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 백서 6편
새벽 4시, 엑셀 시트 앞에 앉아 있었다. 매출 2억 3천, 순이익 마이너스 3천. 숫자를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됐다. 작년 이맘때는 혼자서 월 1,500만원씩 벌었다. 통장에도 돈이 쌓였다.
"이제 키울 때야!" 싶어서 직원 5명을 뽑았다. 사무실도 넓혔다. 재고도 늘렸다. 그리고 1년 후, 매출은 3배가 됐는데 통장은 비었다. 대출만 8천만원. 뭐가 잘못된 걸까?
혼자 잘 굴러가던 시절
2년 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시작했다. 패션 브랜드, 처음엔 부업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상품 등록하고, 주말에 택배 보내고, 새벽에 CS 답변 달았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내 손으로 만든 매출이 통장에 찍히는 게 신기했다.
3개월째
월 500만원,
6개월째
월 1,200만원,
1년째
월 2,000만원.
회사를 그만뒀다.
혼자서도
월 1,500만원.. 2,000만원은 안정적으로 나왔다.
들어가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었다.
순이익률 40%.
월 600-800만원이 손에 쥐어졌다.
"이걸 키우면 대박이겠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조직을 만들기로 한 이유
혼자 하니까 한계가 명확했다. 하루 16시간 일해도 모자랐다. 상품 등록부터 CS, 배송, SNS, 재고 관리까지 모든 걸 혼자 했다. 주말도 명절도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혼자서는 SKU를 늘릴 수 없었다. 상품 10개가 한계였다.
쿠팡에서 입점 제안이 왔고, 대형 유통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하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었다. "지금 조직 안 만들면 기회를 놓친다." 그렇게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첫 직원은 지인 소개. 쇼핑몰 경험 있다고 해서 월 250만원에 바로 뽑았다. 면접다운 면접도 안 했다. 뭘 물어봐야 할지 몰랐으니까. 디자이너 300만원, 마케터 280만원, CS 담당 250만원, 물류 담당 230만원. 반년 만에 5명. 인건비만 월 1,310만원, 4대보험 포함하면 거의 1,500만원이었다.
사무실도 집에서 30평으로 옮겼다.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00만원. "이제 제대로 된 회사 같아!" 3개월 후, 나는 깨달았다. 매출은 늘었다. 하지만 돈이 안 남았다.
조직 만들고 나서 생긴 일들
일이 더 느려졌다. 혼자 할 땐 바로바로 했는데, 직원에게 시키면 "내일까지요~"였다. 내일 확인하면 틀린 게 있었다. 가격도 틀리고 옵션도 틀리고. "수정해주세요" 하면 "모레까지요~". 결국 내가 다시 했다. 3일 걸릴 일을 1시간 만에.
소통에 하루 3시간이 날아갔다. 아침 9시 출근하면 30분 회의. 업무 중에도 "대표님 이거 어떻게 해요?" 질문이 쏟아졌다. 하루에 50번은 불린 것 같다. 내 일은 못 했다. 퇴근 후에야 내 일을 했다. 새벽 2시까지.
책임감의 차이도 컸다. "이번 주 매출 왜 안 나온 것 같아요?" 물으면 "글쎄요, 시장이 안 좋은가 봐요"였다. 알고 보니 상품 등록을 일주일간 안 해놨더라. "왜요?" 물으니 "깜빡했어요"였다. 깜빡? 이게 우리 밥줄인데?
비용은 폭발했다.
인건비 월 1,500만원, 사무실 200만원, 각종 구독료 80만원, 회식비 50만원, 잡비 100만원. 총 고정비 월 1,930만원. 혼자 할 땐 월 50만원이면 됐는데. 매출 2억 5천 해도 고정비만 2천만원 넘게 나갔다. 순이익은 거의 안 남았다.
그래도 버텨봤다
"초기라서 그래. 자리 잡으면 나아질 거야."
나는 참았다.
더 열심히 했다.
더 많이 가르쳤다.
더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폭발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거 일주일 전에 시켰잖아요!"
직원은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그날 밤 깨달았다. 문제는 직원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조직을 만들 줄 몰랐다.
사람을 어떻게 뽑고, 어떻게 일을 시키고,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사람 많으면 매출 늘겠지" 하고 무작정 뽑았다.
내가 몰랐던 것들
사람은 역할이 명확해야 일한다.
나는 막연하게 시켰다.
"이것저것 해주세요"
"알아서 좀 해주세요"
"보고 판단해서 해주세요".
직원 입장에서는 뭘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상품 등록 하루 3개,
오전 11시까지"
"CS 답변 2시간 이내"
이렇게 구체적으로 줘야 했는데.
프로세스가 없으면 매번 물어본다.
"대표님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오면 짜증 냈다.
"그것도 모르고 일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매뉴얼도 없고 프로세스 문서도 없었다.
그냥 "알아서 해봐"였다.
결국 같은 질문을 10번씩 답해줘야 했다.
평가 기준이 없으면 책임감도 없다.
"열심히만 해주세요"가 내가 한 말의 전부였다.
직원 입장에서 "열심히"가 뭔가?
하루 8시간? 10시간? 매출 얼마?
기준이 없으니 각자 기준이 달랐다.
"이번 달 매출 3,000만원"
"CS 답변율 95% 이상"
"상품 등록 월 60개"
이런 명확한 수치를 미리 정하고 공유했어야 했다.
