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백서 4
새벽 3시, 나는 노트북 앞에서 엑셀 시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통장 잔고: 840만원
이번 달 고정비: 720만원
다음 달 고정비: 720만원 그다음 달: ...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두드렸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공동창업자는 옆 테이블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그는 "될 거야"라고 믿었다. 나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카톡을 열었다. 엄마에게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가 지웠다. 대학 동기 단톡방을 열었다가 껐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힘들어"라고 하면 "그럼 그만둬"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2년을 쏟아부었는데.
포기해야 하나? 버텨야 하나?
이게 스타트업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진실
창업 미디어는 두 가지 이야기만 한다.
"끝까지 버텨서 성공했습니다!"
"빨리 접고 피벗해서 성공했습니다!"
둘 다 결과론이다.
성공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나처럼, 한밤중에 혼자 앉아서 엑셀을 보고 있다. 결과를 모른 채로. 답을 모른 채로.
"버텨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접어서 성공한 사람도 있다"는 말은 위로가 안 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겪은 세 번의 괴로움
첫 스타트업.
매출이 6개월째 월 100만원에서 안 올랐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다음 달엔 뭔가 터질 거야."
나는 매달 이렇게 말했다.
팀원들에게, 부모님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8개월째, 팀원 한 명이 나갔다.
10개월째, 공동창업자가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12개월째, 나는 혼자 남았다.
14개월째, 나는 항복했다.
통장에 남은 돈: 0원
남은 인간관계: 망가짐
배운 것: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는 버텨서는 안 될 때 버텼다.
그리고 모든 걸 잃었다.
두 번째 도전.
B2B SaaS. 4개월째 고객 3명.
월 매출 180만원.
"이건 안 되는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보자."
첫 번째 실패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나는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또 늦게 접어서 망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4개월 만에 접었다. 그리고 다른 걸 시작했다.
6개월 후,
첫 번째 고객 중 한 명에게 연락이 왔다.
"그 서비스 왜 없어졌어요?
다시 안 해요? 우리 진짜 필요한데..."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 서비스를 사내에 퍼뜨리고 있었다. 천천히, 조용히. 우리는 몰랐다.
나는 접어서는 안 될 때 접었다.
그리고 기회를 놓쳤다.
세 번째 도전. 6개월째, 비슷한 상황이 왔다.
매출: 정체
사용자: 증가 중
런웨이: 3개월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노트를 펼치고, 모든 걸 적었다. 숫자를, 감정을, 사실을. 그리고 하나씩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답을 찾았다.
버티지도, 접지도 않고, 피벗했다.
3개월 후, 우리는 살아났다.
당신이 지금 괴로운 이유
대기업은 명확하다.
실적 나쁘면 경고, 경고 3번이면 해고.
스타트업은 다르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아무도 안 알려준다. 어느 선을 넘으면 접어야 하는지 매뉴얼이 없다.
당신은 안개 속에서 운전하고 있다. 불이 어디 있는지, 벼랑이 어디 있는지 모른 채.
부모님: "언제까지 그럴 거니?"
친구들: "요즘 어때?" (속마음: 망했나?)
후배들: "선배님 대박 나셨죠?" (기대의 눈빛)
당신은 이미 충분히 힘든데,
주변의 시선이 더 무겁다.
그만두면 "역시 안 됐구나" 버티면 "아직도 안 됐어?"
뭘 해도 눈치 보인다.
"여기까지 왔는데..."
"2년을 쏟아부었는데..."
"이제 그만두면 다 날리는 건데..."
매몰 비용(sunk cost)은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나는 첫 스타트업 때 이 함정에 빠졌다. "1년 했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1년이 아깝잖아." 그래서 6개월 더 했다. 결과? 1년 6개월이 날아갔다.
이미 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시간이다.
공동창업자는 의견이 다르다. 투자자는 "계속 해보라"고 한다. (손해 볼 게 없으니까) 멘토는 "네 판단이 중요하다"고 한다. (책임 안 지려고)
결국 당신 혼자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도 혼자 짊어져야 한다.
