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초보운전. 면허를 따고, 연수를 세 번 받고, 30분 거리 운전도 여러 번 했는데, 자꾸 포기했다. 조금만 더 하면 나아질까 싶다가도, 조금 더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는 대한민국. 대중교통의 천국아닌가. 운전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운전을 못 하는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아주 잘 걷는 어린이가 되었다. 게다가 대중교통 이용은 최근 뜨거운 화두인 환경 보존에도 좋지 아니한가. 운전을 못 하는 데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문제는, 단점도 아주 많다는 거다. 운전을 하지 못 해서 가지 못하는 곳이,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하긴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내가 연수를 세 번이나 받은 이유였다.
첫 번째 연수. 그건 그야말로 첫번째 였기 때문에 그저 어리버리 모든게 두려웠다. 이후의 시도에 비해 좋았던 건 두려워 하는 나를 용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이라 그래.'라는 말이 통하는 때였다. 그런데 연수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임신을 했고, 그대로 운전대를 놓아버렸다.
두 번째 연수. 첫째를 안고 지하철 타고 강남까지 직장 동료를 만나러 갔던 날 결심했다. 너무너무너무 힘든 길이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운전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연수받으면서 고속도로 타고 에버랜드도 갔다오고, 옛 회사도 갔다오고, 강남도 다녀왔다. 그래도 혼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버벅이다가 둘째를 임신했다.
세 번째 연수. 애 둘이면 무조건 차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에 또 한번 연수를 받았다. 연수 선생님은 왜 연수를 받는지 의아해했지만, 나는 옆에 선생님을 앉히지 않고는 길에 나설 자신이 1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덕분에 차를 몰고 백화점에도 가고, 조리원 동기 모임하러도 가고 했었다. 그런데 겨울 초입에 났던 가벼운 접촉사고 후 다시 운전 동면에 들어갔다.
드디어 네 번째 시도다
왜 다시 시도하게 됐는지는 지난 글에 자세히 썼다.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지만. 몇번이나 포기해야지 마음을 먹고도, 결국은 출발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칭찬할 일이다. 오늘 아침, 상상만 하던 카페로의 홀로 드라이빙 이야기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아찔함이 있었던 30분이라서, 더욱더 의미있는 도전.
목적지는 평소에 자주 가던 곳이다. 어제 저녁 네비로 검색해 살펴 보니 어떻게 가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우회전, 좌회전, 직진을 외우고, 그러려면 어디쯤에서 어느 차선에 서 있어야 할지도 대충 그려봤다. 그런데...
"도로 상황을 반영하여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으음? 지금 갑자기 새로운 경로라고?? 출발한지 5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네비가 새로운 경로를 안내한단다. 아니야. 괜찮아. 나는 도로 상황같은거 반영 안 해도 되고 오래 걸려도 되니까, 그냥 가던 그 길로 가줘. 마음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네비는 이미 새로운 경로로 나를 안내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운전이 미숙해 제정신이 아닌 내가 원래 알던 길을 더듬거려가며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네비가 가라는대로 움직이는 수 밖에.
뭐야? 여기야? 여기서 좌회전? 헛, 2km 뒤에 또 좌회전? 그럼 나 이 차선으로 가도 되는거야? 이 차선 서있으면 저 앞에서 여기가 좌회전 차선이 되려나? 음, 이게 그대로 직진 차선인데 내가 지금 여기서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을 하면, 그 다음 좌회전 때 두 차선을 변경해 들어가야 되는거 아닐까? 으아아, 여기 두 개가 좌회전 차선이야, 한 개가 좌회전 차선이야? 앞으로 사거리 두 개 더 직진 후 좌회전인거야? 한 개 더 직진 후 좌회전인거야? 머리가 끊임없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차선은 수시로 바뀌었고, 우측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좌측으로 들어왔다가... 정신없이 직진하다 보면 바로 그 다음이 좌회전이네?? 다시 정신없이 좌측으로 들어갔다가... (이걸 읽으면서 얘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싶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내 마음을 정확하게 느낀 거니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지 싶다...)
