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을 뽑고 반깁스를 한 지 2주, 드디어 반깁스를 풀기로 한 날이다. 아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고대하며 기다렸다. "가서 양치해." 하면 알아서 양치하던 아이, "형아랑 같이 샤워해." 하면 내 손을 타지 않고도 샤워하고 나오던 아이였는데, 깁스를 한 6주 동안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다친 건데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왼손을 다쳤다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더 더욱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언제나처럼 엑스레이 찍고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꿈이의 진료 차례, 조심히 진료실에 들어섰다.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확인하더니, 아주 잘 붙었으니 깁스를 풀어도 되겠다며 거침없이 붕대를 풀어냈다. 드러난 아이의 팔은 까맣고 가늘고 꼬질꼬질했다. 6주 동안 꽁꽁 싸매고 움직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 내 눈에 당연하지 않게 보인 건 아이의 상처부위였다. 흉터가 너무 짙었다. 가장 큰 구멍의 딱지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채였다. 아무리 팔을 닦아주고 싶어도 불리지는 말라고 선생님이 주의를 줬다.
다시 모니터를 보면서 선생님이 설명을 했다. 팔이 아주 잘 붙고 있다고. 2주 전보다 더 선명해진 게 보이냐고. 그때 좀 더 투명했던 부분이 뼈가 제대로 성형되면서 하얀색으로 채워지고 있는 거라고. 아주 잘 붙고 있다고 한 번 더 강조하기까지 했는데, 내 눈에는 뭔가 이상했다. 하얀색으로 채워지고 있는 건 분명한데 아직도 완벽히 하얗지 않다. 게다가 군데군데 투명한 부분도 많다.
"선생님, 이 부분은 아직 뼈가 다 채워지지 않은 건가요?"
"네. 이것도 시간 지나면 다 채워질 거예요."
"그렇게 완전히 채워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두세 달 정도요."
으음? 뭐라고? 그러니까.. 아주 잘 붙고 있는데, 그러니까 지금 깁스를 풀어도 되는데, 뼈는 아직 어딘가가 비어있고 채워지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의료의 시각에서 볼 때는 아주 경과가 좋은 상태인 게 맞을 테지만, 깁스를 하고도 뛰어다니던 남자아이의 엄마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럼 아직 조심해야겠네요."
"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이 팔로 무거운 걸 들거나 매달리거나 하는 것도 아직 안 돼요."
하아. 결국 아직 멀었단 얘기다. 두세 살 아이 뒤를 보듯, 놀이터에서도 뛰지 못하게 쫓아다녀야 하는 날이 아직도 두세 달은 남았다는 이야기. 그래도 완전히 다 채워질 때까지 깁스를 해둘 수 없는 건 재활을 위해서라고 나중에 재활치료 선생님에게 들었다. 6주 이상 깁스를 하게 되면 근육이 더 심하게 굳어버리고 되돌리기가 힘들어진다고...
"선생님, 이제 내일이면 하민이 깁스 풀 거예요. 이제 선생님도 저도 좀 더 편해질 거예요."라고, 바로 전 날 유치원 선생님에게도 말해둔 터였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깁스를 푼다는 건 완전히 나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때 이른 축배였던 거지. '바로 전화해서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고, 아직 두세 달은 우리 함께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야겠군.'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깁스를 풀었다. 아직 반팔을 입고 있던 여름날이었다. 꼬질꼬질하기 그지없는 아이의 팔이 그대로 드러난 게 부끄러웠다. 깁스 푼 기념으로 병원 앞 백화점에 들러서 놀다가 들어가기로 했는데, 저 모양을 하고 백화점은 어떻게 가나 한숨이 나왔다. 오, 그때 가방 속에 든 바람막이가 생각났다. 그걸 꺼내서는 쌀쌀하니 걸치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아이는 해맑게 그 옷을 입었다. 니 팔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팔을 가리는 데 성공해서 기쁘던 그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근데.... 나 팔에서 냄새가 나는 거 같아."
푸핫.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렸다. '그래. 냄새가 나지. 그 냄새 근데 5주 전부터 났던 냄새야. 물론 농도는 점점 더 짙어졌지. 지금까지 네가 팔을 구부리지 못해서 몰랐던 거야. 니 팔은 너의 코 근처에 갈 수가 없었으니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뒤늦게서야 지나치게 심각해진 아이와 눈을 맞췄다.
"아, 그거 깁스한동안 못 씻어서 그런 거야. 집에 가서 씻으면 바로 괜찮아져."
"아~~"
"혹시 냄새가 나서 싫으면 백화점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서 씻을까?"
"아니. 나 백화점 갈 건데."
이 냄새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물은 거였는데, 아이는 단호박. 그럼 어쩔 수 없지. 얇은 바람막이가 냄새도 막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실제로 꽤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예쁜 달 조형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아이가 좋아하는 주얼리 매장 구경도 하고.
단, 명품 매장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건 말렸다. '우리 저기까지 들어가기엔 지금 너무 꼬질꼬질하거든.' 그런데 그때 명품 매장이 즐비한 복도에 서서 아이가 한 말이 또 걸작이다.
"엄마, 난 이렇게 보기만 해도 내 거 같고 좋아."
"아, 그래?"
"왜냐면... 지구가 다 내 집이거든."
명품 매장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오픈된 선글라스 정도는 둘러봐도 된다고 했더니 신난 아이. 깁스는 풀었지만 보호를 위해 아직 팔걸이는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