외롭다.
괴로울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새벽 2시의 당신은 멘탈이 바닥이다.
그때 내린 결정은 99% 후회한다.
나는 규칙을 만들었다:
새벽 12시~오전 9시 사이에는 중요한 결정 금지
밤에 메일 쓰지 않기
밤에 공동창업자와 진지한 대화 하지 않기
새벽의 절망은 아침에 괜찮아질 때가 많다.
"포기할까, 버틸까?"
이건 너무 큰 질문이다. 쪼개라.
"이번 주는 일단 버티자" "한 달 더 데이터를 모으자" "다음 미팅까지 보자"
작은 단위로 결정하면 덜 괴롭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창업가는 강해야 한다는데..."
개소리다.
나는 두 번째 스타트업 때, 대학 선배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저 망하고 있어요. 어떡해요."
선배는 자기 실패담을 2시간 동안 들려줬다. 그게 위로가 됐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말하라. 창업한 선배에게, 같이 창업하는 동기에게,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찾은 결정 방법
감정은 흔들린다. 어제는 "할 만해" 오늘은 "망했어".
그래서 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매달 1일, 같은 질문에 답한다.
□ 런웨이가 2개월 미만인가?
돈이 떨어지면 선택권이 없다.
2개월 전에 결정해야 여유 있게 정리하거나 피벗할 수 있다.
□ 핵심 지표가 3개월째 악화 중인가?
단순히 정체가 아니라 악화.
MAU 감소, 이탈률 증가, 매출 하락. 3개월 연속이면 빨간불
□ 팀원 중 누군가 번아웃됐나?
팀이 무너지면 재기 불가능하다.
한 명이라도 완전히 지쳤다면, 그건 신호다.
□ 고객이 "필요 없다"고 명확히 말하나?
"좋긴 한데..."는 애매하다.
하지만 "필요 없어요"가 70% 이상이면 시장이 없다.
□ 나 자신이 이 제품을 안 쓰는가?
"고객을 위해 만든 거니까..."는 변명이다.
창업자가 안 쓰는 제품은 대부분 실패한다.
□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은가?
일시적 번아웃과 근본적 회의는 다르다.
한 달 내내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다면, 뭔가 틀렸다.
□ 코호트가 개선되고 있나?
이번 달 가입자가 지난달 가입자보다 더 오래 남는가? 그렇다면 제품이 좋아지고 있다.
□ 고객 중 누군가 열광하나?
100명이 "괜찮네"보다 10명이 "대박이에요"가 낫다. 한 명이라도 "이거 없으면 못 살아"라고 하면 신호다.
□ 문제가 "방향"이 아니라 "실행"인가?
제품은 좋은데 가격이 문제?
마케팅이 문제? 이건 고칠 수 있다. 버텨라.
□ 런웨이가 6개월 이상 남았나?
시간이 있으면 시도할 수 있다.
여유 있을 때 결정하라.
□ 팀이 여전히 서로 믿나?
회의 때 눈 마주치나? 농담하나?
신뢰가 남아있으면 버틸 수 있다.
□ 같은 문제가 6개월째 반복되나?
리텐션 낮음 → 기능 추가 → 여전히 낮음 → UX 개선 → 여전히 낮음. 6개월째 같은 말 하고 있다면 방향이 틀렸다.
□ 현재 고객 중 우리가 예상 못 한 사용법이 있나?
"이렇게 쓰라고 만든 게 아닌데..."
그게 피벗 힌트다. 고객이 보여주는 새로운 길로 가라.
□ 고객 인터뷰 중 전혀 다른 문제를 계속 듣나?
"A를 해결해주려고 만들었는데,
고객은 계속 B가 문제라고 한다." 그럼 B를 해결하라.
□ CAC > LTV인데 3개월째 개선 안 되나?
고객 모으는 데 10만원 드는데,
고객이 5만원만 쓴다. 이건 사업이 아니다.
다른 시장으로 피벗하라.
□ 피벗할 에너지가 아직 남았나?
