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원한 건 하늘 때문이 아니었어.

새벽 걷기 5일 차

by 쏘냐 정

'아, 사실 내가 어두운 새벽을 원한 건 하늘 때문이 아니었구나.'


그녀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다시 30분 늦춰 나간 길에서 뛰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어제 처음으로 걷뛰를 시도했다. 30분 넘게 걷는 동안 잠시라도 뛰어보자는 것. 그렇게 어제는 딱 1분을 뛰었다. 일주일 정도는 딱 1분만 뛰어볼까 하다가, 그냥 내일은 좀 늘려서 2분을 뛰어보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그 내일이다. 2분을 뛰어보기로 한 날. 그런데 '아니, 나 못 뛰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주변이 너무 밝아서였다. 1,2일 차에는 낮에 잠깐 걸었고, 수요일엔 처음으로 새벽 걷기를 했다. 6시 반에 나가 호기롭게 하늘을 봤는데 이미 밝아진 하늘에 실망하고 목요일에는 30분 당겨 6시 출격. 마음에 흡족한 어두운 보랏빛의 하늘을 보고 들어와서는, 이제 매일 이 하늘을 보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6시 알람을 맞추고 잠들기 직전, 문득 내일은 다시 모닝페이지 쓰기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먼저 달리고 와서 모닝페이지를 쓰려니, 모닝페이지가 운동 이야기로 가득 찼다. 어차피 운동일지도 쓸 텐데 모닝페이지까지 운동 이야기로만 가득 차는 게 마뜩지 않았다. 게다가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더니, 하루를 어영부영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을 차분이 돌아볼 시간이 먼저여야만 할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알람을 듣고 일어나서는 책상에 먼저 앉은 건 그래서였다. 차분히 쓰고 싶지만 머릿속의 생각은 언제나 손보다 빨라서, 오늘도 휘갈기듯 정신없이 몇 페이지를 쓰고 보니 6시 30분.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미 밝아진 새벽과 아침 사이. 그 길에서 달려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어두운 새벽에 나섰던 어제, 처음으로 1분이라도 뛰기를 시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무의식이 안심했던 거다. 아직 사위가 어두우니 뛰는 내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거다. 운동의 시작은 걷기지만 100일이 지나기 전에 뛸 수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이미 나는 운동시간을 새벽으로 정하고 있었다. 걷는 건 사람들 앞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뛰는 건 일상 속에서 할 자신이 없었다. 잘 보이지 않는 새벽을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뛰기를 주저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난감해졌다. 정말로 해는 자꾸 길어지고 있고, 어두운 시간을 원한다면 자꾸 더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일찍 일어날 자신도 없는 걸. 일단 생각은 접어두고 걷기 시작했다. 해뜨는 붉은 하늘을 계속 보고 싶어 어제까지는 일부러 해를 바라보고 걸었지만, 오늘 해는 이미 떴으니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며 걸을 이유가 없어졌다. 어제까지와는 반대로 방향을 잡았다. 새벽 걷기가 벌써 3일째여서인가, 오늘은 이상하게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했으니 몸이 쉽게 받아들이면 그것도 이상한 일. 역시 오늘은 뛰는 건 포기해야겠어. 그냥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아, 이 방향에는 이쯤에서 길이 끝나는구나. 어중간한 중간에서 돌아서는 것보다 좀 낫네.' 하며 돌아섰는데 저 앞에 어제의 그녀처럼 어색하게 잠시 뛰다가 멈추는 사람이 보였다. 마침 여기는 길의 끝. 보는 눈도 적다. '뛰어볼까'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 이번엔 시간을 정하는 대신 그냥 됐다 싶을 때쯤 멈추자. 얼른 시간만 확인하고 다시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탁탁 탁탁. 뛸 때 발이 받는 무게는 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온몸이 발 위로 쏟아지는 느낌. 숨이 찬다기보다는 다리가 아파서 더 달리면 무리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속도를 늦췄다. 시간을 확인하니 1분 30초쯤 지나있다. 어제보다 30초 더. 참 소소하기 그지없는 1분 30초가 오늘의 그녀에게는 커다란 전리품이다. 1분 30초가 30분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인증샷을 남긴다. 미래보다 지금이 조금 더 중요하니까.



덧. 사실 그녀는 진짜로 30분을 뛸 수 있게 될 거라는 확신은 없다. 이 관찰일지를 계속 쓸 자신도 없다. 하지만 일단 걷고 뛰고 썼다. 적어도 3일 만에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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