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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04. 2020

왜 슈가맨 '아빠의 말씀'을 들으며 눈물이 났을까?

30대,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

 어제의 슈가맨이 역대급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누가 나왔냐고 물었더니 최불암, 정여진 씨와 김국환 부자가 나왔단다. 출연자를 듣고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역대급이었다는 거지? 그래서 그 방송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어느새 눈물 흘리며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30대 후반. 아직도 마음은 20대이지만 서른을 넘긴 지 오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마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내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 준 프로그램이 바로 '슈가맨'이다. 나는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세대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활발히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가 되었다. 현재의 음악은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90년대의 음악은 내 마음을 흔든다. 그래서 '슈가맨'은 기획되었을 테고 지금 시즌 3까지 순항 중이다.


 한참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그 시류에 '슈가맨'이 등장했고 함께 사랑을 받았다. 모든 미디어가 우리의 추억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소비한다. 2002년의 곡이 소개되었던 어떤 날, 나는 조금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노래방에서 참 많이도 불렀던 노래였다. 2002년이라면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 그 날 슈가맨에 출연해서 이 노래를 오랜만에 부른다는 가수가 말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게 15년 만이라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그렇구나. 내 기억 속의 꽃 같았던 푸르렀던 그 시절의 나는 15년 전의 나구나.


 나는 그때의 나에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나 많이 흘러왔구나. 시간이 흐르는 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또 나름 지금은 지금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스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걸 알고 있는 30대의 나에겐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아련한 서글픔이 된다.


 그런데 어제의 슈가맨은 또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가 소비할 수 있는 대중문화의 추억은 20대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최불암 씨와 정여진 씨의 '아빠의 말씀'은 더 어린 나를 불러왔다. 어릴 때 들어봤던 기억뿐 아니라 가사가 말하는 어린 날의 순수함. 어린 날의 동화. 어린날의 내가 꿈꾸던 세상. 그 모든 추억을 불러준 가사.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나서 나는 그 가사를 다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출처. news.naver.com 포토뉴스)


아빠의 말씀 (With 정여진) - 최불암


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 나는 정말 꿈이 커요 빨리 어른이 돼야지

(그래 아가 아주 큰 꿈을 가져라)

(안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암 되고 말고 넌 지금 막 시작하는 거니까)


빨리 어른이 돼야지 나는 누가 이끌어 주나요 그냥 어른이 되나요 나는 어쩌면 되나요

(음 그래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야 돼)

(그러면 착한 엄마가 되고 훌륭한 아빠가 되는 거야)


내가 쓰러지면 그냥 놔두세요 나도 내 힘으로 일어서야죠

(그래 아가 용기를 가져라)

(누구나 어른은 쉽게 되지만)

(혼자 일어서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나는 희망이 있어요

(자 아빠를 봐 올바르게 열심히 살았지)

(이제 이 아름다운 세상은 네 것이야)

(넌 지금 막 시작하는 거란다)


내가 쓰러지면 그냥 놔두세요 나도 내 힘으로 일어서야죠 나는 지금 시작 이니까요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 빨리 어른이 될 거야

(그리고 기억해다오 너를 사랑하는 이 아빠를)

나는 지금 시작이니까요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 빨리 어른이 될 거야 될 거야 될 거야


 '나는 지금 시작이니까요'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났던 건 지금도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 30대 후반에 서서, 나는 여전히 시작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충분히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릴 때 내가 말했던 시작과는 다르다. 그때의 나는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시작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희망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나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시작을 말하고 희망을 가지는 내게 왜냐고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어를 말할 때, 나는 누군가의 '왜?'라는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나는 꿈이 컸고, 열심히 살았고, 혼자 일어서는 법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꾸고, 열심히 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 받았던 그 환대와 응원이 가끔 그립다. 어쩌면 실패의 두려움 따위 가지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확신. 내가 가진 큰 꿈이 그저 자랑스러웠던 순수한 마음. 진짜 시작점에서 이후의 장애물은 하나도 보지 못하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


 하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든 나는 이제 30대. 그때의 추억을 소비하는 세대. 이제는 지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찾아야 하는 시기. 그래야 추억을 소비하고 현재는 생산할 수 있을 테니. 추억을 소비하다가 현재까지 소비해버리면 안 되니까. 지금 나는 그때와 다른 시작점에 있지만 여전히 시작할 수 있다. 어릴 적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만 저 노래 가사에서 다시 희망을 찾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저 마음을 되찾는 것. 저 가사에서 현재 나의 큰 꿈을 불러오고, 희망을 찾고, 시작하는 두근거림을 얻는 것. 이제 아빠는 어릴 적 그 커다란 존재로 나를 끌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대신 그때의 아빠만큼 자란 나는 스스로도 날 끌어볼 수 있을 테니. 세상이라는 도화지에 무엇이든 마음껏 그릴 수 있었던 나는 지금 없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서. 하지만 내겐 추억해낼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지금 다시 희망의 그림을 그려본다. 그때의 마음을 담아. 지금도 할 수 있다고, 시작해도 된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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