피벗은 "다시 시작"이다. 그럴 체력 있나?
있으면 피벗, 없으면 포기가 답이다.
실전 사례: 내가 체크리스트로 결정한 날
6개월째 되던 달, 나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포기 체크리스트:
런웨이 2개월 미만? → NO (4개월 남음)
핵심지표 악화? → NO (정체지 악화 아님)
팀 번아웃? → 반반 (한 명은 OK, 한 명은 지침)
고객 "필요없다"? → NO (오히려 "좋다"고 함)
내가 안 쓰나? → YES (사실 안 쓴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나? → YES (요즘 힘들다)
2/6.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버티기 체크리스트:
코호트 개선? → YES (조금씩 나아짐)
누군가 열광? → NO (다들 "괜찮네" 수준)
문제가 실행? → 애매함
런웨이 6개월? → NO (4개월)
팀 믿음? → YES (아직 믿는다)
2/5. 버티기엔 부족하다.
피벗 체크리스트:
6개월째 같은 문제? → YES (리텐션 계속 낮음)
예상 못한 사용법? → YES! (고객들이 A가 아니라 B 기능만 씀)
전혀 다른 문제? → YES (B를 더 좋게 해달라는 요청 많음)
CAC>LTV? → YES (적자)
피벗 에너지? → YES (아직 할 수 있다)
5/5. 만점.
답은 피벗이었다.
우리는 "A 기능 서비스"를 버리고 "B 기능"에만 집중했다. 같은 고객, 다른 문제.
3개월 후, 모든 게 달라졌다.
결정 후에 해야 할 것
1. 팀에게 먼저 말하라 SNS보다 먼저.
투자자보다 먼저. 같이 싸운 사람들에게 먼저.
2.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라
고객 환불/이관
팀원 재취업 지원
투자자 보고
채무 정리
급하게 도망가지 마라. 평판은 재기의 자산이다.
3.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하라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배우지 않는 게 실패다.
나는 첫 스타트업 접고 나서 30페이지 회고록을 썼다. 뭘 잘했고, 뭘 못했고, 다음엔 뭘 다르게 할 건지.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1. 명확한 마일스톤을 정하라 "언제까지 버틸 거야?"가 아니라:
"3개월 후 MAU 5천 달성"
"2개월 후 MRR 500만원"
"다음 달 말까지 투자 유치"
목표 없이 버티면 그냥 죽어간다.
2. 매달 1일, 다시 체크하라 상황은 바뀐다. 한 달마다 체크리스트를 다시 작성하라. 버티기 점수가 떨어지면 바로 전환하라.
3. 팀과 솔직하게 공유하라 "우리 3개월 버티기로 했어. 이 목표 달성 못 하면 방향 바꾸자."
팀이 상황을 알아야 같이 뛸 수 있다.
1. 배운 것을 가지고 가라 완전히 새로운 걸 시작하지 마라. 지금까지의 고객 인사이트, 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2. 고객에게 솔직하게 말하라.
이유는..." 놀랍게도, 고객들이 응원한다.
어떤 고객은 따라온다.
3. 작게, 빠르게 검증하라 피벗했다고 6개월 개발하지 마라. 1달 안에 MVP로 검증하라.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이 지금 괴롭다는 걸 안다.
새벽에 혼자 앉아서 숫자를 보고, 답 없는 질문을 되뇌는 거 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포기해야 하나?"
나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모든 창업가가 이 순간을 지난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차이는 단 하나. 어떻게 결정했느냐.
감정으로 결정하면 후회한다.
시스템으로 결정하면 배운다.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라.
숫자를 보라. 그리고 결정하라.
포기해도 괜찮다.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다. 버텨도 괜찮다.
끝까지 가보는 것도 경험이다.
피벗해도 괜찮다.
방향을 바꾸는 용기도 능력이다.
뭘 선택하든, 당신은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다음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은 괴롭지만, 1년 후 당신은 감사할 것이다.
"그때 그 결정을 해서 지금의 내가 됐구나."
힘내라. 당신은 이미 충분히 용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