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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ug 21. 2023

아들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아들의 사고를 예감하는 엄마들에게...

여름이었다. 여름방학 초입이었다. 방학하고 처음 아이가 학원에 간 날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처음 둘째의 유치원 방학을 확인하기 전, 첫째의 학교 방학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첫째 방학과 동시에 여행 계획을 세워두었다. 조금 늦게 받아 든 둘째의 방학일정. 헛, 우리의 여행 다음 주 월요일에 방학을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나는 자발적으로 둘째의 유치원 방학을 3일이나 앞당겼던 것이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보다 3일 먼저 온 가족 한 몸의 날을 시작했다.


애정해마지 않는 진도에서의 여행은 완벽했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진짜 방학은 진도에서 돌아와서 시작됐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방학 중. 학교와 유치원뿐 아니라 학원들까지 죄다 방학인 3일이었다. 미리 준비해 둔 밀키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삼시 세끼를 차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했다. 매일매일 집에서 같이 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눈치가 1도 없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었다.


그리고 마침내, 학원 개학의 날이 왔다. 한 몸으로 지낸 일주일 끝에 단비 같은 두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목요일 오후, 첫째는 영어 학원에 가고 둘째는 피아노/ 태권도 학원에 갈 시간. "엄마 나 안 가고 싶어. 그냥 엄마랑 계속 놀래." 하는 둘째... 아니지.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안될 말이지. "안 돼. 지금은 학원 갈 시간이야." "그럼 나 태권도 먼저 갔다가 피아노 가도 돼?" 으음. 평소에는 태권도하고 나면 피곤해서 방해될까 봐 꼭 피아노 다음에 태권도에 가라고 하지만, 하루쯤은 순서를 바꿔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태권도 먼저 갔다가 바로 피아노로 가."


그렇게 아이는 갔다. 집 안에 달랑 나 혼자인 시간이 얼마만이던가. 민낯에 잠옷만 입은 채로 자유를 만끽하며 책을 폈다. 혼자인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건가. 어느새 한 시간이 뚝딱. '아, 태권도장에 전화해서 바로 피아노로 올려 보내시면 된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태권도장에서 온 전화였다. 아이고, 내가 늦었네. 받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고, 사범님. 꿈이가 바로 피아노 간다고 하죠? 그 전화를 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했더니 "어머님, 꿈이가 좀 다쳤어요. 근데 아파하는 걸 보니 와보셔야 될 것 같아요." 바로 병원에 가야 될 것 같다며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으음, 거지꼴을 하고 자유를 만끽하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 그렇다고 안 간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네. 저 지금 바로 갈게요."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언젠가는 아이가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그날 받은 전화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태권도장에서 다쳤다니, 단순 염좌이거나 가벼운 골절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여름이라 불편하긴 하겠지만 깁스정도는 할 수도 있지. 큰 걱정 없이 태권도장 앞으로 갔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땐, 아이 상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눈물자국이 있었지만 지금은 울음을 멈춘 상태였고, "엄마 나 여기 아파."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엄마, 여기 잘 잡아줘. 안 그러면 아파." 하길래 팔을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았다.


문제는 아이와 걸음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아이가 한 발짝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다친 건 팔인데 몸의 작은 진동에도 반응했다. 잘 잡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팔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른 채 손목을 꽉 잡았다. 나름대로는 꽉 잡아줬는데도, 왜 계속 아프다고 했는지는 나중에 엑스레이를 보고서야 알았다.


한 번에 1센티씩 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아이를 뒤에서 안다시피 팔을 고정하고 1층에서 2층까지 이동하는데만 걸린 시간이 거의 10분.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만난 종이 한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여름휴가" 그래. 여름이었던 거다. 8월 3일. 여름휴가의 한가운데였다. 급히 창밖으로 보이는 길 건너 병원에도 전화를 돌려봤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 그들도 여름휴가 중이겠지. 결국은 커다란 사거리를 겨우겨우 건너 한 고맙게도 휴가 중이 아닌 정형외과 한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하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는데 무려 30분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덜 걸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계속 만원이었고, 그다음으로 덜 걸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만 운행했고, 아이는 여전히 한 번에 1센티씩만 걸을 수 있었다.)


다친 지 한 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를 찍자니 팔을 자꾸 움직여야 했고,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파요. 아파요. 그렇게 하면 아파요." "얼마나 걸려요? 여기까지만 하면 돼요?" 계속 물으면서도, 계속 울면서도, 그래도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 아이가 기특했다.


잠시 대기 후 확인한 엑스레이 상에 아이의 팔은 또각 부러져 있었다. '골절'이란, 살짝 금이 간 것부터 완전히 부러진 것까지 모두를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이건 같은 '골절'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억울한 측면이 있는 심한 골질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 사진 보여주면 엄마가 많이 놀랄 것 같은데..." 하면서 보여준 사진에는 부러져서 분리된 두 개의 뼈가 각을 보이며 어긋나 있었다. 그제야, 아이가 왜 그렇게까지 아파했는지 알 것 같았다. 팔꿈치 바로 위가 저렇게 또각 부러졌으니, 내가 잡아서 고정해줘야 할 부분은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 바로 아래 부분이었던 거다.


첫째가 발가락에 살짝 금이 간 적이 있지만, 이렇게 완전히 부러진 건 처음 경험하는 일. 나에게 경험이 없으니, 그간 들어온 경험담들을 떠올려 봤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한다고들 했다. 뼈를 맞추는 게 진짜 아프다고도 들었다. 뭐, 그렇지만. 부러졌으니 어쩔 수 없지. 얼른 맞춰서 깁스만 하면 될 거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간단한 거라 생각했다. 뼈를 맞추러 처치실에 들어갔고, 정말 잔인하게 아이의 아픈 팔을 잡아당겼고, 깁스를 했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리고........ 확인한 엑스레이 속의 뼈는 뼈 맞추기 전과 똑같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시거나, 수술이 가능한 전문 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 내가 예상한 건 딱 골절까지였다. 그래. 팔 정도는 부러질 수도 있는 거지. 남자애가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수술이라니, 수술이라니. '아냐, 그래도 수술을 꼭 해야 한다는 건 아니잖아. 큰 병원에 가면 더 능숙하게 쑤욱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해 줄 수도 있어.' 무의식 중에 희망회로를 돌리면서, 근처 수술 가능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 역시 쓰다 보니 길어지네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끊고, 큰 병원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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