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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ug 10. 2023

"엄마, 형아가 안 치워."

CCTV가 있다면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을까?

방학이다. 그 말인즉슨, 모든 것이 뒤죽박죽 정신없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방학의 시작에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색종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과 다양한 종이접기 방법으로 신나게 놀 수 있는 도구. 그와 동시에, 사르륵 가벼이 흩날리며 온 집안을 어지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언젠가 종이접기 하는 아이들이 대견해 사주었던 200매 색종이 두 박스를 가지고 나오더니 오래된 종이접기 책도 꺼내서 폈다. 하나, 둘, 셋. 새로운 것들을 만들더니 가위로 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갔고.. 우리 집 거실 바닥은 색종이 점령지가 되었다.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날, 방이 더워 거실에서 자는 아빠는 매일 자신이 누울 만큼의 자리만 마련해서는 자고 일어났다.


'오늘은 꼭 저걸 치우라고 해야지.' 설거지를 하러 가며 생각했다.


"엄마 설거지하는 동안 너희는 거실의 색종이 치워."

"오케이."


분명 둘 다 경쾌하게 대답했다. 알콩달콩 사이좋게 치우는 소리도 기분 좋게 들려왔다. 거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싱크대에 서서 밖을 보며 설거지를 하는 나도 가벼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나를 부르는 것 아닌가.


"엄마, 형아가 안 치워."

으음, 둘 사이의 일은 둘이 해결해야지.

"그걸 왜 엄마한테 얘기해. 그건 형아한테 이야기해야지."


그러자 꿈이가 바로 축복이에게 말한다.

"형아, 같이 치우자."

"싫은데~"


으음, 싫다고? 둘이서 그렇게 열심히 놀고 저렇게나 엉망으로 어질러놓고 싫다고? 이번엔 내가 개입해야겠다 싶어 거실로 몸을 돌렸다.


"축복아. 이거 둘이 같이 가지고 논거잖아. 엄마도 처음부터 둘이 같이 치우라고 했고. 그러기로 해놓고 지금 갑자기 치우기 싫다고 하면 안 되지."


으음, 포인트가 뭔지 애매한 말로 일단 너는 이걸 함께 치워야 된다 강조했다.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가서 함께 치우는 축복이. 그리고 십분 후, 축복이가 온다.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여는데,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이다.


"엄마, 아까 그냥 치우는 게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냥 싹 모아서 상자에 넣자고 했는데, 꿈이가 모양별로 다 분류해서 넣고 싶다고 다 꺼내서 늘어놓은 거였어. 그거 분류까지 같이 하자는 건데, 왜 내가 그걸 같이 해야 해?"


"아, 그래서 아까 싫다고 한 거야? 그럼 아까 엄마한테 그 상황을 말해줬어야지. 엄마는 몰랐잖아. 모르니까 아까처럼 말할 수 있는 거고. 다음에는 억울하면 엄마한테 바로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 그러면 엄마가 그 상황에 맞춰서 중재해 줄 거야. 근데 그거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축복이와 꿈이 사이의 일이니까, 꿈이랑 둘이 해결하는 거지. '나는 분류하는 건 하기 싫어. 너도 혼자 다 하기 싫은 거면 그냥 이대로 쌓아서 집어넣자.' 그렇게 말했는데도 분류를 하겠다고 우기면서 혼자서는 하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면, 엄마한테 중재해 달라고 말하면 돼."


그러고서는, 두 팔을 벌렸더니 아직 눈물이 그렁한 채로 와서 폭 안긴다. 그걸 보던 꿈이가 옆에서 쭈뼛거리면서 얘기한다.


"아까 나한테 잘 생각해 보라고 미리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자기가 잘못한 게 그때 자기한테 잘못한 거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꿈이야. 이걸 내가 할지 안 할지는 네가 스스로 생각해야 되는 거야."

"그건 나도 알아."


으음? 안다고? 가만히 꿈이를 들여다보니 얘가 왜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다. 분명 자기가 잘못한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너... 뭔가 잘못한 거 같은 생각이 들지?"

"응, 사실 나 형아한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럼 형아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꼭 안아 줘."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마음이 불편했던 꿈이는 얼른 형아한테 가더니 미안하다며 두 팔을 벌린다. 형아는 또 바로 "괜찮아." 한다. 둘이 꼭 안더니 쓰담쓰담.


"우리 또 가오리 놀이하러 갈까?"

"그래."

심지어 목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하다. 방금 억울하다며 울던 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끔은 이런 아이들을 보며 너무 연극적인 것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뭐지, 이거? 이렇게 싱겁게 끝날 일이었어?' 아이들에게는 그저 억울한 것을 말할 공기면 충분한 걸까. 그리고 종종 그런 생각도 든다. 그 모든 순간을 내가 속속들이 알았다면 나는 억울한 일 만들지 않는 더 현명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CCTV처럼 말이다. 으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나는 오늘도 그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각자의 틈을 인정한다. 덕분에 오늘도 웃는다.


사진은, 여행지에서 사이좋은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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