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에서 온 아들이 말했다. "아, 그래? 얼마 전에 있었던 정전 후에 인터넷 공유기가 잘 안 된다는 집이 있던데.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몰라. 있다 아빠 오면 한번 확인해 달라고 하자." 아들과 나는 서로 다른 공유기를 사용한다. 집에 두 개의 공유기가 있고 각자 방에서 더 가까운 공유기에 연결해 둔 것이다. 얼마 전 아파트 전체 정전이 있었고, 전기가 들어온 뒤에 확인해 보니 공유기가 작동이 안 되는 집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사용하는 공유기가 멀쩡해서 또 다른 공유기가 고장 난 걸 몰랐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학원을 다녀온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학원 갔을 때는 카카오톡이 안 됐는데, 집에 오니까 다시 되네."
응? 이건 또 무슨 말. 공유기 고장이라면 집 밖에서는 잘 안 되다가, 와이파이 자동연결되는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안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공유기가 고장나서라면 집 안에 들어와도 와이파이 자동연결이 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문제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으음, 그렇다면 통신사 문젠가? 데이터 사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통신사까지 확인해야 하면 더 복잡해지겠군.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했고 아이 핸드폰을 좀 살펴봐 달라 부탁했다. (남편은 전직 핸드폰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면서 현직 UX 디자이너. 통신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핸드폰과 관련된 모든 일에 나보다 능하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서, 여러 정황상 데이터 연결의 문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침 아이들이 씻을 시간이었고, 아빠와 핸드폰을 살펴볼 테니 씻고 나오라며 아이 둘을 욕실에 들여보냈다.
그때부터 남편은 탐정 놀이를 시작했다. 자, 무엇이 문제인가? 좀 살펴보더니 남편이 말했다.
"데이터 한 달 사용량이 바닥났어. 데이터가 없어서 핸드폰이 안 되는 거야."
"응? 한 달 데이터가 얼마나 되는데? 그렇게 적어?"
"1기가. 1기가면 우리처럼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 모자라지만 축복이처럼 메시지 정도 주고받는 거로는 충분한 용량이야."
"그래? 근데 왜 그게 벌써 바닥난 거야? 뭔가 오류가 있는 거 아냐?"
"이번 달은 1일부터 사용한 게 아니라서, 사용 일수에 따라서 800기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걸 다 쓴 거야. 오늘 하루만 600 메가를 넘게 썼어."
"600 메가? 그걸 하루에? 써봐야 카카오톡 밖에 쓰는 게 없는데 그걸로 600메가를 어떻게 쓴 거지?"
"기록을 살펴보면, 오늘 하루동안만 카카오톡을 1시간 31분 사용했다고 나오는데...."
자, 이때까지 발견할 걸 정리해 보면 이랬다. 아이는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800메가의 데이터를 사용했다. 그중 600메가는 그날 하루 만에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사용한 내역을 보면 카카오톡 앱만 1시간 31분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그 외의 활동으로 사용한 시간은 1분 미만으로 뜬다. 바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 아이는 도대체 카카오톡으로 무엇을 했길래 1시간 31분이나 한 것인가. 대화창을 살펴보면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다.
- 600 메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카카오톡 대화로 영상이나 사진을 많이 공유한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대화로 1시간 31분을 썼을 것 같지도 않지만) 대화하는 것만으로 하루에 600 메가가 날아갈 수 있는가?
다시 남편의 연구가 시작됐다. 카카오톡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면서. 몇 분이 지났을까. 답이 나왔다.
"동영상을 봤네."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을 봤다고???"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무슨 동영상을 본 거냐 물었더니 유튜브 영상을 카카오톡 앱 내에서 재생한 거란다. 아하, 모든 의문이 풀렸다. "여기 재생 목록에 다 나와." 나는 대화 용도로만 사용하던 카카오톡에 동영상 검색 및 재생 기능이 있었던 거다. 리스트를 확인하니 '냥코' 이야기가 잔뜩 나온다. 요즘 엄마 아빠 합의 하에 아이가 하고 있는 게임 이름이다. 웃음이 풋, 영상 재생 리스트가 귀엽다.
