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변하는 마음도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아무튼' 뒤에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 단어가 붙어 완성되는 제목. 오로지 그 하나에 대해 써 내려간 에세이 시리즈다. 제목만 보고도 마음이 뜨끈해진 단어는 양말, 연필, 뜨개였고, 최근에 읽은 아무튼 시리즈는 은유 작가님이 쓴 <아무튼, 인터뷰>다.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이런 시리즈를 만날 때마다 내가 저자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아무튼 시리즈'의 저자가 된다면 무엇에 대해 쓸 수 있을까? 글쓰기? 그건 흔해빠진 소재인 걸. 나 말고 더 잘 쓸 수 있는 유명한 사람도 너무 많고. 청바지? 흐음. 거의 70개는 모았던 청바지를 다 처분하고 없잖아. 쓰기에는 지금 가진 청바지는 너무 미천한 걸. 그러다가 알았다. 나는 하나를 진득하게 좋아하기보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좋아해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쓰는 나는 꾸준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딱 하나에 대해서만 평생 쓰라고 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거란 걸 말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가져다가 글로 만들어 낼 자유가. 덕분에 여전히 나를 브랜딩 할 주제는 불분명하다. 알면서도 갈지 자로 걸으며 이것저것 쓴다.
문득, 반항심 비슷한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는, '고작 그만큼 해놓고 그걸 취미라고 말한다고?' 할 만한 다양한 조각을 '취미'라는 한 단어에 묶어보고 싶은 마음. 나는 그것들을 나의 취미라고 불러줄 테다. '아무튼 시리즈'의 저자들만큼 하나에 진득이 천착하지 못했더라도 분명 그 순간에는 진지했던 나는 나만 아니까.
사실 최근의 나는 번아웃에 빠져있다. 새 책이 나오고 한 달이 지나면 오는 계절병 같은 거다. 필요한 이야기라는 확신을 가지고 쓴 나의 책이 사랑받는 만큼 외면도 받는 장면을 목격해야 하는 작업. 그게 책 출간이라는 는 일이다. 오랜 시간 나를 쪼개어 넣고도 충분히 날아가 닿지 못하는 글을 보면 마음이 바닥에 늘어 붙는다. 이런 시간을 매번 거치면서도 결국 다시 쓰기 때문에, 쓰는 일이 나의 천직이라 믿는다. 쓸 때마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극복해 내기 때문에.
이런 순간에 취미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이 얼마나 완벽한 타이밍인가. 내 번아웃을 극복할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고, 취미라는 주제는 행복한 날을 상기시키기에 적합한 통로가 되어 줄 테다. 그래서 시작한다. 때로는 몇 개월, 때로는 몇 년. 때로는 아파서, 때로는 즐거워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가까이 뒀던 내 취미들에 대해서 쓰는 일을.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즐거운 날을 떠올리는 촉매제가 되어 주기를. 대단해서가 아니라 소소해서 따스한 기억이 줄줄이 사탕처럼 걸려 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