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새벽이 좋다. 마침 토요일은 '언택트 낭만 레이스'가 있는 날이다. 달리기 모임을 처음 해 보는 그녀에게도 생소한 '언택트 낭만 레이스'가 뭐냐면,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거리를 각자 뛰고 걷는 레이스다. 그래서 언택트. 비록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단톡방을 통해 시작과 끝을 알리며 서로를 응원한다. 금요일 하루 새벽에 나갔다 와서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새벽 6시와 저녁 8시 30분 중 6시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늘은 5시 50분에 일어났다. 얼른 준비를 하고 6시에 겨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거기에서 출발. 주말 새벽 풍경은 평일과 사뭇 다르다. 늘 나와서 뛰고 걷던 사람들이 쉼을 택해서인지 한산했다. 고요해서 더 좋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탄천 길 위에 내려섰다.
어제는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걷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시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면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초조해하는 자신이 보였다. 그래. 분명 그녀는 예민해져 있었다. 최근 그녀는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첫 책을 출간한 지 거의 3년 만이다. '빠르게 초고쓰는 법' 강의를 할 만큼 글 쓰는 것을 즐기는 그녀가 바로 두 번째 책을 쓰지 못한 건, 쓰는 일이 아니라 파는 일이 두려워서였다. 출간이란, '쓰는 즐거움'을 '팔아야 하는 부담'으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스테이지에 서 있는 것이다.
첫 책과 비교하면 더 느리게 팔리고 더 둔하게 상승하고 더 빠르게 꺾이는 느낌.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첫 책 때보다 부지런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여유로워 보인다는 코멘트를 몇 번이나 들었다. 그때의 그녀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 보였다고 한다. 그녀도 잊고 있던 그때의 자신을 떠올려 본다. 아무것도 몰라서 더 용감했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효율성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힘들었냐면, 또 그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건 좋았다. (물론, 전하고 싶고 전하기 편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책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출판사에 손해를 끼친 저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팔아야 한다' 생각하면서 자꾸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무게 때문에 사실 또 한 번의 출간이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출간을 결심한 건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자신의 이야기가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대단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이 자리에서 행복하고 싶고 무어라도 이루어보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지나치게 고민을 많이 하는 데다가 소심한 시작을 반복하는 사람이니까. 비슷한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 책은 첫 번째 책에 비하면 훨씬 더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더 조심스러워졌다. 북토크 하나도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게 됐던 건 덜 초조해서가 아니라 더 초조해서였다. 이번엔 '팔아야 해'가 진화해서 '잘 이야기하고 잘 전해야 해'로 업그레이드된 마음이 있었다. 그때보다 더 잘하고 싶어진 거다. 근데 더 진솔하게,,, 그렇게 잘하고 싶었다.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고서 왜 더 힘들어졌는가를 고민하다가, 문득 답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내내 충돌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솔'과 '판매'의 결이 다른 목표가 말이다. 굳이 최고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많이'가 아니어도 되는데, '왜 나는 자꾸 숫자에 연연하게 되는 걸까' 묻다가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마케터가 됐다. 글로벌 기업, 게다가 글로벌 1위를 하는 제품군을 담당하게 됐다. 국가 내 마켓셰어 1위를 하는 지역을 맡은 사람들은 언제나 당당했고, 1위 하지 못하는 지역 담당자는 고개를 숙였다. 2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케팅 전략과 홍보를 담당했었는데, 언제나 시작은 1위의 증거를 찾는 일이었다. '최초'와 '최고', 그게 아니면 '최대',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라도 해야 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그녀가 맡은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판매 수량 분석을 통한 전략 수립이었다. 사원이었던 그녀는 가장 말단에서 자료정리를 주로 했다. 전 세계 판매물량을 정리하고 추이를 분석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는데, 그때 분석한 내용은 이랬다. 신제품이 시장에 나왔을 때 초반 판매 수량이 매우 중요하다. 제품에는 생애주기가 있어서 출시를 했다면 단종의 날도 온다. 생애주기 전체의 판매 수량을 분석해 보면 초반에 가파르게 상승한 제품일수록 총판매수량도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제품 자체가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런칭 초반 임팩트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때 승기를 잡으면 이후 행보도 유리해지는 것이다.
하아, 고요한 탄천을 걸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그때를 생각하다 보니 더 선명해진다. 내 책은 그때 그 회사의 1위 제품이 아니고, 나는 일개 개인일 뿐이니 그런 글로벌 기업도 아닌데, 자꾸 그때의 기억을 끌어와 스스로를 초조하게 했던 것이다. "출간 3주가 중요해요.", "출간하고 3개월이면 판단이 끝나죠. 그쯤 되면 될 책인지 안 될 책인지 확실해져요." 출판 시장에 뛰어들면서 들었던 이런 코멘트들이 그녀의 과거 기억과 맞물려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조기 램프 업 (목표 판매 수량에 도달하는 시점)을 이루지 못하면 그녀의 책도 조기단종하는 제품이 되어버리고 말 거라는 압박.
처음부터 잘 팔릴 책을 쓰겠다면서 쓰지 않았다. 시장 트렌드에 전혀 맞지 않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썼다. 그러니 더 마음이 부대꼈던 거다. 출간하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도 이대로 가라앉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걷는 시간 30분. 그 시간이 이 모든 고민을 정리해주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욕심을 내지 않을 수는 없다.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솔직히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다. 대신 그 욕심을 조절해 보자는 결심을 한다. 이 책은 과거의 그녀가 다루던 글로벌 기업의 제품이 아니라고, 책이란 메시지의 물성을 가진 제품이니 '최~~'라기보다는 '개별성'이 더 중요한 아이라고, 그러니 시장의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는 대신 더 그녀답게 세상을 마주 보자고. 스스로를 도닥여본다.
'그래도 손익분기는 넘어야 될 거 아니야. 그래야 출판사가 내 원고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을 거 아냐. 그래야 다음 기회도 올 거 아니야.' 줄지어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뒤로 미뤄두.................... 는 게 절대 되지 않고 생각할수록 자꾸 더 톡톡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도닥여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크게 다르니까.
새벽을 걷는 건, 어쩌면 운동이 아니라 명상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일지가 아니라 명상일지로 바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 그런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