평소에는 뒷 차의 경적소리에 매우 예민해서는, 내 잘못이 아닐 때도 움츠러들던 나인데, 경적 소리 따위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아직 10시가 되지 않아서인지 차도 꽤 많은 편이었는데, 차선변경을 하려고 보면 의외로 차가 없는 경우도 불행히도 차가 많은 경우도 있었다. 빈 차선으로 변경하는 경험도, 빽빽하긴 하지만 서있는 건 아니고 계속 움직이기는 하는 차선으로 급히 변경하는 경험도 두루 했다. (울고 싶었다. 정말.)
드디어 도착. 주차를 하는데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앞뒤로 두어번 왔다갔다해서는 살짝 왼쪽으로 치우치기는 했지만 칸 안에 딱 맞게 넣었다. 예전 연수받을 때, 선생님이 주차 공식을 알려줬었다. 그때 몰던 차에는 그 공식이 너무 잘 맞아서 한번도 스스로 계산해가며 주차한 적이 없었다. 알려준대로, 주차선이 어깨와 맞을 때 핸들을 끝까지 꺾고 45도가 될 때까지 전진한 후 후진해서 넣으면 딱. 그런데 이번 차는 공식대로 되지가 않아서 자꾸 내가 계산을 해야만 했다. 핸들을 이리로 꺾었다 저리로 꺾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공식이 사라졌다.
도착해서 뿌듯해하며 찍은 계기판. 5.9km, 27분.
아찔함 끝에 무언가를 얻었다
운전을 시작한 이래 가장 아찔한 경험이었다. 가장 먼 곳도, 가장 복잡한 길도 아니었는데, 왜 이번 경험이 가장 아찔했을까? 준비하지 못한 운전이어서였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다. 지금껏 운전 연습을 하면서 한번도 먼저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네비로 목적지를 미리 찾아보는 건 물론, 모의운전을 통해서 차선까지 외웠다. 어디에서 어느 시점에 차선 변경을 해야할지도 계획해두고 출발했다. 마지막 지하 주차장에서의 접촉사고를 제외하면, 길 위에서 사고가 난 적도 없다. 주차를 못 해서 서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없다. 실수하지 않았는데도 다음 운전이 계속 무서웠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었기 때문이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도로 사정이란 언제나 같을 수 없으니, 다음에도 내 계획대로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음이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돌발상황에 대처가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을 한번도 가져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실오라기 만큼이라도 자신감을 얻었다. 갑작스런 차선변경을 할 수 있었고, 바로 앞에 길이 끊기는데 오른쪽 차선에는 버스가 서 있어 들어갈 수가 없어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어찌저찌 속도를 늦춰 버스 바로 뒤로 끼어 들어가는 경험도 했다. 직진해야 하는데 달리던 곳이 좌회전 차선이어서 얼른 백밀러를 살펴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가는 경험도 했다. 주차선에 맞춰 앞으로 나갔다가 후진하려고 하는 순간, 그 선에 내 차가 전혀 맞지 않는걸 깨달았지만 결국은 거기에 맞춰 넣었다. "내일 또 운전해서 나올래요?" 하는 말에는 흠칫 했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마음이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 운전을 다시 시작했던 첫 날, 나는 딱 주차장까지만 가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었다. 길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다독이며 지하로 내려갔다. 주차장과 아파트 근처만 서성이다 큰길까지 나간 것도 사실 오랜 준비가 아니라 일단 직진해버린 순간의 결정 덕분이었다. 일단 가보자며 직진했더니 뒤이은 후회에도 후진은 할 수 없어 길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계속 생각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가끔은 생각하지 않아야 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어떤 일에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준비하다가 포기하는 대신 생각없이 나가는 결정이 필요하다. 반대쪽 극에 있는 두려움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무언가에 능숙해지기 전에는 분명 어리숙한 날들이 있었다고. 미숙한 시도들이 쌓여 결국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고. 그런데 왜 운전에서 만큼은 처음부터 완벽하기를 원하냐고, 나에게 다시 말해본다. 오늘의 어리숙함이 만들어낸 아찔함이, 결국은 너를 성장시킬거라고. 그러니 내일도 생각없이 길 위에 서 보자고, 생각은 차를 타고 나서 길 위에 선 후에 그때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