잘못된 사람을 뽑으면 독이 된다.
나는 급하게 뽑았다.
첫 번째 직원은 성실했지만 능력이 부족했다.
가르쳐도 안 늘었다.
두 번째 디자이너는 능력은 있는데
"이건 제 스타일이 아닌데요"라고 했다.
세 번째는 약속을 안 지켰다.
출근도 마감도 제멋대로.
한 명의 잘못된 채용이 팀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여전히 실무자처럼 일했다.
상품 등록하고 CS하고 배송하고.
"직원들이 못 해서 내가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안 놓아줘서 직원들이 못 배운 거였다.
CEO는 실무자가 아니다.
방향 잡고, 시스템 만들고, 사람 키우는 사람이다.
나는 그걸 몰랐다.
모든 걸 바꾸기로 했다
6개월간의 혼란 끝에, 모든 걸 리셋하기로 했다.
먼저 인원을 줄였다. 5명 중 2명을 내보냈다. 능력도 안 되고 태도도 안 되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우리랑 안 맞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3명으로 줄이고, 사무실도 15평으로 줄였다. 고정비가 월 1,000만원으로 떨어졌다.
남은 3명의 역할을 칼같이 나눴다. A는 상품 기획과 등록, 월 신규 30개 기획에 하루 3개 등록. B는 CS와 운영, 모든 문의 2시간 내 답변에 재고 관리. C는 마케팅과 콘텐츠, SNS 하루 2회 포스팅에 블로그 주 3회. 나는 전략과 매입, 재무, 그리고 모니터링.
노션에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했다. 상품 등록 프로세스는 스크린샷까지, CS 응대 매뉴얼은 상황별 답변 예시까지, SNS 콘텐츠 가이드는 톤앤매너와 해시태그까지. 처음 만드는 데 2주 걸렸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질문이 90% 줄었다.
매주 월요일 개인별 목표를 세웠다. "A님 이번 주: 신규 상품 7개, 베스트 상품 3개 재촬영, 경쟁사 분석 1개" 금요일에 달성도를 체크했다. 못 한 건 왜 못 했는지 이야기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3개월 후 팀원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내려놓기. 상품 등록을 A에게 완전히 맡겼다. 내가 보기엔 70점이어도 참았다. 수정 요청만 하고 직접 안 했다. CS도 B에게 맡겼다. 답변이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참았다. 2주는 정말 불안했다. "망하는 거 아닌가?"
한 달 후 신기한 일이 생겼다. 팀원들이 성장했다. A는 이제 나보다 상품 기획을 잘했다. 트렌드를 더 빨리 캐치했다. B는 CS 답변율 98%를 유지했다. 나보다 친절했다. C는 SNS 팔로워를 3개월 만에 2배로 늘렸다.
6개월 후
고정비 월 1,000만원, 매출 월 2억 8천만원, 순이익 월 2,500만원. 혼자 할 때보다 매출도 올랐고 이익도 남았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이제 새벽까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팀이 알아서 굴러간다. 내가 없어도 상품이 올라가고 CS가 처리되고 SNS가 업데이트된다. 나는 이제 전략에 집중한다. 신규 카테고리 확장, B2B 유통 계약, 해외 진출 준비. 5억, 10억은 이제 꿈이 아니라 계획이다.
지금 당신이 같은 상황이라면
혼자 2억 하다가 조직 만들면서 망하는 중이라면, 지금 당장 고정비부터 줄여라. 생존이 먼저다. 불필요한 인원 정리하고, 사무실 줄이고, 안 쓰는 구독 끊어라. 체면은 나중이다. 남은 사람들의 역할을 A4 1장에 명확히 정리하라. 담당 업무를 구체적으로, 목표 수치를 측정 가능하게,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애매한 게 가장 나쁘다.
프로세스를 최소한이라도 만들어라. 완벽할 필요 없다. 자주 하는 업무 3가지만, 스크린샷과 체크리스트로, 노션이나 구글 문서에. 이것만 해도 반복 질문이 50% 줄어든다.
내려놓을 걸 정하라. 전략과 재무와 핵심 의사결정만 내가 하고, 실행은 팀에게 맡겨라. 70점이어도 참아라. 직접 하면 100점이지만 시간이 없다. 70점을 80점, 90점으로 키워라.
매주 체크하라.
월요일에 이번 주 목표,
금요일에 달성도.
이것만 해도 팀이 정렬된다.
5억, 10억 가려면
혼자 2억은 가능하다. 나도 했으니까. 하지만 5억, 10억은 시스템 없이 불가능하다. 2억에서 5억 가려면 최소 3명 팀에 프로세스 문서화, 주간 목표 관리가 필요하다. 5억에서 10억 가려면 팀장급 1명, 부서별 KPI, 월간 전략 회의가 필요하다.
지금 당신이 힘든 건, 2억 하던 방식으로 5억 하려고 해서다. 방식을 바꿔야 한다. 실무자에서 CEO로.
조직 만들기는 제품 만들기보다 어렵다. 제품은 내 마음대로 되는데 사람은 안 된다.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실수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혼자보다 팀이 낫다. 단,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무작정 뽑지 마라. 명확히 하라. 시스템을 만들어라. 그리고 내려놓아라. 당신의 2억이 10억이 되는 날을 응원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과정을 견디면 다음 레벨이 열린다.
포기하지 마라. 하지만 방식은 바꿔라.