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떨어진다

운동 17일 차

by 쏘냐 정

엘리베이터에 타려다 멈칫, 그 자리에 서 버렸다. 30층에서 먼저 타고 내려온 신사분이 장우산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비가 오나?' 일기예보는 커녕 나오기 전 창밖도 살피지 않은 그녀는 당황했다. 엘리베이터에 한 발짝 들어와서는 더 들어오지도 않고 닫힘 버튼도 누르지 않는 그녀 대신 신사분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당장 내려 날씨를 살펴야 하나 고민했는데, 해결된 셈이었다. '일단 내려가 보고 비가 오면 다시 올라가지 뭐.'


다행히 아직 비는 오지 않았다. '설마 30분 안에 비가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그냥 나섰다. '헛, 오늘 왜 이렇게 춥지?'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문제는 추위였다. 3월 초에는 당연히 추울 거라 생각하고 나와서인지 매번 '생각보다 춥지 않네.' 하는 마음이었는데, 오늘은 따뜻할 걸 예상해서인지 추위가 당황스러웠다. 아주 잠시, 다시 올라갈까 생각하다가 추웠던 3월을 기억해 냈다. '조금 걷다 보면 몸이 데워질 거야. 더 추운 날에도 그랬어.' 경험은 소중하다.


100일의 걷기 운동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6주 하고 이틀이 지났고 일주일에 5일을 걷기로 했으니 충실히 걸었으면 32일은 걸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일지가 17일 차. 빠지기도 많이 빠졌다. 그런데 또 이렇게 숫자로 보니 그래도 반은 넘었으니 대견하네 싶다. 여하튼, 거의 반을 빠지면서도 시도한 보람은 있었다. 3월에 시작한 덕분에 알게 된 것이다. (한 겨울은 아니지만, 늦겨울 혹은 초봄의) 추운 날에도 얇은 점퍼 하나 입고 부지런히 걷다 보면 따뜻해진다는 걸. 그런 날의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이다.


3분이 지나도록 계속 추워서 '오늘은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10분이 지나기 전에 어김없이 따뜻해졌다. '걷고 들어가면 이불 속에 들어가야지' 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충분히 훈훈했다.


걷다 보니 살랑 새로운 바람이 불어, 또 하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음악 대신 오디오북 듣기. 걷는 동안 인풋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걸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게 좋았고, 걸으면서 무언가를 듣는 게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을 매우 좋아한다. 매번 아주 열심히 읽는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 자리 잡고 최선을 다해서 읽는다. 그러니 걷는 거리 위는 독서를 하기에 좋은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집중이 덜 돼도 괜찮을 것 같은 책을 하나 골라서 틀었다. 일부러 저자가 직접 녹음한 책을 골랐다. 새벽과 기계음은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들으며 걸으며, 몇 번이나 뭉클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역시 해보길 잘했다. 걸으며 책을 듣는 일은 꽤 해볼 만한 일이었다. '내일 나머지를 들어야지.' 생각한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제 아파트 통로로 쏙 들어가기까지 2분 정도 남았다. 굿 타이밍. 딱 기분 좋은 만큼 빗방울을 느끼고, 오늘의 걷기는 종료. 비가 오려나 싶어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면 얻지 못했을 30분의 상쾌함을 오늘도 얻었다.


suhyeon-choi-HCDugQDdtf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Suhy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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