모든 수사는 끝났다. 이제 아이와 대화할 시간. 아직 샤워를 마치지 못한 아이를 기다리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 고민했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옷은 다 입고 얘기해야지 했는데, 결국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바지를 입고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축복아. 혹시 엄마 아빠한테 할 얘기 없어?" 이건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뭔가 불안해졌는지 바지를 입는 손이 빨라졌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 앞에 섰다. "혹시 하고 싶은 얘기 없어?" 내가 다시 물었다.
배시시~~ 잠시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풀리며 쑥스러운 미소가 퍼진다.
"있어."
"뭔데?"
"나...... 동영상 봤어."
"축복아, 그래서 지금 핸드폰이 안 되는 거야."
"응? 그게 왜?"
자신이 동영상을 본 것과 데이터가 바닥난 것, 그러면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 데이터를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연결지을 수 없는 아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 메커니즘을 설명해 주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어떻게 카카오톡에서 동영상을 본 거야?"
"친구가 알려줬어. 이렇게 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그래서 학원 왔다 갔다 하는 버스에서도 보고, 아까 엄마가 꿈이 데리러 갔을 때 집에서도 봤어."
(동생 데리고 오는 동안 집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해 둔 양이 적었다. 그게 바로 이 동영상 시청 때문이었던 거다. 결국 아이는 숙제를 다 하지 못하고 학원에 갔다.)
아하, 모든 의문이 풀렸다. 동영상이라면 아마 1시간 31분도 부족했을 거다. 학원 오가는 시간과 내가 집을 비운 시간을 합하면 대충 시간도 맞다. 언제나 유튜브 동영상이 보고 싶은 아이. 이 아이에게 그건 제어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게다. 많은 엄마들이 풀지 못한 숙제. 그 숙제가 지금 내 앞에도 펼쳐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대화를 시작하면 공기가 싸하게 식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마아빠 눈치 보느라 계속 어색하게 웃는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는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숙이는 대신, 배시시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성의 있게 또박또박 자세히 대답하는 아이를 보면서 난감한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분명 낮의 축복이는 엄마아빠를 속였지만, 동영상은 약속한 만큼만 투명하게 보기로 한 약속을 어겼지만, 지금의 축복이는 아무것도 속이지 않고 다 말하고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이 또래의 아이에게 이런 유혹은 치명적일 테니.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솔직할 수 있으니 다행 아닌가.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어깨가 풀렸다. 나는 알았다며 거실 바닥에 툭 누웠다. 아이는 저기 부엌쯤으로 달아나서는 어색하게 어슬렁거렸다. "축복아, 이리 와 봐. 엄마가 조금 속상해서 지금 방전이 됐어. 충전이 필요해. 꼬~옥 하자." 무슨 말인지 금세 알아차린 아이는 내 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는 꼭 안는다.
"축복아, 사실은 엄마가 조금 실망했거든. 근데 엄마가 할 말 없냐고 물었을 때 솔직하게 말해줘서 괜찮아졌어. 안 그랬으면 진짜 많이 실망할 뻔했어. 지금 축복이는 내 욕망을 제어하는 연습을 하는 시기야. 오늘처럼 동영상을 보지 않기로 해 놓고도 방법을 알게 되면 보고 싶어 질 수도 있어. 연습하면서 배워가는 시기니까. 그런데 지금 연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꼭 참아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거든. 그래서 지금 연습이 중요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엄마는 이해하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노력해 보자. 그리고 꼭 보고 싶은 게 생기면 엄마한테 얘기해 줘. 엄마랑 의논하면서 조절할 수 있게."
사실은 나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또 엄마를 속일 수가 있냐고 소리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며칠 후 한번 더 속삭여줬다.
"축복아, 근데 있잖아. 엄마 생각에 축복이는 조절 능력이 아주 약한 편은 아니야. 지금 나이 또래에서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누가 뭐래도 나는 보고 싶은 만큼 꼭 봐야겠다고 하지 않고, 조절해 보고 싶다고 말하잖아.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거야.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유재석은 노래했다. 아이는 믿는 대로 큰다고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박사님도 말했다. 그래서 내 믿음을 전해본다.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