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6살 되던 해였다. 동네 안과를 지나다가 들여다보니 환자가 별로 없길래 들어가서 접수를 했다. 누군가로부터 6살쯤 되면 안과 검진도 받아보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시간도 남고 안과 대기도 없으니 검진이나 받아보자 싶었다.
마지막 영유아 검진 때 했던 시력검사 때도 양안 1.0이 나왔던 아이다. 긴장감 없이 검사를 끝내고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시력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요."
"네? 시력발달이 안 되다니요?"
"약물검사를(산동검사)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오늘은 늦어서 검사가 어려우니 예약을 잡고 가세요."
곧 약물 검사를 했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원시에 약시끼가 약간 보인다고 했다. 약시가 심하면 문제가 되는데 지금은 애매하니 일단 두고 보자고.
시력 발달 부진의 원인은 속눈썹
시력이 왜 안 나오는지 원인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속눈썹. 속눈썹이 눈을 너무 심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각막에 계속 상처가 나고, 아이 시야는 뿌옇게 될 수밖에 없고, 그게 시력 발달을 방해한다고 했다. 그깟 속눈썹. 그깟 속눈썹이.... 문제가 지속될 경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너무 속상해졌다.
9살, 시력이 잡혔다
처음 안과 검진을 받던 날부터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계속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약시는 심해지지 않았고, 시력은 조금씩 좋아졌다. 9살이 되던 해,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시력이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안경을 계속 쓰기로 했지만, 시력이 잡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10살, 다시 갸웃
10살이 되었다. 어느새 다시 긴장감이 없어진 마음으로 맞은 정기검진이었다. 아이가 시력검사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얘 왜 이게 안 보인다고 하지?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선생님도 갸웃. "이상하네. 얘는 시력이 지금 떨어질 이유가 없는데,,, 시력이 떨어졌네... 근시도 생겼어요. 흐음, 혹시 모르니 6개월 후에 다시 한번 더 약물 검사를 해봅시다."
계속해서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검사 예약일에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결국 검사를 못 하고 보니, 다시 소아 안과 선생님을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그간 동네 안과에서 진료를 잘 받아오긴 했지만 사실 그 안과는 어르신들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내심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지난 검진 때, 떨어지지 않아야 할 시력이 떨어졌다며 의아해하던 의사 선생님의 반응도 마음에 걸렸다. 한 번쯤 소아 전문 안과 선생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살에 기나긴 대기 끝에 딱 한 번 진료를 봤던 병원에 연락해 다시 예약을 잡았다.
'아이 눈 상태를 보고 왜 그간 안 왔냐고 하면 어쩌지?' 괜스레 걱정이 됐다. 혹여라도 문제가 있다고, 해결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검사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2019년에 오고 오랜만에 왔네요."
"네. 멀리까지 오가기가 힘들어서 그동안은 동네 안과에 다녔어요. 이제 둘째도 크고 여기까지 올 만해져서 다시 왔습니다."
"그간 치료를 잘 받았네요. 그때는 아무리 해봐도 교정시력이 0.6 이상이 나오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1.0이 나와요. 안경도 지금 쓰는 그대로 계속 쓰면 됩니다."
마음에 맺힌 걱정이 순식간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6살 첫 진료 때 아주 무섭게 설명했던 의사 선생님이었다. 큰일 난다고. 지금 바로 안경 써서 잡아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사실은 그 무서운 말이 싫어 도망갔었다. 부드럽게 말해도 속상한데, 저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 선생님을 계속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선생님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간 치료를 잘 받아서 지금은 다 괜찮다고. 4년 전과 너무 다른 반응이라 더 마음이 놓였다.
교정시력 말고 안경 벗은 시력이 1.0이었으면 바랐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교정시력이 1.0이 나오니 정말 다행인 거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더딘 시력발달에 새로운 문제가 생길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겠지.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이제 다시 근시가 생기긴 했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흔한 시력 문제니까.
아이를 키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다양한 이유가 앞을 막아선다. 주변 사람의 부러움을 한껏 받게 해 준, 키우기 쉬운 착한 아들은 남들과 다른 분야에서 걱정을 안겼다. 그렇게 11살, 이번엔 한숨 돌려 본다. 앞으로 생길 또 다른 문제들도 이렇게 지나갈 거라고 믿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