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 첫 부서 부장님 따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 입사는 2006년. 당시에 부장님 딸이 중학생이라 했는데 결혼이라니.. 하면서 계산해 보니 그게 벌써 18년 전이다. 입사는 2006년, 퇴사는 2014년. 퇴사로부터도 십 년이 지났네. 게다가 중간에 조직 이동을 했으니, 첫 조직 팀원들과 못 본 지는 14년이 다 되어간다. 결혼식에 가서 만나면 아무래도 서먹서먹하겠지. 걱정하는 마음 반. 그들은 혹시 날 기억 못 하더라도 나는 반가울 거야. 기대하는 마음 반.
결혼식장에 도착해 (옛) 부장님께 인사부터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익숙한 얼굴은 많은데, 나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서에 있을 당시 나는 사원이었고, 결혼식장을 채운 익숙한 얼굴은 대부분 당시 간부급 혹은 임원들이다. 서로의 노출 빈도에 큰 차이가 있을 터. 게다가 그사이 결혼하고 애 낳고 내가 많이 변하지 않았는가. 혼자 힐끔힐끔 보고 내면으로만 반가워하고 있을 때, 그분이 나타났다.
'앗, 저분이라면 나를 기억하지 않을까?' 당시 마케팅팀 팀장이었던 전무님이셨다.
"어? 이게 누구야? 잘 지냈어?" 정말로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페이스북으로 소식도 다 보고 있어. 그사이 작가가 됐더라고. 내가 얘기는 못 했지만 계속 응원하고 있었어. 퇴사하고 나가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이렇게 자기 일 찾아서 잘하고 있는 게 너무 대단해서 응원하게 되더라고."
순간 울컥했다. 신입 사원 때부터 나의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은 한 분이었지만, 팀장님에게 나는 몇백 명 팀원 중 하나였고 말이다. 언젠가 사원 간담회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길래, "사무실 말고 현장에서 경험할 기회도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었다. 글로벌 마케팅팀. 한국 말고 해외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늘 경험이 고팠다. 그 말을 기억했다가, 다음 신제품 런칭 북미 시장 조사 출장팀에 나를 콕 집어 넣어주셨더랬다. "런칭 팀에 정소령 그 친구 일단 멤버로 넣어." 하셨다고.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셨다. 그때 알아차리신 듯했다. 다들 나를 알 텐데 못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다시 와서 데리고 가더니 "이 친구, 정소령이야. 기억하지? 퇴사했는데 지금은 작가가 됐어. 작가." 마치 우리 아빠가 친구들에게 딸을 소개하듯 엄청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감사라는 말로는 못 다할 감동.
삼성전자.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이유가 있었고, 내 선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에서 그 당시 내가 꿈꾸던 길을 밟아 승진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작아진다. 지금 내 길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내가 포기하고 나온 길이 있으니까. 그게 너무 잘 보이니까. 그들에게 나는 떨려 나간 존재가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그때도 존경하던 저 높았던 팀장님이 나를 자랑스러워해 준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데 증거 같은 건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증거에 기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요즘 터틀넥프레스의 <사업일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출판사 대표의 좌충우돌 창업기인데, 내 눈엔 출판업보다 브랜딩 과정이 더 크게 보였다. 우와아, 멋지다. 우와아, 재밌었겠다. 브랜딩은 신나고 재밌는 작업이니까.
반성은 하되 후회하지는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그게 내 선택에 책임지는 태도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후회를 떠올렸다. 마케팅, 브랜딩 경력을 의도적으로 빠르게 지우고 버린 것. 좋은 조직에서 마케팅을 배우면서 내가 그다지 재능 있는 마케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마케팅 프로젝트에 가슴이 뛴다. 엊그제 서울국제도서전에 가서도 출판사 브랜드 노출 이런 거 자꾸 눈에 걸리고. 그걸 붙잡아 뒀으면 쓰는 나도 좀 더 유용할 수 있었을까.
뭐, 어쨌든 지나간 이야기다. 이제 그 경력은 나만의 서사가 되어 나를 돕는다. 수많은 파도를 지났다. 대부분은 마음속의 파도였다. 붙잡고 버리고 부정하고 인정하고. 나를 알게 한 건 역시 고뇌하는 시간이었고, 고뇌를 정리해 준 건 역시 글쓰기였다.
그렇다. 나에게 좋은 과거가 있고 그리운 시간이 있다는 건 감사할 일.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돕는다. 이런 방식으로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돕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