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니,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 책임. 다친 게 누구 탓도 아닌 자기 때문이니 회복을 위한 재활을 참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7살 아들의 말이 대견하면서도 귀엽다.
아마 인생 최고의 아픔이었을 거다. 팔이 부러지는 순간부터, 수술, 그리고 재활까지. 그 순간들마다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줬었다. 그리고 종종 이런 말도 해주었다.
"다치니까 많이 불편하고 아프지? 근데 이번 일은 꿈이가 조심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생긴 일이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더 조심하자. 또 다치면 이런 걸 또 해야 돼."
이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담아, 앞으로는 조심하자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자신의 책임이라 말하는 것 보니 내 의도가 제법 먹혀들어간 모양이다. 어차피 내 책임이라며 또 마음대로 해버리면 할 말은 없지만, 충분히 아팠던 시간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본다.
깁스를 풀자 재활이 시작됐다. 6주간 팔을 쓰지 않았을 뿐인데 완전히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 채로 굳어버린 팔에는 꽤 공이 들어갔다. 매주 한 번, 재활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고, 집에서도 매일 암마표 치료가 이루어졌다. 수술한 지 세 달이 조금 더 지났고, 깁스를 푼 지 7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팔이 완전히 구부러지지 않는다. 왼 팔과 오른팔 구부러지는 각도 차이 5도. 그 5도 때문에 아직 오른손은 어깨에 닿지 않는다.
아이를 눕히고 팔을 구부려서 더 이상 구부려지지 않는 지점에서 힘을 들여 조금 더 밀고 10초를 센다. 꽤 아플 것도 같은데 아이 표정이 애매하다. 더 가도 되는지 그만해야 되는지 헷갈릴 땐 묻는다. "지금 얼마나 아파? 아픈 정도를 1에서 10까지라고 할 때 어느 정도야?" 의외로 6 정도라고 할 때도, 9라고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생각한다. '아, 이 아이도 꽤나 잘 참을 수 있는 아이구나.' 9라고 말할 때의 표정도 6을 말할 때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웃어 보이기도 한다. 나름대로는 참기 위한 방편인가 보다 싶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한 걸까? 나 때문에 일어난 일, 내 책임이니 아파도 참아봐야겠다고. 언제 사람 될까 싶은 천방지축 아들이 이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