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애 둘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의 굳은 육아 철학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by 쏘냐 정

"나는 이제 애를 하나만 낳은 사람이 쓴 육아책을 읽지 않을 거야."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고 애 둘을 낳은 친구가 둘째를 키우면서 나에게 한 말이다. 나에겐 아직 애가 하나뿐이었지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서는 저 말에 100%, 아니 1000%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낳으며 나의 육아 인생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간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역조차 무참히 무너졌다.




물론 둘째 역시 계획한 임신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맞은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 첫째는 계획보다 빨리 와서 엄마를 당황하게 하더니 둘째는 계획보다 2년이나 늦게 찾아왔다. 둘째를 임신하면 힘들 거라는 핑계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막상 둘째를 낳던 날 첫째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2년이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둘째인데 낳고 나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년 전에 낳았으면 더 힘들었겠다 다행이다 싶을 만큼.


내 인생의 2막은 결혼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출산에서 시작되었다 싶을 만큼 첫 아이의 출산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둘째의 출산은 어쩌면 3막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큰 변화였다. 다시 한번 나의 한계를 체험하고 주저앉고 타협하고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제 나의 완벽주의를 더욱더 내려놓게 되었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행복 찾기가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착한 첫째였기에 모두들 우리 첫째만큼은 동생이 태어나도 안정적으로 잘 지나갈 거라고 입 모아 말했었다. 그런데 그건 어른들의 착각일 뿐. 아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동생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엉망으로 어지럽히고 다 자기 꺼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의 멘탈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며칠 째, 표현하는 아이가 표현하지 않는 아이보다 낫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아이는 고작 5살.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른의 욕심이었다. 나도, 아이도 완벽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받아들인다. 우리 조금씩 다독여가며 극복해보자.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나아가자.


그리고 또 한 가지,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시간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데, 나만의 취미생활이 필요한데, 시간 내기가 힘들었다. 특히 6개월 이전에는 모유수유를 했기에 더더욱 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내었다. 바로 천기저귀. 천기저귀를 한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매우 희생적이고 정성이 지극한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천기저귀를 시작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현대적인 천기저귀들이 너무나 예뻐서. 예쁜 디자인의 천기저귀가 갖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나의 천기저귀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어차피 구매해야 할 기저귀였다. 흔한 일회용 기저귀 대신 천기저귀를 사보자 싶었다. 나의 즐거움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환경에도 좋단다. 일석이조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이유 같지만 그럼 어떤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걸. 한동안 이 천기저귀를 사고 심지어 예쁜 천으로 만들고 빨고 개면서 행복을 맘껏 누렸다.


어쩌면 나는 무의식 중에 계속해서 현재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을 참 필사적으로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시절은 단유와 함께 조금씩 풀어져 갔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아이들의 안정을 위해 부모가 함께 있을 때는 하나씩 맡아서 케어하느라 예전처럼 나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도해갔다. 엄마가 애 둘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면 아빠도 할 수 있다. 조금씩 아빠에게 밀어주기. 그렇게 아빠 역시 내공을 쑥쑥 업그레이드해 나갔다. 아빠도 자꾸 해봐야 는다. 아이는 아빠와도 애착을 형성할 수 있고 그것은 얼마나 자주 밀착되어 있느냐와 연관이 있다. 우리 남편이 그 증거였다. 때로 우리 아이들은 엄마 대신 아빠를 찾으니까. 내가 맡길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엄마는 애 둘을 케어할 수 있지만 아빠는 하기 힘든 일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부터 조금씩 조급해하지 말고 맡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날이 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길 때 가장 중요한 것. 작은 일이라도 칭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의 터널 역시 평등한 시간을 따라 지나고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지점에 도달했다. 24개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나는 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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