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자고. 앞으로 바다가 될 물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아파트 촌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천으로 존재해 주어 고맙다고.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 조용히 말해 본다. 앞으로 무엇이 될 그녀여서가 아니라, 그저 오늘 아침 몸을 일으켜 새벽하늘 아래 산책길을 걷는 그녀여서, 그저 그대로 사랑스럽다고. 오늘 35분의 시간 동안 딱 1분만 뛰고도 헥헥댔지만, 언젠가 35분을 뛰게 될 것이라서가 아니라 오늘 1분의 뜀박질을 시도했기에 충분히 훌륭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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