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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13. 2020

너 퇴사한 거 정말 후회하지 않아?

행복과 그리움의 사이에서

 대학 때 함께 유럽여행을 했던 친구들을 만난 자리였다. 대학 입학 때 만난 같은 학부 친구이자 아나운서 준비를 같이하던 친구. 둘 다 일찌감치 아나운서의 꿈은 접었는데 그러고 나서 선택한 직장도 똑같이 삼성전자 마케팅이었다. 그만큼 오랜 길을 함께 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물었다. "그런데 너 진짜로 퇴사한 거 후회하지 않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우리 둘은 완전히 다른 결정을 했다. 그 친구는 아이 둘을 낳으면서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첫째를 낳고 바로 퇴사를 결정했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저 친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내 욕심과, 악바리 같은 근성과,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나를 아는데 회사를 그만둔 거 정말 후회하지 않느냐고.


(출처: unsplash.com)

 

 친구의 질문을 받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질문을 받은 게 3년 전. 그때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출산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만삭의 임산부. 출산휴가부터 시작해서 일을 하지 않은 게 만 4년쯤 된 시점.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솔직히 전업 엄마가 되고 살아낸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왜 이렇게 행복한지 나조차도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끔은 눈물 나도록 그립고 가슴 시리도록 아팠다.


 왜 지금 나는 행복한데 이렇게 눈물 나게 그립고 슬픈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지금 행복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지금' 행복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히 지금은 행복하지만 과거 역시 그리울 수 있다. 나는 내가 너무 가지고 싶은 것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했다. 51과 49의 선호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하나를 선택했을 뿐. 나는 나머지 하나가 싫어서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엄마'라는 역할은, 그렇게 소중했던 것을 버릴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지만 여전히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고 나의 과거가 눈물 나도록 그립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퇴사한 것을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아마 또다시 치열하게 고민하겠지. 차마 퇴사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끝까지 미루고 미루며 시간을 끌겠지. 하지만 결국은 퇴사 의사를 밝히고 말 것이다. 나에게 엄마의 자리는 내 일을 지키는 것보다 적어도 2만큼은 더 가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49와 51 중 또다시 51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 결론을 얻고 나니 지금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쉬워졌다. '과거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그냥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슬퍼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함 역시 그대로 인정했다. 지나간 것이 그립다는 슬픔에 사로잡히면 마치 후회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을 가진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맞지 않다. 과거와 지금은 다르고, 과거와 지금이 모두 만족스럽다면, 지금이 행복한만큼 과거가 그립고 슬플 수 있는 거니까. 그 슬픔에 사로잡혀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 슬픔과 행복을 분리해주면 지금의 행복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변화의 시작 5am 클럽'에서 로빈 샤르마는 말했다. "루스벨트가 이런 말을 했어요. '비교는 기쁨을 앗아가는 도둑이다. ' 당신보다 많은 재산과 명성을 가진 사람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점점 많은 것을 갈망하는 것은 뿌리 깊은 결핍감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상당 부분은 원시적 뇌의 작용 때문입니다. 원시적 뇌가 환경을 살피면서 부정성 편향을 활성화하여 당신이 가진 좋은 것들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거죠." 이 부분을 읽으며 상당 부분 동의했다. 당장의 것만을 즐기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좋은 것은 즐겨도 좋다.


 대신 그 그리움 끝에 생기는 꿈 역시 잘 정리해두기로 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말이 언제까지나 지금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첫째가 네 살, 뱃속의 둘째. 그 당시의 내가 선택한 엄마의 삶은 엄마로 머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언젠가 내가 엄마의 자리를 털고 나가고 싶어 질 때를 기대하기로 했다. 그때를 위해,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차곡차곡 쌓아가기로 했다. 나의 꿈을.


 내가 엄마의 자리를 여전히 행복하게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엄마로 살아간다고 해서 평생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생각. 퇴사원을 낼 때, 내 업이었던 마케팅의 길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나의 경력의 단절은 인정했다. 그때 나에게 많은 이들이 말했다. 너 같은 애는 집에서 애만 키우면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설마 평생 애만 키우겠어요? 나중에 뭐라도 하겠죠."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삶이 참으로 많다.


 나중에 내가 평생 엄마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에게 열어두는 것이었다. 다른 이의 평가나 현실적인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 스스로 나에게 열어두었을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그냥 나를 믿는다. 엄마로서의 내가 내 아이들을 사랑하듯이.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 전업 맘인 나를 사랑한다. 지금의 삶을 사랑한다. 과거의 내가 그립고, 미래의 나에게는 다른 꿈을 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숨길 것도 포장할 것도 없이 이 모습 이대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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